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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모태' 광주천 이야기] ⑩일제때 사라진 이름 되찾기 나서자

등록 2021.09.27 06:00:00수정 2021.09.27 06: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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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다양한 옛 이름 1916년 광주천 통일…역사적기억·감성배제 단조로움
사랑스런 옛 이름 되살려 마음의 안식처로…세련된 하천 재탄생 `시발점'
진자리서 광주 키워 준 `어머니'…`빛고을 대추여울'제안, 온 세상에 퍼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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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배상현기자=광주역사민속박물관은 도시 광주의 모태인 광주천의 역사를 담은 기획전시 ‘광주천 : 대추여울(棗灘)의 시간’의 한 장면. 박물관은 오는 24일부터 8월29일까지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 (2021.06.22) (사진= 광주시 제공) praxis@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배상현 기자 =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의 기획전시, `광주천 : 대추여울(棗灘)의 시간'과 함께 시작했던 광주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일제시대때 사라진 옛 광주천 이름의 되찾기를 제안한다. 

옛부터 광주천은 구간마다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광주천 상류에서는 곽천(藿川), ‘멱내’, 남계(南溪),  원도심(옛 광주읍성 일대)을 지날 때쯤인 중류에서는 조탄(棗灘), 조수(棗水), 금계(錦溪)라고 했다. 양동을 넘어선 다음부터 영산강과의 합류점까지인 하류에서는 대강(大江), 큰 강, 혈포(穴浦), ‘구멍개’라고 불렀다. 광주천 전체를 아우르는 이름으로 건천(乾川), 전천(前川), ‘앞강’이 있었다.

 다양한 광주천 이름들이 지금처럼 광주천으로 통일된 것은 1916년이다. 일제는 `조선총독부 관보' 1916년 6월 7일자를 통해 이 사실을 고시됐다.  전주의 전주천, 함평의 함평천 식으로 하천이 통과하는 도시의 행정구역 명칭을 따다 붙였다. 하천에 대한 역사적 기억이나 주민들의 감성이 배제되면서 상당히 단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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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배상현기자=1910년대 광주천 둔치에 열린 큰 장터 모습. 1920년대 광주천 정비로 둔치가 사라지자 큰 장은 사동 37번지로, 다시1940년대 양동으로 이전해 지금의 양동시장이 됐다. 2021,08.23 (사진=광주역사민속박물관 제공) praxis@newsis.com



 광주시가 됐든 광주지역 시민·문화·환경단체가 됐든 일제시대때 잃어버린 옛 광주천의 이름 되찾기에 나서줄 것을 제안한다. 광주천의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거대한 담론보다는 척박해진 도심속에서 아름답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옛 이름을 살려 시민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름에 걸맞게 좀 더 잘 정비되고 세련된 광주천이 재탄생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구제적으로 말하자면 광주천의 이름을 `대추여울'로 제안한다.

 대추여울, 조탄(棗灘). 광주천의 옛 이름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조탄. 조탄은 순 우리말로 대추여울 또는 대추나무 여울이란 뜻이다. 농익은 대추 빛깔을 한 광주천의 석양이 너무 고와 조탄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광주천을 조탄이라 부른 역사는 깊다. 16세기 광주에 온 민제인의 시에 조탄은 조수(棗水)란 이름으로 나오고 16세기 중앙정계에서 큰 활약을 한 광주 출신의 정만종의 호도 조계(棗溪)였다. 145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광주에서 대조(大棗), 즉 대추가 많이 난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무등산이 늘 곁에서 광주를 지켜보는 광주의 어머니라면 광주천은 진자리에서 광주를 키워준 또 다른 어머니가 아니었을까?라는 물음 처럼, 광주천은 광주의 모태이자 상징, `빛고을의 대추여울'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끝)


◎공감언론 뉴시스 praxi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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