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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수 없는 내 아들…살려다오, 살려다오"…통곡의 5·18묘역

등록 2022.05.17 12:38:22수정 2022.05.17 13: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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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5·18유족들, 기념식 하루 앞두고 민주묘지서 추모제
고 이정연 열사 어머니 "내 아들, 무슨 죄가 있다고"
고 윤승봉 열사 동생 "사과없이 떠난 전두환…울분"
고 김영철 열사 아내 "남편 넋, 올해 기필코 기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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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하루를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 이정연 열사의 어머니 구선악(82) 여사가 오열하고 있다. 2022.05.17 leeyj2578@newsis.com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아들이 (계엄군과) 싸우러 가기 전에 뭐라 했는 줄 아소, '선조들이 남긴 잡초를 누가 뽑을 것이오. 우리가 죽어서라도 뽑을 것이오'라며 영영 떠나버렸다오."

5·18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주최하는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피붙이와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흰 소복을 입은 유족들은 무거운 발을 한 걸음씩 떼며 일 년 만에 만나는 가족들의 묘소로 향했다. 묘소 앞에 도착한 가족들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이내 주저 앉았다.

묘비에 머리를 묻고 오열하는 가족들의 흰 장갑은 눈물로 흠뻑 젖어 깊은 주름이 패인 손등이 비쳐 보였다.

고(故) 이정연 열사의 어머니 구선악(82) 여사도 일 년 만에 만나는 아들의 묘소 앞에서 가슴앓이하며 울분을 터트렸다.

'내 아들아, 내 아들아'를 연신 외치는 목소리는 갈라질 대로 갈라져 묘소 허공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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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하루를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 윤승봉 열사의 동생 윤연숙(68) 씨가 묘비를 닦고 있다. 2022.05.17 leeyj2578@newsis.com

1980년 5월 당시 전남대학교에 다니던 이 열사는 20살의 나이로 시민군에 자원, 5월 27일 새벽 전남 도청 사수 최후의 항쟁 당시 계엄군의 흉탄에 쓰러졌다.

생떼같은 자식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살아온 지 벌써 42년. 5월마다 이 열사의 흔적을 가슴 깊숙한 곳에서 꺼내야만 하는 구 여사의 마음은 생채기와 멍으로 가득하다.

구 여사는 "정연이는 '선조들이 남긴 잡초를 내가 죽음으로서라도 뽑으러 가오'라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며 "어린 자식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야 했느냐"라고 하염없는 울분을 토해냈다.

고 윤승봉 열사의 여동생 윤연숙(68)씨도 윤 열사의 제단에 소주를 올리며 억울한 죽음을 기렸다.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소주를 따르던 윤씨는 "오빠가 무슨 죄가 있어 계엄군에 잡혀가 그렇게 다쳐야 했느냐"며 고개를 떨궜다.

윤 열사는 1980년 5월 20일 들끓는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한 목소리를 보태기 위해 시민행렬에 참가한 뒤 계엄군에 체포당했다.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그는 보름이 지나서야 광주교도소에 수감돼있다는 소식이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가족들의 간곡한 청원 끝에 석방됐지만, 이미 윤 열사의 몸은 모진 고문 끝에 초주검이 된 상태였다. 윤 열사는 이듬해 4월 병세가 악화되면서 결국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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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하루를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 김영철 열사의 아내 김순자(70) 여사가 묵념하고 있다. 2022.05.17 leeyj2578@newsis.com

윤연숙씨는 "전두환이든 누구든 사과를 하고 세상을 떠나야했는데 왜 아무도 한마디 없이 가버리냐"며 "사과 한 마디 받지 못한 우리는 원통하기 그지 없다. 이 한을 어디서 풀어야 하느냐"며 막막해했다.

고 김영철 여사의 아내 김순자(70)씨는 올해 비로소 남편을 제대로 기릴 수 있게 됐다며 묘소 앞에서 차분한 표정을 지은 채 묵념했다.

김 열사는 광천동 시민아파트에서 살다 고 윤상원 열사를 만나 함께 '들불야학'을 꾸리고 활동했다. 윤 열사를 따라 도청 사수 최후의 항쟁에 참여했던 그는 계엄군에 체포돼 가혹한 고문으로 뇌 손상을 입었다. 내란음모 수괴 혐의까지 뒤집어 쓴 그는 1983년 12월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으나 후유증 끝에 1998년 8월 세상을 떠났다.

김 여사는 그동안 남편의 행적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여겨 수 년째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해왔다. 그 결실이 이달 말 수기와 평전 형태로 맺어질 수 있게 되면서 남편의 넋을 기릴 수 있게 됐다.

김 여사는 "비로소 남편의 넋을 기릴 수 있게 돼 다행이면서도 먹먹하다"며 "남편뿐만 아니라 조명받지 못한 많은 열사들이 있다. 이들의 넋이 제대로 기려지고서야 5·18이 완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leeyj257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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