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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복잡한 실손보험 절반이 청구포기

등록 2021.05.17 15: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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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복잡한 실손보험 절반이 청구포기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실손의료보험은 전체 국민의 75%인 3900만명 이상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비급여 진료비를 보장해줘 전국민의 의료비 경감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과 달리 보험금 청구 절차가 까다로운 상황이다. 보험 가입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해 증빙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하면, 보험사에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전산시스템에 입력하고 있다. IT강국인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렇다보니 실손의료보험의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녹색소비자연대 등 3개 시민단체가 이달 초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 2명 중 1명이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이유로 종이문서 기반으로 이뤄지는 복잡한 청구절차 등을 꼽았다. 실손보험 보험금 청구시 전산 청구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78.6%에 달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바라고 있지만, 12년째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를 권고했으며, 2015년부터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관련 시스템 마련에 나섰으나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입법화가 번번이 무산됐다. 공회전만 반복해오던 실손보험 청구간소화가 올해 다시 추진되고 있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보험업법 개정안 총 5건이 계류 중이다. 법안에는 의료기관이 실손보험 가입자의 진료 내용을 전산으로 보험사에 전송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여야 의원 공동 주최로 지난 10일 열린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입법 공청회'에서 보험업계와 의료계는 또다시 대립했다. 보험업계는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를 전산화해 보험 가입자와 보험사들의 불편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면 의료기관도 행정업무를 효율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의료계는 의료기관이 실손보험의 계약당사자(환자와 보험사)가 아니기 때문에 서류 전송의 주체가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섰다. 이미 일부 핀테크(금융기술) 기업을 중심으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핀테크를 죽이는 법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도 했다. 아울러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도 우려했다.

하지만 이같은 의료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보험금 청구를 대행하는 핀테크 기업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필요한 이유다. 일부 핀테크 회사에서 대신할 것이 아니라 전체로 확대해 손쉽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종이서류로 제출되던 것이 전산으로 제출되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에 속하며,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장치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위한 법안에 이미 담겼다. 그럼에도 의료계의 주장처럼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된다면 민간의 핀테크 업체가 아닌 공공기관이 진료정보를 중계하게 하고, 정보유출시 그에 마땅한 책임도 지게 하면 된다.

전산화되지 않은 실손의료보험 청구는 소비자뿐 아니라 병원과 보험사 모두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작년 한 해 1억건이 넘는 실손보험 청구가 이뤄졌다. 청구건당 4장의 종이서류가 필요한 만큼 진료비 영수증·진단서 등 종이 서류만 연간 4억장이 넘는다. 소비자 권익 보호와 함께 종이문서 발행에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도 절감할 수 있도록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인 보험금 청구권이 제한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병의원과 보험사들이 하는 일은 각기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 국회와 정부는 소비자 권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침해당하고 있는 것에 더이상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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