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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도 재테크 했다…"가문과 공동체 지탱 위해"

등록 2021.08.04 09: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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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선비의 재테크'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8월호

해동화식전, '부자되는 길' 알려주는 당대 재테크 서적

떳떳하게 부를 추구하고, 상행위를 인정하자고 제언

정약용, '뽕나무 심어 생계 이어가라' 자식들에 편지

제자들엔 '과일과 채소 기르고 양잠하면 큰 이익' 제안

이달의 일기 (그림=권숯돌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이달의 일기 (그림=권숯돌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안동=뉴시스]김진호 기자 = 조선의 선비는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통념이 있다.

하지만 선비도 식솔들을 먹이고, 가문과 공동체를 지탱하기 위해 재산을 합리적으로 경영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4일 이 같은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 '선비의 재테크'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8월호를 발행했다.

이번 호에서 강선일 작가는 '조선 선비들의 슬기로운 화식(貨殖) 생활 - 뽕밭에서 재테크의 교훈을 얻다'에서는 조선의 선비들이 왜 뽕나무를 심으려 했는지 질문을 던진다.

선비가 청빈(淸貧)한 삶만을 고집했다면 그 많은 가솔을 거느릴 수 없었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글공부를 할 수 없었다.

작가는 식니당(食泥堂) 이재운(李載運, 1721~1782)이 쓴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을 빌어 이를 설명한다.

제목 중 화식(貨殖)은 현대용어인 재테크에 견줄만한 '재산을 모으고 늘린다'라는 뜻이다.

부의 특징을 전면화하고 9명의 거부(巨富) 일화를 소개한 이 책은 소위 '부자되는 길'을 알려주는 당대의 재테크 서적이다.

사회적 통념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부와 부자를 찬미할 뿐 아니라 떳떳하게 부를 추구하며 상행위를 인정하자고 제언하기 때문이다.

9명의 거부 사례에 비춰 ▲치산(治産)을 잘해 재물을 늘리는 것 ▲아끼고 절약하는 것 ▲변화를 일으켜 형통하는 것 ▲고생을 참고 근면하게 형통하는 것 등을 제시한다.

이달의 일기 (그림=권숯돌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이달의 일기 (그림=권숯돌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같은 화식 방안이 당대에는 학문적 영향력은 적었지만 조선 선비에 대한 현재 우리의 시각을 전환하기에는 충분하다.

 처지가 곤궁하면 학문을 익히고 실천하기가 녹록치 않으므로 선비들은 유학적 가르침과 현실적 문제 사이에서 고민하며 '적당한' 치산의 방안을 궁리해야 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유배지에서 제갈공명이 은거할 때 뽕나무를 심은 것에서 깨달음을 얻어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뽕나무를 심어 키움으로써 생계를 이어가라'라는 내용을 담았다.

제자들에게도 과일과 채소를 기르고, 양잠하면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며 제안했다.

박영서 작가는 'CEO 김 생원의 운수 좋은 날'에서 재테크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김 생원의 이야기를 한편의 단편소설처럼 풀어낸다.

닭장을 쳐서 그 병아리 마릿수와 달걀 개수를 매번 헤아리고, 병아리를 해치는 개를 쫓아낸다.

일 년 내내 애지중지 벌을 키워 얻은 꿀을 서울보다 시세를 더 쳐준다는 함경도까지 시종을 보내 꿀을 팔게 했다.

곧 돌아온다는 소식에 기대감을 감출 길 없지만 선비가 돼서 시문에는 관심 없고 살림에만 사활을 건다는 소문이 돌고부터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가 벌을 키운 건 십 수 년 전부터 눈독 들인 땅을 사기 위함이었지만 속내를 누구에게도 내비칠 수 없었다.

'해동화식전'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해동화식전'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렇게 전전긍긍하는 와중에 참석한 문중 회의에서는 선비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굶주림을 못 이겨 문중에 먼저 보고하는 법도를 무시하고 관청에 먼저 고한 서얼 출신을 벌하기보다는 '논어(論語)'에서 이른 충서(忠恕)의 가르침을 언급하며 아량을 베푼다.

작가는 선비가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통념과는 달리 가족과 가문 공동체를 위해 재산을 합리적으로 경영할 의무가 주어져 있었던 모습을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히 묘사했다.

권숯돌 작가의 '이달의 일기 – 거저 크는 돈나무'에서는 오희문(吳希文)의 일기 '쇄미록(瑣尾錄)' 속 매 이야기를 웹툰으로 소개한다.

재테크 수단으로서 오늘날에도 동물, 식물, 곤충 등을 기르는 사람들이 있듯이 매를 바라보는 선인들의 마음과 고충 등을 그려낸다.

매를 잡기 위해 그물을 쳤지만 미끼로 쓰는 닭만 5마리를 잃은 채 허탕을 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신에게 제사까지 지내 멋진 매를 잡았지만 집안에는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매를 맡겼다.

그러나 맡아준 사람이 본인 실속을 차리는 것에 화가나 결국 데려왔으나 먹이를 먹지 않아 속앓이 한 후 비싼 값에 판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공병훈 교수는 "생산과 소비, 소득과 부의 분배라는 경제활동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이며 개인과 가정을 성장시키는 기본 방법"이라며 "상업과 유통은 조선 사회를 운영하는 주요한 체계였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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