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미국과 동맹국들이 전세계 민주화 후퇴 주도" NYT

1990년대 민주주의 증진 기여도 9%가 2010년대 5%로

민주주의 악화 기여도는 5%에서 36%로 크게 늘어

불평등, 인종차별 등 미국식 민주주의 매력 하락이 원인

[스털링=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주 스털링에 있는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골프를 치면서 골프공을 전달받고 있다. 미 여론조사 결과 미국 유권자의 과반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 행보가 민주주의를 약화하고 있다고 우려했으며, 그가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명 중 4명은 트럼프가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중 한 명이 될 것으로 응답했다. 2020.12.14.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최근 10년새 전세계 민주주의 후퇴의 책임이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더 큰 몫이 있는 것으로 최근 분석에서 밝혀졌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평균적으로 미국의 동맹국들은 비동맹국들보다 더 민주적인 나라들이지만 2010년 이래 이들 나라의 민주주의가 후퇴해 공정선거나 재판의 독립성과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가 비동맹국가들에서보다 더 큰 폭으로 약화됐다는 것이다.

또 이 기간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한 경우는 사실상 없다.

이같은 결과는 스웨덴의 비영리법인인 V-Dem(https://www.v-dem.net/en/analysis/CountryGraph/)이 10여 가지의 민주주의 요소들을 기준으로 각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측정한 자료를 NYT가 분석해 밝혀낸 것이다.

특히 민주주의 후퇴가 외국의 압력에 기인하기보다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의 부패가 심해진 결과로 나타났다.

프랑스와 슬로베니아의 경우 정치적 불신과 악영향이 커지면서 제도에 대한 신뢰가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바레인과 같은 나라에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가 문제가 됐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화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미국의 동맹국들에서 특히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터키, 헝가리, 이스라엘과 필리핀이 대표적이다. 또 미국을 포함해 상대적으로 민주주의가 잘 발달한 일부 국가들에서도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투표권 제한, 사법부의 정치화 등의 요인들이 민주주의 학자들이 우려하는 현상이다.

이같은 상황은 미국이 본질적으로 세계의 민주주의를 추동한다고 믿어온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미국이 전세계 민주주의의 보루임을 과시해왔으나 내막은 훨씬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의 많은 동맹국들에서 일어난 변화로 미국의 영향력이 미국식 자유 증진에 기여했다는 인상을 확산시켜왔는데 과연 이 믿음이 옳은 것인지, 정말 미국이 그런 역할을 해온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일고 있다.

토론토대 정치학 세바 구니츠키교수는 "트럼프 때문이라고만 말하는 건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라면서 자료에 따르면 이런 경향은 그가 취임하기 전부터 가속화됐다고 밝혔다.

학자들은 그보다는 이런 변화가 보다 장기적 추세라면서 미국을 모델로 삼는 신뢰가 약해지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자체가 약해졌다고 말한다. 대테러 등 단기적 문제에 매몰된 미국의 정책과 미국에서 비자유주의적 정당이 인기를 끄는 현상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동맹국들 사이에서 민주주의가 약화하면서 민주화에 대한 국제적 합의도 변화하고 있다고 구니츠키 교수는 밝혔다.

냉전이 끝난 이래 미국 동맹국들의 민주화는 더디게 진행됐다. 1990년대 터키와 한국을 포함한 19개 동맹국에서 민주주의가 진전된 반면 요르단과 같은 6개 나라에서는 독재가 조금이나마 심해졌다.

V-Dem의 민주주의 지수는 투명하고 강력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1990년대 민주주의 척도가 0.517에서 0.768로 크게 진전됐다. 군사정부에서 시민통치 국가로 전환된 결과다. 그러나 언론자유나 사법부 독립과 같은 척도는 미미하게 개선됐을 뿐이다.

V-Dem 수치에 따르면 1990년대 미국과 동맹국들은 전세계 민주화 점수 상승의 9%를 차지했다. 이미 상당한 정도 민주화된 나라들에서 이처럼 민주주의가 성장한 것은 대단히 큰 변화하고 할 수 있다.

또 동맹국들이 민주주의 약화에 기여한 비중은 5%로 측정됐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이들 수치가 나빠졌고 2010년대 들어서면서는 재앙적 수준이 됐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전세계 민주주의 진전에 기여한 비중이 5%인 반면 악화에 기여한 비중은 36%로 크게 늘어난 것이다.

평균적으로 동맹국들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후퇴 정도가 비동맹국들에서 보다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V-Dem 지수에서 드러났다.

미국의 동맹국들에는 미국과 공식 방위조약을 체결했거나 비공식적이지만 방위 약속을 주고 받은 41개 국가들이 포함돼 있다.

이같은 민주주의 후퇴 현상은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과 동반돼 발생했다.

민주주의 약화현상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특히 미국의 동맹국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스태판 린드베르크 고텐부르크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강조한다. 그는 V-Dem 지수 측정을 감독했다.

한편 카네기국제평화재단 토마스 카로서스 연구원은 냉전 시기 미국의 동맹국이 민주화 세력이었다는 메시지는 결코 사실에 부합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이 구 소련연방에 맞서 서유럽의 민주주의를 강화한 것은 맞지만 다른 지역에는 민주주의 확산을 억제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독재자들을 복원시키거나 자리잡도록 해 좌파에 대한 폭력적인 압제를 독려하고 비민주적인 군사정권을 지지했다. 많은 동맹국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이것은 구소련의 동맹국들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었다.

그 결과 1989년 냉전이 종식되면서 강국들의 간섭이 줄어들었고 각 나라의 민주화가 더 쉬워졌으며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움직였다.

카로서스 연구원은 "당시 성장한 사람들은 그런 일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패권을 장악한 미국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착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1년 미국 테러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이 말 잘듣는 독재자들을 압박해 민주화를 방해했다. 이번에는 주로 이슬람 국가들이 대상이 됐다.

이런 현상이 10년간 지속되면서 미국의 동맹국들에서 민주주의 기초가 약화했다. 동시에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화 압력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구니츠키교수는 "민주주의 패권은 민주화를 위해 좋은 것이지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민주주의를 홍보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 아닌 다른 기전을 통해 작동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영향력이 강력한 나라에서도 미국이 끼친 영향은 간접적이었으며 단지 모방의 대상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구니츠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다른 나라의 지도자와 시민이 미국 스타일의 통치방식이 번영과 자유를 가져올 것으로 믿는 경우에만 민주주의를 권장했다. 어떤 나라들은 그렇게 해야만 미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긍정적 인상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최근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들이 본받아야 할 좋은 사례로 보는 것으로 나타난 여론 조사 결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전세계 인구의 17%만이 미국 민주주의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23%는 아예 모범이었던 적이 없다고 답한 것이다.

또 불평등과 같은 문제가 심해지면서 미국식 번영이 더이상 매력적이지도 않은 한편 중국이 경제적 모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잦은 총기사고, 양극화, 인종차별과 같은 미국 국내 문제들에 대한 인식도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켰다.

현재 진행중인 현상을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수 있다.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소수에 대한 보호와 제도에 의한 통치에 기반하는 보다 완성된 민주주의는 갈수록 인기를 잃고 있다.

그러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원하는 나라들은 민족주의적 경향 때문에 다른 나라에 매력적이지 않다. 결국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악화하면서 민주주의 자체가 퇴보하고 있는 셈이다.

구니츠키 교수는 "전세계 곳곳의 민주주의가 지닌 많은 장점들이 미국 정치체제의 매력과 연계돼 있다"면서 "둘 중 한가지가 쇠락하면 나머지도 함께 쇠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