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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군화에 짓밟힌 오빠"…마르지 않는 5·18유족의 눈물

등록 2022.05.18 07:00:00수정 2022.05.18 07: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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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오월어머니집 김형미 관장 사연, 5·18 기념식 추모 공연에 소개
고등학교 1학년 김형열 열사 계엄군 구타 정신이상…수용시설서 숨져
김 관장 "후세대 오월 정신 계승 위해 진상규명과 5·18정신 헌법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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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1988년 김형영 열사 사망 이후 5·18광주민중항쟁부상자동지회가 낸 결의문. (사진=오월어머니집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1980년 당시 국가 폭력으로 숨진 오빠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오월어머니집 김형미 관장은 18일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추모 공연에 소개될 오빠 김형영 열사의 사연을 두고 "5·18 부상자 분들을 볼 때면 오빠가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 관장의 오빠인 김 열사는 1980년 5월 19일 광주 조선대학교 인근에서 공수부대 8명으로부터 구타를 당해 정신적 후유증을 앓았다.

이후 전남의 한 정신요양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시설 내 구타와 방치 등으로 입소 1년 여 만인 1988년 11월 6일 숨을 거뒀다.

김 관장은 1980년 당시 국가폭력을 당한 오빠와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을 회상했다.

김 관장은 "오빠가 계엄군에게 몸과 척추 등 몸 곳곳을 구타당했다"며 "이후 방 불을 못 끄거나 군인들을 보고 발작해 입대 3일 만에 퇴소하며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들은 김 열사의 쾌유를 빌며 밤낮으로 7년간 정신병원과 신경외과 등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며 "단란했던 가정이 점점 피폐해졌다"고 회상했다.

김 관장은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회상하며 미안함과 그리움을 드러냈다.

김 관장은 "오빠가 숨지기 몇 달전 병원 면회를 갔을 때 '집에 데려가달라'고 했다"며 "나는 '조금만 참으라'며 뒤돌아섰는데, 그 때 오빠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지 못한 게 한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계엄군에 한 번, 국가 정신 수용시설에서 또 한 번 국가폭력으로 쓰러진 오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와 두 살 터울이 나는 부상자회원들을 보면 오빠가 많이 보고싶다"고 말했다.

이어 5·18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오월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선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관장은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억울한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후세대에 오월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진상규명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가 약속한 5·18 정신 헌법 수록도 지켜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열사의 묘지는 국립5·18민주묘지 3-47에 마련돼 있다.

이날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오월의 진실' 추모공연에서 김 열사의 사연이 소개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hyein034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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