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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수원 '만세 운동' 주도한 기생 김향화 군무로 부활

등록 2021.02.24 08:59:47수정 2021.02.24 11: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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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향화'

[서울=뉴시스] 창작가무극 '향화'. 2021.02.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창작가무극 '향화'. 2021.02.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email protected]

[수원=뉴시스]이재훈 기자 = 3·1절을 앞두고 일제 강점기에 경기 수원 '만세 운동'을 주도한 기생 김향화(1897~?)의 삶이 뮤지컬에서 부활했다.

지난 20~21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뮤지컬) '향화'는 잊혀진 그녀를 호명한다. 모든 사람의 삶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라는 명제를 노래·춤으로 확인한다.

향화의 본명은 순이(順伊)다. 고향은 서울이었다. 10대 나이에 '향기로운 꽃'이라는 뜻의 예명을 받은 그는 수원권번 일패(一牌·최고의 예인 등급) 기생이 된다.

1919년 3월29일 수원 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된다. "만세는 우리의 노래였어! 우리의 춤이었고!"라고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2009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서울예술단 '향화'는 향화의 성장 과정을 그리는데 충실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향화는 자신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수원 홀아비 집에 시집을 간다.

그녀의 가족들은 빚에 쪼들려 도망치듯 수원으로 터전을 옮기고, 이 일로 향화는 이혼한다. 이후 향화는 가족 부양을 위해, 수원 권번으로 뛰어든다.

'향화'는 장면마다 힘을 준 흔적이 역력하다. 향화가 어린 시절 지켜보는 학교 운동회의 역동적 구성이 눈에 띈다.

특히 매 공연마다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탁월한 군무 장면을 선보이는 서울예술단의 진가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삼고무, 검무, 장고춤 등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그런데 1막이 다소 길게 느껴진다. 향화의 지난한 삶에 대해 모두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진심이 느껴지나, 그것이 장황해져 극이 늘어지는 측면이 있다.

[서울=뉴시스] 창작가무극 '향화'. 2021.02.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창작가무극 '향화'. 2021.02.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email protected]

특히 향화의 삶을 추적하는 기자의 역할이 분명하지 못하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향화의 삶을 전하는 전달자가 필요함은 인정한다. 하지만 향화와 기자 사이에 특별한 접촉점이 없고 관계가 성기다보니, 기자 역이 극에 척 달라붙지 못한다.

그럼에도 김향화를 영웅적으로 섣불리 미화하기보다, 인간적으로 바라보는 극의 전체적인 태도는 담백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에게 당할 수 있는 모멸감을 폭력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점도 신중했다. 기생이 무슨 만세운동이냐며 일본 순사가 배후를 캐물을 때, 향화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아 먹먹해졌다. 음악은 과하지 않게 장중했다.

커튼콜 '우리의 이름은, 그리고 너의 이름은' 리프라이즈는 객석을 뭉클하게 만든다. 서도홍, 이추월 등 향화 외에 수원 만세운동에 참가한 기생들의 이름이 하나씩 거명된다. 스크린에는 '조선미인보감'에 실렸던 기생들의 얼굴 사진이 하나씩 등장한다.

독립을 위해 힘썼으나, 힘쓴 줄도 몰랐고 어느덧 망각된 이들. '향화'는 역사를 설명적이거나 강압적으로 발화하지 않고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걸 '공연예술'로 보여준다.

독립 운동가를 다룬 공연은 종종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향화'도 그런 자장 안에 일부 머물러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걸 벗어던질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장황한 곁가지를 쳐내고 힘을 조금 덜어낸다면, 시인 겸 독립운동가인 윤동주를 다룬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윤동주, 달을 쏘다'를 잇는 '독립운동가 시리즈'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고난도 춤을 소화하며 뚝심 있게 향화의 삶과 내면을 보여준 송문선의 열연도 인상적이다.

특히 이번엔 경기아트센터와 협업을 눈여겨 볼만하다. 질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나 공연장이 없는 공공예술단, 인프라와 소재는 갖췄으나 뮤지컬 콘텐츠가 부족한 지역 공공 예술극장이 의기투합했다. 극본·연출 권호성 서울예술단 예술감독, 작곡 양승환, 안무 김혜림·우현영이 힘을 보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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