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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 "노태우 서거" 긴급 타전…"격동의 현대사 그림자"

등록 2021.10.26 17:28:28수정 2021.10.26 20: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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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쿠데타 핵심 인물이자 첫 직선제 대통령
AP통신 '보통사람''물통령' 별명도 소개
日언론 "과도기 시대 다리 역할" 평가
북방 외교로 공산권과 적극적 외교 수립
남북 첫 고위급 회담·유엔 동시 가입 평가
쿠데타·거액 비자금으로 징역 17년형
특사로 사면…출소 후엔 정치행보 자제
'88 서울올림픽' 성공 개최 업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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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왔다.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에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눈을 감았다. 사진은 1989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교황 요한바오로2세 방한 행사에 참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DB) 2021.10.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신정원 김예진 기자 = 26일 주요 외신들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긴급 타전하면서 그의 정치 역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특히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핵심 인물이자 직선제를 통해 당선된 첫 대통령이라는 점을 주목하면서 한국 격동의 현대사의 한 그림자였다고 평가했다.

AP통신은 "노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이후 그의 군 동료이자 쿠데타를 이끈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든 1979년 군사 쿠데타의 핵심 참여자였다"며 "노 전 대통령은 육군 사단을 이끌고 서울로 진입했고 다른 군 지도자들과 함께 수도를 점령하기 위한 작전을 펼쳤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쿠데타와 1980년 광주 민주화 시위대에 대한 전두환 군부의 탄압은 격동의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2개의 장(chapters) 중 하나"라며 "정부 기록에 따르면 군부의 탄압으로 광주에서 약 200명이 사망했다"고 부연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선택한 후계자로, 간접선거를 통해 쉽게 대통령직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며 "그러나 1987년 몇 달 동안 일어난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이들은 한국의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시작된 직선제를 수용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군 출신임에도 선거 운동 기간을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고 부르며 온건하고 상냥한 이미지를 만들었고 1987년 12월 선거에서 크게 승리했다"며 "다만 이것은 이후 대통령이 된 김영삼·김대중 당시 의원들의 분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으로서는 북방 외교 정책 하에 공산주의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동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옛 소련이 해제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AP는 "한국은 당시 북한과의 경쟁 관계 때문에 반공산주의 경향이 강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공산주의 국가인 헝가리와 외교관계를 수립했다"며 "1990년 소련, 1992년 중국과도 잇따라 수교했다"고 소개했다.

또 "북한과의 관계도 개선됐는데 남북은 1990년 사상 첫 고위급 회담을 개최했고 1991년엔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며 "이후 북한이 생존 수단으로 간주하는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남북관계는 크게 후퇴했다"고 했다.

국내 문제에선 카리스마와 공격적인 리더십이 부족한 것으로 보여지며 '물태우'란 별명을 얻었다고 전했다. 권위적이었던 전임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조적으로 정치적 풍자를 더 허용한 영향도 있다고 했다.

경제적으론 세계 경제 불황으로 침체된 수출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내수 진작에 주력했지만 임기 중 가장 낮은 연간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 반란, 반역, 부패 혐의로 징역 22년6개월의 유죄 판결을 받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사형을 선고받았다면서 이후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불법 비자금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이후 감옥에서 2년을 살았고 아시아 금융 위기 속 국민 화합을 추구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1997년 석방됐다는 것도 알렸다.

출소 후엔 정치 활동과 연설을 자제하면서 대중의 시선을 피해왔다고도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권위주의 지도자에 의한 통치에서 민주 선거로의 전환에서 중추적이지만 논란이 많은 군인 출신"이라면서 "군사 쿠데타 공모자에서 한국 첫 직선제 대통령이 됐고 반역과 부패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은 불명예스러운 정치 경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일본 언론들도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신속하게 보도했다.

일본 공영 NHK는 소식을 속보로 전한 뒤 이후 기사에서 "한국의 마지막 군인 출신 대통령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끈 노 전 대통령이 26일 사망했다"며 "그는 쿠데타에 참가했고 쿠데타 등의 혐의로로 징역 17년을 선고 받았으나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후에는 정치 무대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지통신은 공산권 국가들과 관계를 확대하는 북방외교를 추진했던 노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과도기 시대에 다리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닛케이)은 그가 '88 서울올림픽' 성공으로 남북 긴장완화, 사회주의 국가와 관계 구축에 노력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그가 1990년 5월 방일 했을 때 일본 측에게 심화된 발언을 요구했으며 이에 당시 일왕(현 아키히토 상왕)이 만찬회에서 "통석한 념(念·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한 사실도 전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한국 국민은 언제까지나 과거에 속박 돼 있을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wshin@newsis.com, aci2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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