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is

  •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군사대로]아차 하면 총살…북한서 벌어지는 실사판 오징어게임

등록 2021.10.10 11:00:00수정 2021.10.18 09:23:55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기사내용 요약

김일성, 현준혁 암살 등 경쟁자 잦은 숙청
김정일, 심화조 사건 등으로 수만명 제거
김정은, 고사총 등 동원해 엽기적 총살형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오징어게임 (사진=넷플릭스)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참가자 456명 중 살아남은 단 한 명만 상금 456억원을 탈 수 있다. 탈락자들은 무참히 총살을 당하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사소한 규칙을 어겨도 바로 총살 당한다.

이런 무자비한 게임은 상상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는 권세를 누리던 엘리트들이 하루아침에 총살을 당하는 일이 수십년째 반복돼왔다. 김씨 일가는 숙청과 처형을 통해 경쟁자를 제거하고 반대파를 도태시켰다.

김일성 주석은 해방 정국에서 소련 스탈린처럼 정적과 반대파를 제거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다.

첫 희생양은 평양 출신으로 김일성의 라이벌로 떠오르던 현준혁 북조선임시정치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현준혁은 해방 직후 소련군정하에 있었던 1945년 9월28일 평양시 중심가 평양시청 앞 노상에서 권총으로 저격 살해됐다. 김일성이 암살 배후로 거론됐지만 소련의 비호를 받고 있던 김일성을 누구도 함부로 고발하지 못했다.

소련과 중국을 부추겨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은 한국을 점령하는 데 실패하자 그 책임을 남조선노동당을 이끈 박헌영에게 전가한 뒤 숙청했다. 김일성은 허가이 등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친소련파 인사들도 여러 이유를 들어 제거했다.

8월 종파사건은 김일성 통치 시기 대표적인 숙청 사례다. 박창옥과 윤공흠 등이 1956년 8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의를 통해 김일성을 당에서 축출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사건은 북한 역사상 유일무이한 조직적인 반김일성 운동이었다. 김일성은 이 사건을 계기로 연안파(친중파)와 소련파(친소파) 인사를 1958년까지 숙청하고 당권을 재장악했다.

1967년 갑산파 숙청은 김일성의 후계자인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도한 사건이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28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14기 5차 회의 1일차 회의가 진행됐다고 29일 보도했다. (사진 = 조선중앙TV 캡처) 2021.09.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갑산파는 박금철 등 양강도 갑산 지역 출신 인사들을 가리킨다. 박금철 노동당 부위원장, 리효순 대남 총책, 김도만 당 선전선동부장 등은 김일성 유일사상체계에 도전했다가 당시 25세였던 김정일에 의해 숙청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정일은 김일성의 인정을 받아 후계자 반열에 올라섰다.

후계자가 된 김정일은 아버지처럼 반대파 숙청을 반복했다.

김정일의 독주를 견제하려던 김동규 국가 부주석이 1976년 6월 지경수 당 검열위원장, 지병학 인민무력부 부부장, 리용무 총정치국장 등과 함께 숙청됐다. 주동자 김동규는 함경남도 부전군 산간 지역에 감금됐고 지경수·지병학은 가혹한 추궁을 받다가 차례로 사망했다.

김정일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3년간 심화조 사건으로 2만명 이상을 숙청했다.

김정일은 사회안전성(인민보안성) 안에 비밀경찰 조직인 심화조(深化組)를 설치했다. 심화조는 주민의 사상 조사를 심화시킨다는 뜻이다. 김정일은 당시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있던 장성택을 심화조에 기용했다. 장성택은 고참 간부들과 측근, 이들의 친척들을 숙청했다.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농업 담당 비서로 있던 서관희는 대기근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 평양 시내에서 공개 총살 당했다. 장성택의 정적이기도 했던 문성술은 장성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숙청된 장성택에 대해 사형을 집행했다고 12월 13일 보도한 가운데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에서 장성택에 대해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했고 즉시 집행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장성택은 지난 8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반당 반혁명 종파행위 혐의로 모든 직무에서 해임된 지 나흘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2013.12.22. photo@newsis.com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한 아들 김정은 역시 숙청을 자행했다. 선대보다 더 잔인한 수법이 동원됐다.

