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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인정해야만 가석방 허용…30년 복역 美 장기수의 굴레

등록 2021.12.03 12:22:29수정 2021.12.03 14:5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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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NYT, 살인죄로 30년 복역한 흑인 가석방 부결 전말 보도
가석방 심사위 유죄 인정 여부를 중요시하는 편견 있어
美 유죄 주장 고수 장기수들 가석방 가능성 전무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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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무죄 주장을 고수하면서 가석방이 거부된 고든이 수감돼 있는 미 뉴욕주 피시컬 교정시설.(출처: 미 매사추세츠주 우스터 카운티 소재 템플턴 당국 홈페이지 사진 캡처) 2021.12.3.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30년 가까이 살인범으로 복역해온 흑인 모범수가 가석방을 앞두고 무죄를 주장하며 가석방을 포기한 사연을 소개했다. 다음은 기사 요약이다.

살인범 판결을 받고 미 뉴욕주 비콘에 있는 피시컬 교도소에서 30년 가까이 모범수로 지내왔던 78세의 조셉 고든은 지난 3월 가석방 심사를 받았다. 그의 가석방 청원을 지지하는 수많은 탄원이 쇄도한 데 따른 비상상고 심의였다.

교도관의 가석방 추천은 물론 민간 교도소 직원들과 심리학자(고든이 수많은 정신병 수감자들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탄원했다)와 전직 교도소장의 탄원서도 있었다. 리로이 필즈 전 교도소장은 자신이 37년 동안 교도관으로 일하면서 석방을 추전한 것은 고든이 두번째라고 썼다. 그는 탄원서에서 조셉 고든이 "공동체의 생산적 일원으로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인격과 도덕심을 지녔다"고 강조했다.

가석방위원회는 가석방에 동의하지 않았다. 위원회는 "당신을 지금 석방하는 것은 사회의 안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석방하게 되면 당신이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을 부정하게 되고 법의 존엄성을 해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가석방 심사는 25년 이상 무기징역형을 받은 고든이 최소 복역기한인 25년 형기를 마친 2017년부터 다섯번째로 열린 것이었다.

가석방위원들은 이번 심사에서 단 한가지 불허 사유만을 들었다. 고든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흑인인 고든은 1991년 웨체스터 카운티에서 백인 의사를 살해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가석방위원회는 죄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판정했다.

고든 외에도 수십명의 죄수들이 무죄를 주장하며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사면준비프로젝트(Parole Preparation Project)의 미셸 레윈 집행이사는 "사면위원회는 죄수들이 책임을 받아 들이고 죄를 뉘우치고 있음을 밝히길 원한다"면서 이 때문에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든이 처한 상황은 특히 풀기가 어렵다. 그는 38세의 신경과 전문의 대니얼 팩 박사가 뉴욕주 엘름스포드에 있는 고든 집 지하실에서 총에 맞고 숨진 사실과 자신이 살인사건을 은폐한 사실을 인정한다. 퍼트남 카운티 숲속에 시신을 유기하고 의사의 차를 뉴저지에 있는 한 주차장에 버렸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팩 박사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도 누가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해왔다.

2017년 처음 사면위원회 심사를 받을 당시 고든은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아주 어렸으며 그를 보호하기 위해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범행은 원치 않는 성행위를 요구받아서 일어난 것으로 믿었고 팩 박사를 폄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의 평판을 훼손할 만한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면위원회는 고든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지 못한다"면서 사면을 기각했다. 두번째로 열린 심사에서 25년 만에 처음으로 고든은 총을 손 사람이 당시 열여섯살이던 자기 아들 채드라고 인정했다. 당시 심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집으로 돌아와 채드가 팩박사와의 은밀한 성관계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총을 쐈다는 것을 알게되자 "오 갓"이라며 화를 냈었다. 그렇지만 고든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자식을 교도소에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3월 심사에서 고든은 "그런 일은 해선 안된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사회와 체제를 신뢰할 수 없었다. 내 자식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 의사 가족이 격은 고통에 대해 유감을 밝혔다. 그는 "지금도 죽은 팩박사에게 미안할 뿐"이라면서 "부인이 겪은 고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입밖에 내기조차 힘든 일이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바꿀 수도 없다. 그렇게 할 수만 있었다면 했을 것이다.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가석방 심사가 열릴 때마다 위원들은 배심원들이 1993년 열린 재판에서 고든이 팩박사를 쐈다는 것을 유죄로 평결했다. 검사는 그가 희귀 야구카드에 두 사람이 함께 투자한 것과 관련해 다투다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었다. 가석방심사위원회는 고든의 무죄 진술이 "동성애 주장을 지어낸 것이며…냉혈하고 잔혹한 범죄의 특성을 드러낸다"고 한 존 스위니 주니어 판사의 판결문을 인용했다. 스위니 주니어 판사는 고든에게 유죄판결을 하면서 "사회에서 다시 자유롭게 돌아다닐 자격이 없다"고 했다.

