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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희의 타로 에세이]당신은 무슨 유언을 남길 수 있을까…'13번 죽음 카드'

등록 2021.08.2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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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13번 ‘죽음’ 카드. (사진=조연희 작가 제공) 2021. 8. 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나 수술할 거니? 뭐 할 거니? 약, 약, 나 좀 편하게 죽게 해줘. 자다가 죽게 약 좀…”

그날은 마침 내가 병실을 지킬 차례였다. 시어머니 입술이 달싹거렸다. 안간힘을 다해 무슨 말인가 하는 듯했다. 난 물수건으로 입술을 적신 후 귀를 가까이 댔다. 그런데 온 힘을 다해서, 마지막 한 방울 남은 기운마저 짜내 한 말이 편하게 죽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남은 시간을
시어머니가 폐암 4기 진단을 받았을 때 가족 누구도 그에게 병명을 말하지 못했다. 물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시어머니는 민화를 그리는 멋진 분이었다. 동네의 크고 작은 문제를 앞장서 해결했고 아픈 노인에게 수지침도 놓아줄 만큼 건강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한의학에도 조예가 깊었기에 기침 따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괜찮다”며 오히려 우리를 위로했다. 그래서 더욱 말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제 욕심 차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암세포는 빠른 속도로 전이됐다. 시어머니는 결국 병실에 눕고 말았다. 접촉 불량 전구의 필라멘트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것처럼 의식이 끊어지기를 반복하는 시어머니에게 당신이 폐암이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결국 누구도 못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어머니는 조금이라도 정신이 맑은 날이면 몸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런데 그날 시어머니의 모습은 그동안의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당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21g의 영혼이 빠져나가던 순간
혈압과 맥박을 체크한 의사는 임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가족들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병실 밖 하늘은 서러울 만큼 청명했고 차들은 쉼 없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하나둘 모여든 가족은 시어머니의 침대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시어머니는 뼈에 살가죽만 남은 상태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한동안 숨이 멎은 듯했다. 그러자 시누가 먼저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엄마 어쩌면 좋아 엄마”

그러자 성당에서 연도 나온 분 중의 한 명이 말했다.

”그냥 두세요, 편히 가시게. 영혼이 어디로 빠져나갈지 모르니 자꾸 건드리지 마세요.”

죽을 때는 우리 몸의 모든 구멍이 열린다고 했던가. 숨이 멎었는가 싶었는데 날숨을 쉬었고 또 멎은 듯 하더니 들숨을 쉬었다. 그 간격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숨이 잠시 멎을 때마다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숨을 크게 들이 마신 상태에서 얼굴빛이 변했다. 발밑에서부터 알 수 없는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듯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직감적으로 21g의 영혼이 빠져나간 것이라 생각했다. 순간 시어머니 몸이 물체처럼 변하는 것 같았다.

일제히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의사가 왔고 시어머니의 몸 위로 하얀 시트가 덮였다.

왕도 사제도 저승사자 앞에선 무력
13번 카드의 제목은 ‘죽음’이다. 갑옷과 투구를 쓴 저승사자가 말을 타고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내겐 저승사자 앞에서 제 각각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앞의 카드에 출현했던 중요 인물들이다. 세속의 모든 권력을 쥐었던 4번 카드의 왕은 녹다운 돼 있고, 세속과 타협했던 5번 사제는 두 손을 싹싹 빌고 있다. 인내의 여왕 8번 카드의 여인도 고개를 돌리고 있다. 어린아이만 저승사자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죽음이란 삶의 가면이 벗겨지는 것일까. 페르소나에 따라 죽음을 맞는 태도도 다른 듯하다.

세상의 최고 권력을 쥐었던 왕은, 왕관이 내동댕이처진 채 무너졌고, 사제는 죽음 앞에서도 손을 빌며 협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안타까운 것은 늘 인내로 내면의 힘을 축적해왔던 8번 여왕의 모습이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외면하고 있다. 죽음 앞에선 인내도 백해 무용지물인 것이다.

나는 마치 8번 여왕의 모습이 시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는 정말 자신의 병을 몰랐을까. 그토록 밭은기침을 해댔는데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당신의 죽음을 끝까지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그것이 못내 가슴 아팠다. 정말 몰랐는지 모른 척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시어머니는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약을 달라던 그 마지막 말이 유언이 돼버렸다. 그토록 허망한 유언이라니.  

유언이란 죽음 후에 나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퇴계는 ‘매화꽃에 물을 줘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천재 시인 이상은 ‘멜론 향기를 맡으며 죽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약을 달라던 시어머니의 유언이
시어머니를 기억하는 방식이 되었다.
유언(遺言)을 직역하면 떠도는 말이다.
당신이 죽어도 당신 측근 곁을 떠돌 말.
저승사자의 모자 깃털 방향과 반대로 펄럭이는 깃발처럼,
유언이란 죽음을 역주행하듯 떠돌 말이다.
나는, 당신은 무슨 유언을 남길 수 있을까.

▲조연희 '야매 미장원에서' 시인 golenelia@hanmail.net

 ※이 글은 점술학에서 사용하는 타로 해석법과 다를 수 있으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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