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정태춘 "10여년 전에 접은 노래, 한달 전부터 다시 씁니다"

등록 2022.04.26 21:11:13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이 계기

[서울=뉴시스] 다큐 음악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2022.04.26. (사진 = NEW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다큐 음악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2022.04.26. (사진 = NEW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음유 시인' 정태춘(68)은 2012년 낸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이후 노래 쓰는 걸 멈췄다.

2019년 발매한 40주년 기념 앨범 '사람들 2019'에 신곡 '외연도에서'와 '연남, 봄 날'이 실렸지만, '외연도에서'는 오래 묵혀뒀던 곡이고 '연남, 봄 날'은 부부의 이야기를 그저 담아낸 곡으로 본격적인 작업 곡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을 개봉을 앞두고 상황이 달라졌다.

정태춘은 26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아치의 노래, 정태춘' 시사회 겸 간담회에서 "한달 전부터 노래를 다시 쓴다"고 털어놨다. "10여년 전 쯤에 노래를 접었죠. 창작 활동을 접고 '나는 더 이상 세상과 소통하지 않겠다. 나의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라면서 창작자로서 이렇게 끝이 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노래를 다시 쓴다"고 했다.

하지만 과거처럼 그 노래들이 일기여야 한다거나 메시지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좋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 (노래를 쓰지 않은) 10여년 간의 마지막 부분에 이 영화가 있습니다. 창작을 덮었던 시기, 그 시기의 마지막 부분에 이 영화가 있고 그렇게 한 단락이 정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954년 경기 평택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정태춘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매형이 사다 준 기타로 처음 음악을 접했다. 이후 중학교 때 잡은 바이올린 활로 한때 음대 진학을 꿈꿨으나 '얼떨결'에 가수가 됐다.

1978년 발표한 데뷔 앨범 '시인의 마을'에 실린 '시인의 마을'과 '촛불'이 크게 히트하면서 단숨에 인기 가수가 됐다. 무엇보다 토속적인 노랫말로 서정성 짙은 한국형 포크를 들려준다는 호평을 들었다. 1979년 MBC 신인가수상과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 부문 등 상도 휩쓸었다.

이후 노래 노선이 변한다. 자신의 지음(知音), 즉 가장 절친한 음악동료인 부인 박은옥(65)과 함께 1980년대 사회변혁운동과 동행한 노래운동가로 통한다. 이들 부부는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서울=뉴시스] 다큐 음악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2022.04.26. (사진 = NEW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다큐 음악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2022.04.26. (사진 = NEW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함께 소극장 순회공연 '얘기 노래 마당'을 통해 대중과 소통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지지하는 사회운동 성격의 순회공연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등을 벌이면서 '참여하는 노래 운동가'로 활동했다.

특히 정태춘은 음반 사전심의제도 철폐에 크게 기여한 가수다. 1990년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첫 앨범 격인 비합법 음반 '아, 대한민국', 1993년 역시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92 장마, 종로에서'는 심의제도에 저항한 상징이다.

결국 정태춘은 '92 장마, 종로에서' 카세트테이프 3000개를 심의 없이 만들어 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다. 하지만 정태춘은 굴하기는커녕 위헌법률 심판제청으로 맞섰다. 이후 대중문화인들이 정태춘에게 힘을 보태고 일반 지지도 이어지면서 1996년에 사전심의 제도가 폐지됐다.

이후 정태춘은 경기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에 대항하는 '대추리 평화예술' 운동도 펼쳤다. 50대 중반 이후에는 시집을 출간하고, 사진전을 여는 등 다방면으로 예술 활동 보폭을 넓혔다.

이런 모습들이 약 2시간 러닝타임의 영화에 압축됐다.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전국 28곳에서 열린 전국 투어 콘서트 실황도 4K로 촬영해 삽입, 음악적 밀도도 높였다.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정태춘의 28곡이 영화 곳곳에서 울려퍼지거나 읊조린다.

정태춘은 "제겐 노래는 일기였어요. 초기엔 개인적인 일기였고, 중반으로 가면서 사회적인 일기가 됐죠. 동시에 메시지였습니다. 저는 메신저였고요.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었고 그것을 노래로 쭉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에 담긴 여러 노래들이 일기와 메시지였어요. 누군가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라요. 감흥을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이들 부부의 데뷔 40주년을 위해 여러 문화계 인사들이 뭉쳤었다.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를 통해 앨범 발매와 콘서트뿐만 아니라 출판, 전시, 학술, 아카이브, 트리뷰트 프로그램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또 '불후의 명곡' '열린음악회' 같은 TV 음악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특히 TV 출연은 평소 정태춘이라면 꿈도 꾸지 않을 일이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가 이 40주년 프로젝트의 문을 사실상 닫는 작품이다.
[서울=뉴시스] 다큐 음악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2022.04.26. (사진 = NEW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다큐 음악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2022.04.26. (사진 = NEW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정태춘은 "40주년이 제게는 버거운 작업이기는 했어요. 마지막엔 TV 출연까지 해야 했는데 제겐 안 어울리는 일이었죠. 하지만 프로젝트에 참여한 분들의 열기와 헌신적인 모습을 보면서 별 거 없지만 '나를 다 내려놓아야겠다'고 생각했죠. 다 소진시켜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 과정이 영화에 담기게 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정태춘이 고영재 감독에게 부탁한 건 단 한가지였다. "사생활을 보호해달라." 실제 영화 속에서 아내 박은옥의 모습은 콘서트에만 등장한다.

고 감독은 "영화에 담긴 정태춘의 노래 28곡으로, 시대의 공기와 그의 음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담아내고자 했어요. 그는 저의 노래이자, 우리의 노래죠"라고 했다.

박은옥은 영화를 보는 내내 아내의 입장과 동료 뮤지션의 입장, 두 입장이 교차됐다. 정태춘이 대추리에서 끌려 갈 때 모습엔 아내의 입장이 크게 투영됐다. 동시에 정태춘의 다양한 노래가 알려지지 않아 아쉬웠는데 이 영화를 통해 모든 면을 다 보여줄 수 있어 동료 뮤지션으로서 기쁘다고 했다.

"저희와 함께 20대를 보낸 세대는 '촛불', '시인의 마을'만 기억하시고 386세대처럼 중후반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래로 만난 분들은 그 노래만이 정태춘의 노래라고 기억하세요. 입체적인 정태춘 씨의 노래를 들려주지 못했던 게 안타까웠어요. 정태춘 씨는 뛰어난 음악가예요. 아내라서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 없지만 음악가로서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재능을 지녔습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의 엔디곡은 '정동진3.'다. 정태춘이 여전히 젊다는 걸 증명하는 곡이다. 박은옥은 영국 밴드 '퀸'에게 '보헤미안 랩소디'가 있다면, 정태춘에게 '정동진3.'가 있다고 했다. 두 곡 모두 7분이 넘는 대곡인 데다가 청춘의 에너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곡이기 때문이다.

박은옥은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이후 노래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으로 영화를 찍으면서 많이 아쉬웠어요. 노래를 다시 만드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는데 거짓말처럼 한달 전부터 썼고 벌써 8~9곡을 만들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아직 저도 들어보지 않았지만, 계속 저희 노래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오래도록 음악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5월18일 개봉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