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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안중근 유해 봉환…日은 모르쇠, 中은 北 눈치

등록 2021.10.26 14:54:21수정 2021.10.26 15: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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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일본, 사형 집행하고도 고의로 유해 빼돌려
중국, 남북 공동 발굴 요구하면서 비협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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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26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2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2021.10.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국가보훈처가 26일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제112주년 기념일을 맞아 안 의사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협의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유해가 어디 있는지 자체를 모르는 데다가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은 북한 눈치를 보고 있다. 안 의사 사형을 집행한 일본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해방 이후 안중근의사 유해 발굴 현황과 방향 제언' 논문에서 수십 년간 이어져온 유해 발굴 시도를 소개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일제 당국은 안 의사 시신 혹은 묘소가 향후 반일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염려해 자국 법률인 감옥법 제74조를 무시하면서까지 시신을 가족들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또 매장지조차 비밀에 부쳤다.

이 때문에 안 의사 시신은 뤼순감옥 묘지에 매장됐다고 알려졌을 뿐 그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남아있지 않다. 심지어는 일제에 의해 시신이 훗날 이장되거나 아예 흔적을 없애기 위해 불태웠다는 의견까지 제시됐다.

해방 직후인 1948년 백범 김구가 남북협상회의에서 김일성에게 유해 발굴을 제안했다. 항일 무장 투쟁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김일성은 '뤼순에 소련군이 주둔해서 어려우니 남북통일 후 추진하자'며 사실상 거부했다.

북한은 안 의사 고향이 북한이라는 지역적 연고를 내세워 1970년대 중반 조사단을 뤼순에 파견했다. 조사단은 형무소 기록 등을 검토하고 형무소 주변을 조사했지만 유해 확인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2년 7월5일 한일 외무장관회담 후 하타노 일본 참의원 외무위원장이 뤼순에 있는 안 의사 유해를 한국에 안치할 수 있도록 중국과 교섭해보겠다고 이범석 외무장관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직후 일본 국토청장관 마쓰노가 안 의사에 대해 망언을 하고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이 일어났다.

북한은 1986년 7월 뤼순에 유해 발굴단을 다시 보냈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1개월간 조사가 이뤄졌지만 성과는 없었다.

한국 정부는 1993년 일본 정부에 "안중근의 묘소 확인과 유해 봉환이 추진된다면 진정한 과거청산의 미담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 외무성은 사형을 집행한 후 뤼순감옥에 매장했다는 내용 외에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고 답변했다. 당시 중국 정부도 북한을 의식한 듯 안 의사 묘소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확인되지 않는다며 난색을 표했다.

2004년 5월 국가보훈처장이 중국을 방문해 유해 발굴 협조를 요청했다. 중국 정부는 안 의사 매장지 현장을 조사했으나 단서를 찾지 못했다면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추진할 경우에 협조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2005년부터 수년간에 걸친 남북 실무협의를 통해 공동 발굴이 추진됐다. 하지만 중국의 비협조로 공동발굴이 늦어지는 가운데 발굴예정지가 아파트 부지 공사로 훼손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북한도 돌연 공동 발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마침내 2008년 3월부터 안 의사 유해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관계 공무원과 발굴 전문가 등 13명으로 구성된 1차 발굴조사단은 3월25일부터 4월2일까지 조사를 벌였다. 이어 충북대 유해발굴조사팀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10명으로 꾸려진 2차 발굴조사단은 4월10일부터 4월29일까지 최신식 장비를 동원해 조사했다.

조사 지역이 아파트 공사로 이미 상당히 훼손된 데다가 예상치 못했던 중국측의 통제와 제약으로 당초 계획했던 대상 지역의 일부만 발굴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지형 변화도 일어나 있었다. 결국 발굴에 실패했다.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때 남북 공동 발굴 공감대가 형성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3·1절 100주년을 계기로 남북연락사무소를 통해 공동 발굴 등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응답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과 중국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철호 교수는 "일본은 우리의 거듭된 요청에도 안중근의 유해에 관련된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그러나 일본은 당시 정부차원에서 안중근의 사형과 유해 매장지 은폐를 전적으로 지시했던 만큼 그의 유해 처리를 논의·결정했던 문서를 남겼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또 "중국은 안중근의 유해가 묻혔던 장소이기 때문에 유해 발굴의 허용 여부를 결정짓는 당사국"이라며 "아울러 중국은 일본이 패망하면서 미처 소각하지 못하거나 갖고 가지 못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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