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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대로]미군정은 점령군? 해방군?…그 때 무슨 일 있었나

등록 2021.07.11 09:00:00수정 2021.07.19 0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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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이재명, 美 점령군 발언에 논란 촉발
일본 패망 후 南에 미군, 北에 소련군 진주
미군정, 한민족 아닌 세계 전략하에 활동
美, 한국 내 좌익 견제하고 친일·보수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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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김원웅 광복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TV조선의 광복회 관련 보도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5.2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미군정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일본 패망 후 우리 땅에 주둔한 미군이 점령군인지 해방군인지를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졌다.

논쟁의 발단은 김원웅 광복회장 발언이었다. 김 회장은 지난달 21일 경기 양주백석고 학생들에게 보낸 13분 분량 영상에서 해방 후 들어온 미군을 점령군으로 표현했다.

김 회장은 국사편찬위원회 누리집에 게재된 자료를 제시하며 "해방 후 한반도에 진입한 미군과 소련군은 각각 포고령을 발표했다. 소련군 치스차코프는 스스로 해방군임을 표방했지만 미군 맥아더는 스스로 점령군임을 밝히고 포고령 내용도 굉장히 고압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여권 대권 주자 중 하나인 이재명 지사가 역사 전쟁에 참전했다. 이 지사는 지난 1일 경북 안동 이육사문화관을 찾아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정부 수립단계와는 좀 달라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사실 그 지배체제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느냐"며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보수진영은 발끈했다.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대한민국과 국민에 대한 모욕으로 치가 떨리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같은 당 홍준표 의원은 "북이나 주사파 운동권들은 아직도 미군을 점령군으로 부르고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고 있다"고 김 회장과 이 지사를 싸잡아 비난했다.

이 논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시 실제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먼저 알 필요하다. 그래야 무엇이 사실의 영역인지, 무엇이 진영 논리에 따른 해석의 영역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일본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패했다. 소련이 빠르게 움직였다. 소련은 대(對)일본 전쟁에 참여한 대가로 한반도에서 자기 몫을 요구했다. 미국과 소련은 협상 끝에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한을 분할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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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 이재명 예비후보가 8일 오후 서울 중구 TV조선 스튜디오에서 열린 TV조선, 채널A 공동 주관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9일부터 후보자를 6명으로 좁히는 컷오프(예비경선)을 시작해 11일 6명으로 확정할 예정이다. 2021.07.08. photo@newsis.com

하지(John R. Hodge) 사령관을 비롯한 미군정(美軍政) 요원들은 미 제24군단과 함께 1945년 9월8일 인천에 상륙했다. 이들은 9월9일 서울에 있던 조선총독부에서 일본군과 항복문서조인식을 열었다. 하지 사령관이 포고문을 발표하면서 미군정이 시작됐다.

군정이란 좁은 의미로는 교전국 일방의 군대가 상대국에 진주한 후 피점령국 권력을 배제하고 자국 고유의 권력을 수립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로는 군사적·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민의 생명,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행정 작용 이외에 입법, 사법의 역할까지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한에 주둔한 미군정은 넓은 의미의 군정에 해당한다.

미군정은 최고사령관 맥아더의 포고문 1~2호와 일련의 군정법령을 통해 '주한미군사령부는 통치권의 담당자로서 남한 내의 유일한 정부다', '미 본국정부의 한 대리자로서 군사점령자의 권한을 행사한다', '남한의 사실상 정부로서 자치정부의 일반 기능을 담당한다', 귀속재산의 소유자로서, 관리자로서, 장차 한국정부의 피신탁자로서 활동한다' 등을 명시했다.

