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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난민·이방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연극 '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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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2-25 08:56:02  |  수정 2021-02-25 10:31:1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올해의신작'
28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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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고역'. 2021.02.25.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고역(苦域) : 고통(苦痛)이 가득 차 있는 곳.

이 고역을 제목으로 내세운 연극 '고역'의 세계는 말 그대로, 가득 고통이 차 있다. 더 괴로운 이유가 있는데, 그 고통의 이유를 함부로 추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난민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시발점인 지난 2018년 제주 난민 사태가 연극의 출발점이다.

제주에 입국한 예민 난민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온 사회학자 '상요'의 집으로 일간지 기자 '규진'이 찾아와 인터뷰를 하게 된다. 상요의 집은 한 때 '고역'이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였다. 머물 곳 없는 이방인들에게 친히 공간을 내줬다. 동시에 의문스런 인물인 '민기'가 상요에게 찾아와 그에게 집요한 질문을 던진다.

연극을 거칠게 요약하면, 타인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용서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숨겨진 사연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느 사안에도 쉽게 가치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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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고역'. 2021.02.25.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스포일러가 돼 내용을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이방인을 옹호하는 상요에겐 다른 이방인과 관련한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을 겉보기에 아내보다 더 객관적인 방식으로 수용한다. 그런데 관객이 보기에 그 아픔에 대한 상요의 거리두기엔 여지가 있어 보인다.

상요와 같은 종류의 아픔을 겪었지만 더 무너져내린 민기는 상요의 도덕법칙에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다. "알량한 도덕법칙보다 인간적인 대응이 낫다"며 분노한다.

하지만 상요의 신념은 꺾이지 않는다. 그것 역시 이유가 있다. 극 중 인물들이 언급하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에도 등장하는 멕시코의 아픈 역사 '성체 축일 대학살'과 부친의 죽음이 연관돼 있고, 그 상처가 트라우마처럼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연극은 운명을 감당하는 인간의 비극적 숭고함을 전하면서도, 타인에 대해 분노하는 평범한 이들에 대한 연민의 끈도 놓지 않는다. 어느 인물의 편도 쉽게 들 수 없다. 사람이 느껴야 할 가장 소중한 것과 사람이 느끼기 가장 어려운 건 같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다. '고역'은 그것을 보여준다.

정통 연극의 매력은 난해한 문제에 대해 창작진과 관객이 신중하게 대화를 나누는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인데, '고역'은 그걸 해낸다. 이처럼 이 연극의 진짜 매력은 묵직한 메시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입장과 생각을 모두 수용하려는 그 치열한 태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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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고역'. 2021.02.25.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이 거대한 이야기를 큰 오동나무가 있는 상요의 집 마당에서 90분동안 해낸다는 것도 놀랍다.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김성배 작가의 필력, 미니멀리즘의 효과를 극대화한 신동일 연출의 성실함이 맞물려 빚어낸 수작이다.

한국인들 옆에서 사람 좋은 얼굴로 그들의 상처를 보듬고, 아픔을 달래는 방글라데시인 '방대한'의 존재는 숨통을 틔워준다. 좋은 작품은 늘 작가·연출보다 더 많이 말하는 법이다. 이제 2월을 넘기고 있지만, '고역'은 올해 만날 모든 연극 중에서도 손꼽힐 것이다.

상요 역의 이동준, 민기 역의 이종무, 상요 아내 경희 역의 이주영 등 모든 배우들이 극 안에서 살아가는 실제 인물 같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선정작이다. 오는 28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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