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가부장제 조선시대에서도 "부부는 존중과 신뢰로 고난 극복"

등록 2022.05.05 07:00:00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한국국학진흥원, 웹진 담談 5월호 발행

'노부탄' '답부사' 통해 조선 부부의 삶 고찰

다름 인정하고 조율하면서 부부관계 정립

'생일 제사' (만화= 서은경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생일 제사' (만화= 서은경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조선 사회를 가부장적 사회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대에도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를 존중해야 부부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은 지금과 같았다.

믿음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즐거운 일에 같이 기뻐하고, 고난의 시간을 함께 이겨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조선판 부부의 세계'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5월호를 발행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호에서 박지애 교수는 '200여 년의 세월을 건너 전해진 부부의 지혜, '노부탄'과 '답부사'로 들여다본 조선시대 부부의 삶'이란 글을 통해 해로연(偕老宴)을 앞둔 노부부의 마음과 삶을 알아본다.

아래 가사(歌辭) 작품은 김약련(金若鍊, 1730~1802)이 그의 아내 순천김씨(1729~1799)가 쓴 '노부탄(老婦歎)'에 답을 쓴 '답부사(答婦詞)'이다.

초혼으로 40여 년을 지나 함께 회갑을 맞는 일이 쉽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해로연(偕老宴)을 앞둔 이들 부부의 모습에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노년의 행복이 읽힌다.

'우리는 이럴망정 처녀와 총각으로 만나 초혼한 부부가 아니던가/ 궂은 일 좋은 일을 마주 앉아 지내왔고/ 올해에는 당신의 회갑 내년이면 내가 났던 해/ 이 일도 쉽지가 않아 부인도 내 말을 듣고 싱긋이 웃는구나/ 어우와 덧없는 인생이니 이렇게 저렇게 즐기리라'

이렇게 서로 주고받은 아내와 남편의 가사 작품은 김약련이 남긴 문집 '두암제영(斗庵題詠)'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치 편지글처럼 주고받은 가사가 전해지기는 하지만 이렇듯 주고받은 대상이 부부인 경우는 현재까지 '노부탄'과 '답부사'가 유일하다.

'노부탄'에는 '늙은 아내의 탄식'이라는 이름값이 무색하게도 자탄과 원망의 표현은 거의 없고, 끊임없이 남편과의 다름을 보여주면서 아내는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조선이란 사회를 생각해 보면 그 사회가 만들어 낸 관계에 종속돼 관계에 억눌려 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면서 끊임없이 의사를 조율하고 부부관계를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방식, 이것이 '노부탄'에서 보여준 부부관계에서의 아내의 지혜이다.

'답부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내의 생각에 동의하며 그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 그러나 내 생각을 올곧게 표현하고 끝까지 설득하는 의지, 그 사이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하면서 다시 만들어가는 부부간의 관계가 보인다.

박영서 작가는 '공처가 김 생원의 콧바람 든 날'에서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부부가 기생을 두고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이야기를 소설로 전한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심혈을 기울인 양봉이 실패한 후 김생원은 한동안 상심해 술에 젖어 지냈다.

그러다 과거 합격 동기인 송 목사(牧使)가 이 고장 목사로 부임한 후 생긴 과거 합격 동기 모임이 그의 유일한 해방구였다.

'생일 제사' (만화= 서은경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생일 제사' (만화= 서은경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본래 빈한했던 김생원은 30년 전 결혼하고 처가에 들어와 산 이후 처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집안일을 돌보지 않고 밖으로 돈다는 아내의 말에 출타하기에 눈치가 보여 몇 달간 모임에 갈 수 없었으나 오늘은 아내가 고을에 사당패 구경을 나선 것이다.

모임에서 대놓고 자존심 긁는 목사를 피해 잠자리에 들려던 김생원은 마음 한쪽에 애타는 심정을 품고 있던 기생 종기가 권하는 밤 시중 이야기에 심히 내적으로 갈등한다.

그러다가 어려운 시절부터 자신과 함께한 아내와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 거절했으나 이미 함정에 빠져버린 후였다.

자다 깨 부인이 집에 오기로 한 시간에 맞추기 위해 헐레벌떡 집에 도착한 김생원은 부인의 통곡과 서슬 퍼런 말을 맞닥트려야 했다.

밥도 거르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부인 덕에 쫄쫄 굶으며 고생하던 김생원은 찾아온 기방 행수를 반색하며 맞았다.

기방 행수에게 자신의 곡절을 설명해달라 부탁했고, 기방 행수는 기생과 정을 나눈 적이 없다고 대변했다.

믿지 못해 계속 되묻는 부인에게 김생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중용(中庸)에서는 도(道)의 단서가 부부관계로부터 시작된다고 하였소. 내 비록 고관대작에 나아가지는 못하였으나 군자의 덕을 잃고 살지는 않을 것이오. 나의 도는 당신에게 있소."

서은경 작가의 '스토리웹툰 - 생일 제사'에서는 시어머니 제사상에 생전 좋아했던 커피를 올린 시아버지의 쓸쓸한 모습을 보고, 막내며느리가 떠올리는 김광계(金光繼)의 '매원일기(梅園日記)' 속 이야기를 웹툰으로 담았다.

김광계는 아내의 부재라는 슬픔 속에서 장례를 졸곡제(삼우제를 끝낸 뒤 곡을 끝낸다는 뜻으로 지내는 제사)까지 치른다.

그 후 장례를 함께 해준 모든 친지, 지인들이 모두 떠나자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에 사무친다.

아내의 생일날 아내가 좋아했던 떡, 국수, 과일 등의 음식으로 다시 상을 차리며 바빠서 자주 함께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아내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는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조경란 교수는 "관계를 맺고 유지한다는 게 참 어렵다. 사회가 만들어내는 관계에 계속 억눌려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며 "해로한 부부들에게서 배운 '존중과 신뢰'라는 지혜로 나와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어렵게만 느껴졌던 관계들을 다시 돌아본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