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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사랑에 역공 당하다…연극 '산책하는 침략자'

등록 2021.08.05 13: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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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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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 2021.08.05. (사진 = 창작집단 LAS·IRO 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침략했다, 역공을 당한 외계인이 있다. 창작집단 LAS의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 속 외계인이다.

그의 종족들은 지구정복이 목표다. 동료들과 일본의 평범한 마을로 사전 답사를 온다. 이들은 인간의 몸에 영혼처럼 침투한다. 산책을 다니며, 다른 인간의 '개념'을 수집하는 것이 일이다.

특정 개념을 빼앗긴 사람은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신지' 몸에 침투한 외계인이 신지의 처형인 '아스미'의 머릿속에서 자매·혈연의 개념을 송두리째 빼앗은 뒤 나타나는 아스미의 증상이 예다. 아스미는 살갑게 대하던 동생 나루미와 어머니에게 돌연 냉담해진다. 

사람에게서 특정 개념이 없어지면, 감정 결핍이 생긴다. 감정은 자신의 고유성을 더듬는 길이다. 그 성정(性情)으로 타인과 교감하고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런 개념의 부재로 인한 사람들의 혼란은, 전쟁의 위협이 느껴지는 쇠락한 바닷가 소도시에서 더 스산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연극은 온기를 잃지 않는다. 극의 정점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신지의 껍데기에 들어간 외계인은 개념을 하나둘씩 습득하며 점차 지구에 적응한다. 특히 신지의 실제 아내이자, 친절하고 주체적인 나루미와 교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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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 2021.08.05. (사진 = 창작집단 LAS·IRO 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신지 속 외계인은 자신의 지구 가이드이기도 한 나루미의 개념은 빼앗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개념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빼앗기 쉽지 않다. 이들 외계인은 사람이 개념에 대해 상상하는 순간, 그걸 빼앗아올 수 있다. 하지만 낯선 그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개념을 머릿속에서 제대로 그려내지 않는다.

웬만큼 개념을 수집한 순간, 외계인은 신지의 몸에서 떠나려 한다. 그가 떠나면 신지는 죽음을 맞게 된다. 그 순간 나루미는 신지 속 외계인에게 자신의 사랑 개념을 가져가라고 요청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절절한 SF멜로가 펼쳐진다. 나루미는 자신에게 사랑 개념이 없으면 "신짱(신지)이 없어도 슬퍼하지 않게" 된다는 걸 이유로 든다. 망설이던 신지 속 외계인은 결국 나루미의 사랑 개념을 빼앗는다.

복잡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외계인 안에서 돌연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그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펑펑 운다. 하지만 나루미는 그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산책하는 침략자'는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SF적인 요소로, 사랑의 본질적 감정을 깊게 파고든다. 사랑에 대한 완벽한 연극적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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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 2021.08.05. (사진 = 창작집단 LAS·IRO 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나루미 역 한송희, 신지 역의 윤성원 등 모든 배우들이 호연한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동선과 조명 등으로 산책하는 인상을 유효하게 만든 이기쁨 연출의 솜씨도 탄탄하다.

'칸 국제 영화제'에 초청됐던 일본 구로시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2017)의 원작 희곡이다. 일본 작가 마에카와 도모히로가 썼다. 일본어 원작을 이홍이가 번역했다. 창작집단 LAS가 지난 2018년 국내 초연했고 이번에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오는 15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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