김정은 집권 후 처음으로 숙청된 인물은 2011년 김정일 영결식에서 나란히 운구차 맨 앞에 섰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었다. 김정은의 군부 과외교사로 불렸던 리영호는 2012년 7월 숙청됐다. 리영호가 김정은의 허가 없이 열병식 군부대를 마음대로 움직였다는 이유로 제거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리영호를 포함해 김정일 영결식에서 영구차를 호위했던 김정각, 김영춘, 우동측 등 군부 4인방도 모두 실각하거나 한직으로 물러났다.

2013년 11월에는 리용하 당 제1부부장과 장수길 당 부부장이 비리 등 반당 혐의로 처형 당했다.

장성택 처형은 김정은 통치 시기 대표적인 숙청 사례다. 김정은은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고 출당·제명한 뒤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 후 처형했다.

당시 노동신문은 장성택 처형에 대해 "최근 당 안에 배겨있던 우연분자, 이색분자들이 주체혁명위업계승의 중대한 역사적 시기에 당의 유일적 영도를 거세하려 들면서 분파책동으로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감히 당에 도전해 나서는 위험천만한 반당반혁명적 종파사건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associate_pic

【평양=AP/뉴시스】지난 2012년 7월18일 북한군 총참모부 총참모장에 재임 중이던 현영철 전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평양에서 열린 한 회의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한국 정부 관계자가 지난 12일 현영철이 지난 4월 말 처형됐다고 밝힌 뒤 북한이 13일 현영철 전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숙청을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5월 의회에 현영철이 4월30일께 평양 강건 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사총으로 총살됐다고 밝혔었다. 2015.07.13

국가정보원은 당시 '장성택 처형과 관련해 기관 간 이권 갈등과 장성택 측근의 월권 문제가 누적된 상황에서 김정은이 시정 지시를 했지만 장성택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14년 9월에는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었던 김근섭이 부패 혐의로 공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근섭은 황해도에 현실체험을 갔다가 남한 영상물 시청 등 심각한 비사회주의 현상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체포돼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4월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반역죄로 평양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됐다. 현영철 처형 사유는 김정은에 대한 불만 표출, 김정은 지시 수차례 불이행 혹은 태만, 김정은 주재 군 훈련일군대회에서 졸고 있는 모습 포착 등으로 분석됐다.

변인선 군 총참모부 작전국장은 대외 군사협력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의 지시에 이견을 제시했다가 크게 질책을 받고 2015년 1월에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영남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은 평양 대동강 쑥섬에 건설 중인 과학기술전당의 설계에 대해 김정은에게 이견을 제시하고 미래과학자거리 건설과 관련해서도 '전기부족으로 공사하기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가 2015년 2월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영건 내각 부총리는 산림녹화정책과 관련해 불만을 표출하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이유로 2015년 5월 총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 참석했다고 15일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쳐) 2021.01.15. photo@newsis.com

2016년 7월에는 평생 교육관료로 살아온 내각 부총리 김용진이 총살 당했다. 김용진은 같은 해 6월 최고인민회의 당시 졸거나 안경을 닦는 등 '자세가 불량하다'는 이유 등으로 총살 당했다.

김정은은 일반 주민들에게도 공포통치를 자행했다. 2013년 1월 함경북도 청진시에서는 남성 2명이 남한 영상물을 봤다는 이유로 총살 당했다. 2015년 4월에는 은하수 관현악단의 총감독과 3명의 단원이 나체 상태로 예술계 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관총으로 처형됐다.

대를 이은 공포정치는 변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도 김정은은 강등과 승진을 반복하는 견장정치를 구사하며 고위급 간부들을 길들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끔찍한 총살형이 재연될 수 있다. 

이무철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은의 공포정치와 통치리더십' 보고서에서 "공포정치는 심리적 공포와 위축감을 조장함으로써 잠재적 반대세력을 억누르는 한편 밑으로부터의 순응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공포정치의 동기는 정통성의 부족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통치력의 한계에 직면한 지도자의 자포자기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며 어떤 경우 잘 짜인 권력 안정화의 각본에 의거한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많이 본 기사

이 시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