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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국경에서 멈춘 한국의료진…정부 법 개정을"[우크라 의료지원上]

등록 2022.04.04 14:42:40수정 2022.04.11 09: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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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침공 두 달째…의료체계 붕괴 위기감↑

국내 의료진 여행금지·여권법에 현지활동 불가

국경없는의사회 티에리 코펜스 한국 사무총장

"한국 활동가 외과 등 실력, 헌신성 등 해외호평"

"한국인력 늘리고 싶지만 여행금지제도 큰 장애"

"현지 의료진 보호 포함 국제인도법도 존중돼야"

[서울=뉴시스]국경없는의사회 혈관 외과 전문의 마셜 레데크가 지난달 14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오흐마디트 병원 수술실에서 현지 환자에 대한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사진=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2022.04.04

[서울=뉴시스]국경없는의사회 혈관 외과 전문의 마셜 레데크가 지난달 14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오흐마디트 병원 수술실에서 현지 환자에 대한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사진=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2022.04.04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여러 날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전쟁터를 빠져나오느라 트라우마(심리적 외상)가 커 보였습니다. 난민 생활이 길어지면서 기존 질환들을 관리하지 못해 고통이 심한 환자들도 많아 의료 지원이 절실해 보였습니다."(고려대 안암병원 이식혈관외과 정철웅 교수)

현재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폴란드 지역에서 난민을 돌보고 있는 국내 의료진의 증언이다. 러시아의 침공이 한 달을 넘어서면서 우크라이나 의료 체계 붕괴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우크라이나 의료 시설 60곳 이상이 폭격 등의 피해를 입었고, 현지 약국 중 절반 가량은 문을 닫아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 질환자 치료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의료진은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와 달리 현지에서 활동하고 싶어도 여권법 등 관련 규정에 발이 묶여 의료 물품 등을 지원하거나 접경 지역에서 의술을 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국내 의료진이 의료 지원을 위해 우크라이나 입국 허가를 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여권법 등 관련 규정에 따라 천재지변·전쟁·내란·폭동·테러 등이 발생한 국가의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해 국민들의 방문과 체류를 금지하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 2월 군사적 충돌 우려가 높아진 우크라이나의 경우에도 여행경보 4단계(여행금지)를 긴급 발령하고 전역을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했다.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됐는데도 현지에 의료 지원을 떠나면 여권법 제17조 제1항 등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신청 절차를 밟으면 여행금지 지역을 방문할 수는 있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현재 공익을 위한 취재나 보도, 국외에 체류하고 있는 배우자나 형제·자매가 사망하거나 중대한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급히 출국해야 하는 경우 등으로 한정돼 있다. 의료 같은 인도적 지원은 신청 가능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

지난달 19일 국내 대학병원 중 처음으로 현지에 파견된 고려대의료원 난민의료지원단도 관련 법령에 근거해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폴란드에서 난민들을 돌보고 있다. 의료지원단은 우크라이나가 여행금지 지역에서 해제되면 현지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티에리 코펜스(Thierry Coppens)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은 지난 1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구호 활동가(비의료 분야 포함)들은 의료 기술, 특히 외과 분야에서 실력이 뛰어나면서도 헌신적이고 장기간 활동해 해외에서 높이 평가받는다"면서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 구호활동가 인력풀을 더욱 확대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여행금지 제도는 큰 장애 요소 중 하나"라고 밝혔다.

그는 "새 정부가 여행금지 제도 면제 신청 대상을 재검토해 인도주의 활동에 대한 면제가 원활해지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서울=뉴시스]티에리 코펜스(Thierry Coppens)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 (사진=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2022.04.04

[서울=뉴시스]티에리 코펜스(Thierry Coppens)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 (사진=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2022.04.04


-국내 의료진이 우크라이나 의료 지원에 제약을 받고 있는데, 언제부터 제약을 받기 시작했나요?

"한국의 여행금지 제도는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가 2012년 현장 활동가를 채용하고 파견하기 시작한 이래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핵심 활동 중 하나가 분쟁 지역 환자에 대한 의료지원 제공입니다. 외과의, 마취과의, 산부인과의 등 실력 있고 국경없는의사회 경험도 풍부한 많은 한국인 활동가를 현장으로 파견하는 데 여행금지 제도가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여행금지 제도는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현장 구호 활동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예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국가에도 국내 인력 파견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인 활동가가 인도주의 활동에 기여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 국내 의료진의 해외 의료 활동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나요?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는 2016년 여행금지 제도를 완화해 줄 것을 한국 정부에 제안했지만, 안타깝게도 성공적이진 않았습니다. 특히 2016년 5월 여권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국경없는의사회와 같은 민간 인도주의 단체의 한국인 활동가들이 인도적 지원이 시급한 일부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됐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실력있고 헌신적인 활동가가 필요하고, 한국에는 그런 활동가가 많이 있습니다. 새 정부에서 여행금지 제도 면제 신청 대상을 재검토해 인도주의 활동에 대한 면제가 원활해지길 바랍니다."

-우크라이나 현지에 필요한 의료 지원은 어떤 것인가요?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약 400만 명의 난민이 우크라이나를 떠나 인근 국가로 피란했고, 총 1000만 명의 인구가 집을 떠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십만 명이 폭격과 전투를 피해 피란을 떠났습니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포함해 예멘,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 다양한 국가의 난민들은 갑자기 마주한 분쟁에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피란을 떠났기 때문에 의료지원과 더불어 보호 및 필수품 지원이 중요합니다. 특히 정신적 외상을 초래할 정도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심리·정신건강 지원이 필요하고요."

-분쟁 지역에 파견되는 의료진이 부상자를 구조하다가 공격을 받기도 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보호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때때로 의료진들은 자원이 부족한 시설에서 환자와 부상자를 돌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합니다. 분쟁 지역의 의료진과 시설에 대한 보호를 포함한 국제인도법이 존중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서울=뉴시스]정철웅 고려대 안암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가 환자의 상태를 휴대용 초음파로 살펴보고 있다. (사진= 고려대의료원 제공) 2022.04.04

[서울=뉴시스]정철웅 고려대 안암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가 환자의 상태를 휴대용 초음파로 살펴보고 있다. (사진= 고려대의료원 제공) 2022.04.04

-일각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할 의료진도 부족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인력을 파견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얘기도 나올 수 있는데요.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긴밀히 연결돼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인도적 위기는 세계 어디에서 발생하던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따라서 우선순위를 정하기 보다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위기 속에서 어떻게 함께 대응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우크라이나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하고 있나요?

"국제 인도주의 의료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는 우크라이나와 인접국에서 피란민을 대상으로 의료와 인도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오랫동안 진행해온 결핵, 에이즈를 유발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 등 기존 활동을 중단하고, 적절한 의료 및 인도적 지원 물자를 적절한 곳에 적시에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현지 병원을 대상으로 대규모 사상자 대응 훈련과 외상 수술 교육은 물론 부상자 대량 유입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와 의료진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우크라이나에 대한 의료 및 인도적 지원에 한국 활동가들이 기여할 수 없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예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국가에서도 인도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의료 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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