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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현실과 밀착 용감한 재창작…연극 '파우스트 엔딩'

등록 2021.03.02 08: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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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파우스트 엔딩'. 2021.03.02. (사진 =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파우스트 엔딩'. 2021.03.02.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국립극단의 신작 연극 '파우스트 엔딩'은 '사회의 압축판'이다. 본래 사회와 예술은 근본적으로 연동돼 있다. 괴테가 190년 전 탈고한 시극 '파우스트'를 조광화 연출은 재창작해 더욱 현실과 밀착시킨다.

제목 속 '엔딩'이 주는 어감에서 추측할 수 있듯, 이번 연극은 기존과 다른 결말을 가지고 있다. 원작에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빠져 모든 쾌락을 좇는다. 방황하지만 결국 그는 천상의 구원을 받는다.

그 유명한 문장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전영애 서울대 독문과 명예교수는 이 부분을 최근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로 새롭게 번역했다)로 압축된다.

하지만 조 연출의 '파우스트 엔딩'에서 파우스트는 구원을 받지 않는다. 죄를 짊어진 채, 지옥을 향해 스스로 걸어들어간다. 고전의 완강한 질서를 재편한다. 이처럼 재배치된 결말에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안간힘 같은 게 느껴진다.

선택에는 책임감이 따른다.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는 시대, 파우스트의 새로운 선택은 참혹한 지금과 맞서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처럼 보인다.

[서울=뉴시스] 연극 '파우스트 엔딩'. 2021.03.02. (사진 =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파우스트 엔딩'. 2021.03.02.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본적인 감정은 연민이다. '파우스트 엔딩'은 남성 노(老)학자의 성별을 여성으로 바꿔 인간을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에 방점을 찍는다.

원작에서 파우스트는 여성 '그레첸'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번 연극에선 파우스트가 여성으로 그려진다. 임신한 그레첸의 보호자 또는 멘토로서 '인간적 공감대'로 무게중심이 쏠린다.

연극계의 대모이자 오랜기간 교수,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으로서 수많은 이들의 멘토로 자리매김해온 김성녀가 그래서 이번 파우스트 역에 제격이다. 자신에게 닥칠 비극보다 다른 이에게 닥친 부당함에 싸우는 파우스트는 여성일 때 더욱 절박하다.

파우스트에 맞서는 메피스토 역시 새롭게 설정됐다. 흉악하거나 공포적이지 않고, 익살맞은 광대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잔인해보인다. 마치 '데스메탈 로커'처럼 머리를 붉게 물들이고 얼굴에 문신을 한 채 신(God)에게 내기를 거는 메피스토는 근원을 알 수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불안을 상징한다.

붉은 눈을 빛내는 들개를 비롯한 문수호 인형 작가가 디자인한 퍼펫들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실감나는 움직임도 '파우스트 엔딩' 속 무질서의 세계를 반영한다.
[서울=뉴시스] 연극 '파우스트 엔딩'. 2021.03.02. (사진 =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파우스트 엔딩'. 2021.03.02.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극 속 파우스트는 다른 인물들에게, 관객에게 계속 묻는다. 계속 텅 비어 있는 상태의 의자와 책이 놓였다가 사라진 의자의 차이점은 무엇이냐고. 그리고 극이 끝난 뒤 무대에 새겨지는 한 문장. "살기 위해 의미를 붙잡았으나, 붙잡느라 움켜쥔 것은 무얼까."

이 질문은 앞서 언급한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와 일맥상통한다. 흔적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인간의 노력과 시도는 위대하다. 방황하니까 인간이다. 그러니 갈팡질팡해도 괜찮다.

결말을 바꿨는데, 원작의 본질을 겨냥한다. 용기 있는 재창작이 돋보이는 이유다. 1500쪽(도서출판 길 '파우스트'(전영애 번역·2019)이 넘는 원작 분량을 감정의 흐름을 빨리 전개시킬 수 있는 음악 등을 사용해 러닝타임 100분으로 줄인 것도 과감했다.

애초 '파우스트 엔딩'은 지난해 국립극단이 창단 70주년 기념 레퍼토리로 선보이려고 했다.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약 1년이 지나서야 무대에 오르게 됐다. 기다림이 아깝지 않다. 오는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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