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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들고 흐드러지게 춤을 춘다"...김길후 '혼돈의 밤'

등록 2021.07.21 15:38:17수정 2021.08.02 09: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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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부터 학고재갤러리서 첫 선

'일필휘지 필법' 회화-조각 전시

[서울=뉴시스] 김길후, 무제 Untitled,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291x200cm

[서울=뉴시스] 김길후, 무제 Untitled,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291x200cm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동굴 벽화도 자세히 보면 표현주의다"

올해 환갑을 맞은 작가 김길후는 해체주의 같은 자신의 작업은 "사실 근본적으로 표현주의"라고 했다

작품은 사람인지 동물인지 어떤 형상인지 구분도 쉽지 않다. 그는 "궁극적으로 특별한 대상을 그리기 보다 구름처럼 형태가 없지만 보는 시선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그린다"고 했다.

"예술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서 중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내 생각에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모습이 이번 전시작들인 것 같다"
 
21일부터 연 전시 타이틀은 '혼돈의 밤'.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처음 선보이는 김길후 개인전이다.

역동적인 붓질로 그려낸 근작 회화(20점)와 조각(3점)을 다채롭게 전시한다.

김길후는 지난 4월 제11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하여 미술계 주목을 새롭게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 수상을 기념하는 자리다. 당시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위원장 최형순(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관장)은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거침없는 필선의 속도가 강력하다"며 "붓이 머금고 있는 물감 묽기는 스스로도 흘러내릴 듯 자유롭고 작가의 붓 길도 거침없게 해 주고 있다”고 평했다.

'일피휘지의 필법'은 아크릴 덕분이라고 했다. 작가는 "아크릴은 물성을 보여주기 적합한 재료다. 절묘하게 흘러내리기도 하지만 흘러내릴 수 있는 시간마저 주지 않는 일순간적인 몸짓이 만들어내는 물성도 흥미롭다"며 "나는 그림을 일순간에 그리는데 핵심은 재빠르게 깊이를 담아내는 것"이라고 전했다.

주로 검은색이 많이 보이지만 계획적인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색을 늘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한다. 그는 "자아가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호흡, 숨결"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내 자아에 통제받지 않기 위해 15cm 크기의 평붓으로 순식간에 선을 그려낸다. 붓의 속도를 느끼며 그린다. 붓으로 화면을 치기도 하고 힘을 주고 그리기 때문에 붓이 자주 부러지기도 한다. 색별로 개별 붓을 사용하기 보다 하나의 붓을 사용한다. 의식적으로 색을 사용한다기 보다, 붓에 묻어 나오는 색이 화면에서 보이는 것 같다. 의식적인 통제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이같은 기법에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붓을 들고 흐드러지게 진한 춤을 추는 무당처럼 김길후는 자신의 호흡과 직관을 회화의 물성으로 펼쳐낸다"고 평했다.
[서울=뉴시스] 김길후, 노자의 지팡이 Laozi_s Staff, 2019, 나무, 합판 Wood, plywood, 205(h)x54x57cm

[서울=뉴시스] 김길후, 노자의 지팡이 Laozi_s Staff, 2019, 나무, 합판 Wood, plywood, 205(h)x54x57cm


독특한 입체 작품들은 대부분 인물상이다. "인물을 오래 그려 몸에 밴 것 같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몸에 체득된 것이다. 생각을 하지 않고 작업을 해도 완성하면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2016년부터 합판이나 골판지 등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들을 사용해 삼발이 인물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회화처럼 조각도 정교한 계획을 생략했다. '노자의 지팡이'는 삼발이 형태의 뼈대 위에 모델링 페이스트를 바르고, 지팡이 모양의 나무와 회화를 혼합해 만들었다.


[서울=뉴시스] 김길후 작가. 사진=학고재 제공. 2021.7.2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길후 작가. 사진=학고재 제공. 2021.7.21. [email protected]


작가는 원래 '김길후'가 아니었다. 1988년 계명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그는 1999년 자신의 작품 1만 6000여 점을 불태웠다. 기존의 방식을 청산하고 완전히 새로운 화면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2013년도에는 이름도 김동기에서 김길후(金佶煦)로 개명했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탈바꿈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이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혼돈의 밤’은 만물의 소생에 앞선 원시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작가의 개입이 빠져야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습을 잊고 본성의 마음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노자의 사상을 염두에 둔 작가의 의지다.

"특정 대상을 그리지 않고 붓에 몸을 맡겼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우연히 눈이 그려지고 코가 그려진다. 구름이 바람결에 움직이면서 나타내는 형상이 바뀌듯 작품을 보는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보길 바란다." 전시는 8월22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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