고든은 근래 교도소에서 느릿느릿 걸어다니다. 교도관들은 그를 "늙은 고든"이라고 부른다. 지난 겨울에는 두번째 심장박동기를 달기 위해 몇 주동안 병원에 입원했었다. 키가 작고 용모가 단정한 그는 여전히 베트남에 공군으로 참전하면서 몸에 밴 습관에 맞춰 생활한다.

군에서 컴퓨터를 배웠고 제대한 뒤에는 큰 회사에서 일했다. 197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당시 결혼해 아들 하나를 뒀다. 아들이 두살이 되기 전에 이혼했고 자신이 성장했던 동부 엘름스포드로 이사했다. 아들 채드는 캘리포니아의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휴일에 고든을 찾았다.

고든은 야구 팬이던 아들과 친해지기 위해 야구카드 교환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1991년 채드가 학교 성적표를 고쳐 쓴 일이 생기면서 아들과 아빠가 함께 살아야 한다고 부인과 합의했다. 고든은 채드를 가톨릭 학교에 등록했고 오후에는 자기가 운영하는 로클랜드 카운티 스포츠 기념품점에서 일하도록 했다. 고든은 교도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1991년 12월 20일 아들에게 집에서 기다리다가 돈과 카드를 팩박사에게 주라고 했다고 밝혔다. 팩박사와는 몇 년 동안 수집가치가 있는 야구카드에 공동투자를 해왔다고 했다.

가게에 도착한 직후 전화응답기에 아들이 빨리 집에 와 달라고 소리치는 전화가 여러차례 있었음을 확인하고 곧바로 집으로 갔다고 사면위원회에서 밝혔다. 아들이 있는 지하실에서 팩박사의 시신을 봤지만 채드는 "아무 말도 못했고 자신도 한마디도 못했다"고 했다. 몇 시간 동안 겁에 질려 아들이 체포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했다면서 "교도소 영화에 나오는 온갖 추악한 일들을 아들이 겪게 될 것으로 상상했다"고 했다. 아들은 교도소 생활을 견디지 못하겠지만 제대군인인 자신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고 회상했다.

변호사는 아들이 범인임을 정식으로 밝히도록 요구했지만 자신은 그렇게 하길 원치 않았다. 살인범으로 체포된 고든은 증언하길 거부했다.

검사는 사건이 돈문제를 둘러싼 다툼 끝에 벌어진 것으로 기소했다. 제임스 루니 검사는 팩박사가 야구카드에 투자한 7만달러에 대해 따지려고 고든에게 갔던 날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팩박사가 투자 대가로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전에도 다툰 적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었지만 루니 검사는 고든이 돈을 돌려주지 않고 그를 자기 집에서 살해했다고 말했다.

팩박사의 깨진 안경조각이 지하실에서 발견되면서 살해현장으로 확인됐지만 팩박사의 입에서 소량의 정액이 발견된 감식 결과는 무시됐다. 당시는 정액의 출처를 확인하기에 너무 양이 적었었다. 검사는 정액이 "팩박사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즉 피고가 수사에 혼선을 일으키기 위해 넣은 것"이라고 배심원들에게 주장했다.

고든의 유죄 판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아들 채드의 증언이었다.

아들이 증언한다고 해 너무 놀랐다고 고든은 말했다. "채드가 겁에 질렸었다"면서 아버지가 누군지를 잊고 아버지가 자식을 결코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고 했다.

채드는 팩박사가 죽던날 아버지가 자신을 학교에서 2시반에 차에 태워 가게에 데려다 줬다고 했다. 자신은 가게와 인근 식품점에서 밤늦게까지 있었고 아버지가 몇 차례 왔었으며 집에 돌아가보니 경찰이 팩박사를 살펴보고 있었다고 했다.

