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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110만 노동자 대표' 양경수의 선택…유감

등록 2021.08.13 17: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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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윤희 기자 = 지난달 3일 열린 '7·3 노동자대회'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양경수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이 이달 11일 예정된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을 거부했다. 양 위원장은 변호사를 대리 참석시키지도 않았고 법원에 입장문만 전달했다.

양 위원장이 불출석하면서 당일 구속심사는 진행되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법은 바로 결론을 내기보다 일단 양 위원장의 출석을 기다리며, 서면심사를 진행하는 분위기다. 경찰 역시 양 위원장의 구속심사를 위해 발부된 구인영장을 즉시 집행하기보다는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양 위원장이 나중에라도 법원에 나올 일은 없어 보인다. 그는 구속심사 불출석 이후 향후 수사사법절차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때문에 앞으로도 구속심사가 정상적으로 열리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피의자가 불가피한 이유도 없이 구속심사에 나오지 않으면 법원은 도주우려가 있다고 보고 서면심사를 통해 구속영장을 발부할 공산이 크다. 그리고 경찰이 집행에 나서면 노동계 반발로 갈등이 격화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민주노총이라는 우산 아래에는 약 110만명의 노동자들이 있다. 양 위원장은 110만명 조합원을 대표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수사단계에서 소환조사 일정을 3차례 맞추지 못했고, 법원 구속심사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수사기관이나 사법부가 이같은 대표성을 충분히 감안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반인이었다면 구속될 가능성이 큰 사안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양 위원장이 이같은 대표성을 잘 인식하고 있는지를 두고는 의문이 든다.

양 위원장은 앞서 구속심사 불참 사유를 두고 "법원에 출석해 구속영장의 적절성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 당장 노동자들이 받는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더욱 절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 위원장의 말대로 최근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처럼 당장 불합리한 환경이나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민주노총의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손길과 지원을 건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위원장이 구속되거나 구속 위기에 몰린다면,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노동자들을 위해 일할 여유는 오히려 사라지는 것 아닐까. 그런데도 양 위원장은 이와 반대로 노동자들을 위해 구속되겠다고 말하는 듯해 다소 이해가 어렵다. 

무엇보다 양 위원장이 사법부와 정면으로 각을 세울 경우 국민들이 민주노총과 110만명 조합원들을 어떻게 바라볼지도 걱정된다.

민주노총을 향한 여론은 예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비판이나 비난하는 목소리가 더 많다는 체감도 든다. 그럴때면 110만명 중 1명의 노동자 입장에서 마음이 아프다. 양 위원장이 구속될 경우 여론은 더 악화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양 위원장은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불구속 재판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구속수사는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 등이 있는 경우로 제한된다.

110만명의 대표인 양 위원장이 당당히 구속심사에 나서 구속수사가 부당함을 설득했으면 한다. 그런데도 부당한 결론이 나온다면 그때는 110만 노동자들이 힘을 모으지 않을까 싶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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