미군정의 법률고문이었던 에른스트 프랭켈은 국제법의 견지에서 볼 때 한국은 국민이 없는 땅이라고 봤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분리됨에 따라 한국은 경제적·법적 진공상태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군정의 시각에서 한국 독립은 망국 이전의 국가로 부활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국가 창설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1910년 한일합방조약이 무효로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은 자신의 혁명적 활동에 의해 해방을 쟁취한 것이 아니므로 한국의 운명은 해방자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국제법적 해석이었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군정기 식민잔재청산 법제 연구' 논문에서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난 한국의 법적 지위에 대한 미군당국의 이런 인식은 그들이 피식민국가를 해방하기 위한 군대가 아니라 단지 승전국으로서 점령군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아울러 한국민족의 어느 정치세력에게도 국가건설을 위한 최종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이후의 국가건설을 그들의 구상대로 이끌어 가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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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주한 미 육군 사령부 편성. 2021.07.11. (자료=송윤선 논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군정의 남한 주둔 목적은 표면적으로는 즉 미국식 민주주의 도입과 자본주의 체제 정착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목표는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을 차단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 내 상황은 미군정에 녹록치 않았다.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자들은 반일저항세력으로서 규율과 조직을 갖추고 해방과 동시에 가장 먼저 한국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좌익세력은 해방 다음 날인 8월16일 최초의 정당간판인 '조선공산당(장안파)' 간판을 내걸었고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며 정국을 주도했다. 좌익은 스스로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기까지 했다.

좌익이 목소리를 크게 내긴 했지만 당시 일반 국민 의식은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는 '1946년 미군정의 여론조사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회인식' 논문에서 "해방 이후 대다수 한국인들은 정치적으로는 우파 지도자, 우파 정당·단체, 그리고 서구식의 대의민주주의를 지지했다"며 "특별히 우익인사들에 대한 지지는 약 70%에 이르렀고, 이것은 해방 공간 3년 동안 거의 동일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해방 정국에서 좌익이 우세했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며 "(당시 한국인은)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의 국가통제나 국유화정책도,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나 사적 소유권의 절대적인 보장도 반대하고 오히려 양자가 결합된 구조를 갖기를 원했다"고 분석했다.

어쨌든 미군정은 좌익이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 상황에 위기의식을 가졌다. 미군정은 인민공화국 등 공산주의 세력이 소련의 압도적인 영향 하에 있는 것으로 간주했으며 대(對) 소련 봉쇄 관점에서 한국 좌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견지했다. 이를 근거로 미군정은 한국 내 국내 정치세력들의 갈등과 정치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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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미군정 수행 과정. 2021.07011. (자료=송윤선 논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군정의 이 같은 인식은 친북보다는 친일이 낫다는 자체 판단으로 이어졌다. 일본에 부역했던 친일파가 한국 대중들에게 미움의 대상이었지만, 미군정은 한국 내 좌익을 견제하기 위해 친일세력을 우군으로 삼았다.

애초에 미군정은 일본정부에 협력했었던 한국인들, 친일세력을 심판할 능력도 기준도 없었다. 일본에 대한 부역과 협력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해 심판이 이뤄져야 했지만, 미군정은 어떤 한국인이 선천적 부역자 또는 실질적 반역자인지 알지 못했다.

게다가 한반도 사정에 어두웠던 하지 사령관은 한국인과의 접촉을 경계하고 조선총독부 관료 또는 일본인 통역들이 제공하는 정보와 서비스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식민통치와 관련된 반민족적 요소를 청산하려 했던 우리 민족의 뜻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수자 이화여대 교수는 '해방직후 미 군정부대의 지방 배치와 활동' 논문에서 "일본인 관료와 친일적 성향의 한국인 관료에 대한 미군정의 우호적이며 긍정적 태도는 그 지방에서 세력을 확보하고 있던 좌익세력들과 마찰을 가져왔다"며 "그러나 이에 대해 미군정은 좌익세력 즉 인공이나 지방인민위원회를 탄압, 약화시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해 갔다"고 설명했다.