며칠 뒤 채드는 아버지가 지하실 문을 다시 칠했으며 "고기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차 트렁크 바닥 카페트를 바꾸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살인이 있던 날 자신의 행적과 지하실에 권총을 보관하고 있었던 사실에 대해 경찰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시켰다고 했다. 총은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경찰은 고든의 총기가 범행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고든의 변호사는 흑인이 백인을 살해한 것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기 어려울 것을 우려한 시민단체가 선임했다. 고든은 변호사가 채드가 법에 걸리지 않도록 심문할 수 있다고 자신을 설득했지만 법정에서 갑작스럽게 채드에게 "네가 범인이 아니냐"고 물었고 채드는 "팩박사를 죽이지 않았다"고 울부짖으며 증인석에서 내려왔다.

고든이 유죄 평결을 받은 뒤 캘리포니아의 어머니에게 돌아간 채드는 통화에서 지금도 아버지가 유죄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소시오패스"라고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변호사는 1995년 숨졌고 그를 도왔던 보조 변호사는 "끔찍한 오판이 있었다고 지금도 믿는다"고 말했다.

교도소에서 고든은 팩박사 입에 있던 정액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거듭 요청했다. 유죄판결이 난 3년 뒤 그에 관한 기사를 읽은 고든의 이웃이 당시 경찰에게 자신이 본 것을 증언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1996년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이웃은 사건 당일 오후 3시반쯤 고든이 아들을 집에 내려주고 떠나는 것을 봤다고 했다. 15분 뒤에 멋진 하얀색 자동차가 도착했고 키크고 마른 백인이 내렸으며 채드가 그를 맞았다고 했다. 고든이 돌아올 때까지 두 사람이 집을 나간 것을 보지 못했다고도 했다.

이웃의 증언을 토대로 고든은 항소했지만 판사가 기각했다. 백인인 이웃은 "고든이 다시 재판을 받아서 증언할 수 있기를 바랬다"면서 "일이 그렇게 풀리질 못했다"고 했다.

2003년 고든은 DNA 분석전문 비영리단체인 이노센스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에 사건 조사를 요청했고 이 단체가 퍼트남 카운티 당국에 요청해 검사를 했지만 당시엔 여러번 검사에서도 결과를 도출할 수 없었다. 최종 분석결과가 나온 것은 2015년이었다. 고든은 물론 아들의 정액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누군가가 정액을 팩박사 입에 넣은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고든과 그의 변호사들은 새로운 증거가 팩박사가 동성애를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고든이 입에 넣었다는 검사의 주장을 뒤집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든의 거듭되는 주장에 퍼트남 카운티 지방검사실 수석 검사보인 크리스토퍼 요크가 주목했고 그가 지난 1월 가석방 심사위원회에 탄원서를 썼다. 유무죄에 대한 생각은 밝히지 않았지만 "고든이든 누구든 결백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석방기회가 박탈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썼다.

가석방위원회는 그러나 무죄주장을 배척했다. 노스이스턴대 법학과 대니얼 메드웨드 교수는 2008년 "무죄 죄수가 처한 딜레머"라는 논문에서 "무죄 주장이 범죄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강한 선입견이 있다"고 썼다.

메드웨드교수는 논문에서 거짓으로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석방된 사례를 여럿 제시했다. 그렇지만 이들이 석방된 뒤에 유죄판결을 뒤집기 위해 노력했지만 가석방위원회에서 한 진술 때문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고든은 자신의 주장을 가석방위원회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서 거짓으로 유죄 인정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거짓말이고 거짓말을 해선 안된다"고 한 정신병 의사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가석방위원회는 고든 석방에 대해 "지역사회에서 광범위하고 강력한 반대가 있다"고 밝혔다. 팩박사의 아내 마깃 팩은 고든의 석방에 줄곧 반대해왔다. "대니얼 팩이 결코 무덤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므로 고든도 교도소 밖으로 나와선 안된다"고 말했다.

퍼트남 카운티 지방검사 로버트 텐디도 고든의 석방에 강력히 반대한다. 그는 가석방심사위원회에 보낸 편지에서 고든이 "계속 위장하고 있다. 순진한 의사를 돈주머니로 생각해 수만달러를 빼앗은 뒤" 사기친 것이 드러나자 죽였다고 썼다.

텐디 검사는 고든이 "아들을 범인으로 몰고 팩박사를 치한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점이 가증스럽다"면서 고든은 나이가 많더라도 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고든은 이달중 여섯번째 가석방심사를 받는다. 석방된다면 죄수들을 가르친 교사였던 지금의 부인과 함께 퍼트남 카운티에 있는 집에서 조용히 살겠다고 말할 계획이다. 고든은 현재 교도소에서 죄수들의 질병 관련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면회객과 만나던 때 지나치던 한 교도관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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