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조연희의 타로 에세이] 그렇다면 공정함이란 무엇일까?...'11번 정의 카드'

등록 2021.07.31 06:00:00수정 2021.07.31 07:14:22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타로 11번 ‘정의’. (사진=조연희 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타로 11번 ‘정의’. (사진=조연희 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그때는 서슬 퍼런 군부독재의 시대였다. 당시 내가 조교로 재직 중이었던 학교는 학내 문제까지 겹쳐 데모가 끊이질 않았다.

어느 날 출근해보니 유리창이 깨져 있었고 짱돌 하나가 조교실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그 짱돌은 교정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모양이었지만 이상하게 적의로 빛나 보였다.

조교실 옆의 학과장실에도 짱돌이 날라와 있었다. 그 돌멩이는 조금 더 컸고 더 노골적으로 번들거렸다. 나는 그 두 개의 돌을 주워 책상 한 쪽에 두었다. 왠지 함부로 버릴 수 없었다.

모두 집으로 돌아간 이슥한 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돌을 골랐을 누군가를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큰 것, 하나는 작은 것을 고른 건 나름 응징의 무게를 달아보았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침묵하는 교수실과 조교실을 향해 세차게 돌팔매를 날렸을 것이다.

어용 조교가 되다

그 짱돌은 시작에 불과했다. 유리창을 갈아 끼우면 어김없이 다시 날아들었다. 더는 유리창 갈아 끼우는 것을 포기할 무렵 학내 사태는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어느 날은 조교실과 학과장실 문에 X자 모양의 널빤지가 가로막고 있었다. 다섯 군데 못이 박힌 것처럼 내 손과 발, 심장이 아팠다. 예수의 몸에 난 지워지지 않는 다섯 개의 상처처럼.

2년 계약직에 아무런 힘도 없는 내가 왜 그들의 ‘타도 대상’인지 알 길이 없었다. 행정시스템을 저지하기 위해서일 거리고 추측해보았지만 밀려오는 섭섭함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조교실 창밖으로 데모대 모습이 보일 때면 젖은 낙엽처럼 쓸쓸해졌다. 그들 속에는 동기도 있었고 유난히 나를 따르던 후배도 있었다. 내가 학생이었다면 아마 나도 그들 무리에 끼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었다.

학내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난 내가 어용 조교가 되었다는 사실에만 분개하며 공정함이나 정의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내 마음 속의 천칭저울은 중심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다. 

천칭저울과 검의 컬래버레이션

11번은 ‘정의’ 카드다. 왼손에 천칭 저울이 수평을 이루고 있는 것을 봐선 정의란 곧 공정함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공정함이란 무엇일까?

마이클 샌델은 ‘사회구성원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혹은 사회구성원 각각의 자유로움을 보장할 수 있는지, 아니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로 정의로움을 결정’할 수 있으며 정의를 공동체주의로 연결했다. 또한 공정함이란 기회 평등을 넘어 조건의 평등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자의 서’를 보면 죽은 이가 심판 받는 장면이 나온다. 살아생전 그가 했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모두 적힌 ‘생명의 책’ 앞에서 죽은 이는 마흔두명의 신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그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 천칭저울을 달아본다.

천칭저울의 왼쪽에는 심장이, 오른쪽에는 타조의 깃털이자 정의의 상징인 ‘마아트(Maat)’가 놓여 있다. 만일 천칭이 심장 쪽으로 기울면 죽은 이는, 악어 머리에 사자 몸을 한 암무트에게 잡아먹힌다. 심장과 마아트가 균형을 이루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다시 카드를 자세히 보자. 천칭저울은 알겠는데 꼿꼿하게 세워진 검은 무슨 의미일까? 정의란 천칭저울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진정한 정의란 천칭저울과 검의 컬래버레이션이라고. 수평을 이룬 저울만으로는 안된다는 뜻일까. 검이라는 단호한 실행이 없으면 정의가 아니라는 것일까. 정의란 이처럼 수평을 이루는 천칭저울과 함께 단호한 행동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시절 여지없이 흔들리던 천칭저울보다 더 문제였던 것은 어쩌면 내 검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만 하다 놓친 수많은 정의들. 그때 잃은 내 검이 지금도 어디선가 녹슨 눈물을 흘리고 있는 듯하다.  

▲조연희 '야매 미장원에서' 시인 [email protected]

 ※이 글은 점술학에서 사용하는 타로 해석법과 다를 수 있으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