약 3년에 걸친 활동기간 동안 미군정은 주로 냉전 논리에 근거해 움직였다. 미국은 소련의 영향력이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에 방파제를 구축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우익 세력을 동맹으로 삼았고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경찰 조직을 창설했다. 그 결과, 1946년 말에 이르면 우익 세력이 통제하는 경찰이 미군정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됐다. 미국은 한국의 좌익세력과 힘을 겨뤄야 했고 경찰은 자연스럽게 좌익과 싸우는 미군정의 무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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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지방의 군정관료 중 일제강점기 관직 경험자. 2021.07.11. (자료=김수자 논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군정 시대 경찰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급진주의자들을 억압했던 일본 식민지 시대 경찰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좌익 탄압 경험을 갖고 있던 한국인 경찰들은 미군정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이와 함께 미군정은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우익 세력을 육성했다. 미군정과 경찰은 좌익 세력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당시 혁명적 상황을 통제함으로써 우익 세력의 힘과 영향력을 강화시켰다. 경찰은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1948년 5월 총선거 과정에 개입해 이승만 정권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진웅 경북대 아시아연구소 명예교수는 '미군정기 국내정치에 있어서 경찰의 역할' 논문에서 "경찰은 친일 조직이라는 태생적이고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으며 그 이유로 인해 이승만-한국민주당 세력과 긴밀한 동맹 관계를 구축했다"며 "한국인들의 증오를 한 몸에 받던 식민지 시대 경찰을 역임했던 사람들이 고위층을 형성했던 경찰은 식민지 시대 전통을 계승해 이데올로기적으로 극우적 성향을 띠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종적으로 미군정은 자신들을 계승하기에 가장 적합한 정치세력으로 이승만·한민당 세력을 선택했다. 이승만·한민당 세력은 식민 잔재 청산과 친일파 처리에 소극적이었다. 이들에 의해 구성된 단독정부는 식민 잔재 청산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김영택 국민대 교수는 '친일세력 미 청산의 배경과 원인' 논문에서 "북한을 점령한 소련에 의한 공산주의 도미노현상을 차단해야하는 미국으로서는 남한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는 공산주의세력을 척결하고 반공정권을 수립해야 하는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취약한 군사력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경찰을 비롯한 친일세력을 대거 반공전선에 내세워야 했다"고 평했다.

미군정은 1948년 막을 내렸지만 이것이 한반도에서 마지막 군정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시적으로 권력 공백이 나타날 수 있고 이 경우 국제사회는 다시 한 번 군정이라는 수단을 찾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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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점령지역 안정화작전 진행 절차. 2021.07.11. (자료=송윤선 논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군정은 일종의 안정화 작전이었다. 일본군을 패퇴시키고 진주한 미군 부대가 한국 지역에서 민간 정부를 대신해 3년간 통치한 행위는 군사 측면에서의 '안정화 작전'의 성격을 띠었다. 향후 있을지 모를 한반도 자유화 지역 내 국가 건설 작전 역시 안정화 작전이 될 공산이 크다.

작전지역 반란세력 토벌과 안전 확보, 기간시설 복구, 인도적 지원을 넘어 점령 지역의 국가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 안정화 작전의 핵심이다. 이 때문에 단지 반란세력이나 저항세력 토벌과 인도적 지원 과업뿐만 아니라 자유화 지역의 행정력과 통치력을 회복시키는 데 필요한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이 과정에서 한민족이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송윤선 육군미래혁신연구센터 비전설계실장은 '한반도 군정 사례의 미래 안정화작전 시사점 분석' 논문에서 "남북한 분단 상황에서 한반도 관할권을 주장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북한의 주권적 실체를 인정하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한반도 안정화작전의 주도권에 대한 한국 정부와 국제 사회 간의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송 실장은 그러면서 "한국군의 독자적인 또는 주도적인 안정화 작전보다는 유엔군 주도하에 한국군이 유엔군의 일부로서 한반도 안정화 작전에 참가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따라서 우리는 현실적 입장에서 냉정하게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하면 한미 동맹 하에서 한국군이 효과적으로 한반도 안정화 작전을 주도하고 한국 정부가 통일 환경 조성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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