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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사무친 그리움, 북녘 가족 생사라도…" 애끓는 망향가

등록 2021.09.21 10:00:00수정 2021.09.21 12: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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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3·8선에서 개성까지 2㎞도 안 돼…머나먼 고향 땅"
"허전함 여전…눈 감기 전 고향 땅 한 번 밟았으면"
광주 거주 이산가족 생존자 해마다 줄어…총 44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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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광주 지역 이산가족 김천수(87)씨가 지난 16일 광주 남구 자택에서 청년시절 자신의 사진을 든 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09.19.hyein0342@newsis.com


[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남들은 명절이면 형제도 만나고 부모 산소도 간다는데…나는 가족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라. 그래서 매일 슬퍼."

17살 되던 해 남쪽으로 피난 온 실향민 김천수(87)씨는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6일 "생사도 모르는 어머니와 동생들 생각에 매일 밤 눈시울을 붉힌다. 가족 얼굴 한 번 보고 눈 감고 싶다"며 이 같이 말했다.

황해북도 개성시에서 4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1951년 1·4 후퇴 당시 퇴각하는 국군·유엔군과 함께 피난 행렬에 올랐다. 가족에게 "며칠 뒤 곧 돌아오겠다"고 말한 뒤 또래 친구 2명과 함께 강화도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배를 탔다.

그는 고향과 인접한 경기도 양주 미군·캐나다 부대 주둔지에 정착, 지뢰 등을 나르는 노무자(머슴살이)로 살며 끼니를 해결했다.

휴전을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강원도 춘천부터 북쪽으로 난 기찻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 3·8선 인근에 도착했다. 그러나 "앞에서 치열한 접전 중이라 길이 막혔다"는 대답과 함께 발길을 돌려야 했다.

23살 되던 해 광주로 내려와 아내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지만, 여전히 북녘 땅 가족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김씨는 '김흥수', '김명순', '김용수' 동생들의 이름 석 자를 들고선 통일부에 가족의 생사를 수 차례 물었지만, '찾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김씨는 "휴전선과 개성 고향 땅이 5리(약 1.97㎞)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죽음을 각오하고 고향까지 달음박질 할까도 생각했다"고 눈물을 훔쳤다.

민족 대명절이 돌아 올 때면, 가족 생각에 '자라나던 그 시절, 눈물 속 별 빛 속에 흘러갑니다' 고향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리움을 달래왔다고 했다. 그는 "겨울이면 나무판자로 썰매를 타고, 여름엔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았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동생들과 추억을 곱씹었다.

이어 "요즘 남북 관계가 좋지 않아 죽기 전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죽기 전 동생 얼굴 한 번 보고 눈 감고 싶다"며 인도주의적 차원의 남북 가족 상봉이 이뤄지길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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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광주 지역 이산가족 안금옥(91·여)씨가 지난 16일 광주 남구 자신의 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09.19.hyein0342@newsis.com


또 다른 이산가족 안금옥(91·여)씨도 애달픈 명절을 보내고 있었다.

함경남도 단천시에서 나고 자란 안씨는 지난 1946년 16살 무렵 무역 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4년 뒤 6·25전쟁이 일어나자 고향 땅에 살던 어머니·언니와 떨어져 살게 됐고 이후 70여 년이 흘렀다.

안씨는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전쟁의 참화를 피해 광주에 내려와 전쟁 기간 중 학교를 다녔다. 이후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뒤 광주 학강·송정초등학교에서 4년간 교편을 잡았다.

22살 무렵 결혼을 한 뒤엔 살림을 하고 자녀를 키우며 바쁘게 살았지만, 갈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졌다.

안씨는 여러 통로를 통해 어렵사리 미국에 사는 고향 사람과 연락이 닿아 가족 소식을 접했지만, '이미 두 분 다 숨졌다'는 비보였다.

안씨는 강원도를 찾아 고향 음식인 가자미 식해·아바이 순대를 먹거나 2000년대 금강산 관광을 다녀오면서 향수병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달랬다. 그러나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그는 "북쪽 관광 가던 날 꿈에서 어머니가 갓을 쓰고 나타났다"며 "수십 년 간 잊고 살았던 어머니 얼굴이 생생히 기억나면서 따뜻함을 느껴 가슴이 벅찼다"고 울먹였다.

안씨는 "아직 고향 단천은 개발이 진행되지 않아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늦기 전 고향 땅 한번 밟는 소원을 꼭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서 21일 조회한 통계한 결과, 올해 8월 광주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이 446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매년 8월 기준 2017년 557명, 2018년 537명, 2019년 518명, 지난해 488명 등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전국 생존 이산가족 4만7318명 중 90세 이상은 1만3043명(27.6%)에 이른다. 이어 80대 1만8210명(38.5%), 70대 9239명(19.5%), 60대 4016명(8.5%), 59세 이하 2810명(5.9%)으로 나타났다. 80세 이상 고령층 이산 가족이 50%를 거뜬히 넘긴다.


◎공감언론 뉴시스 hyein034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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