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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묘역 참배하는 尹 대통령…어느 열사 묘소 가나

등록 2022.05.18 07:30:00수정 2022.05.18 08: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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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헌혈 뒤 귀가 도중 숨진 '5월의 꽃' 박금희 열사
부상자 실어 나르던 택시운전사 김복만 열사
계엄군 총탄에 희생 '5월의 막내' 전재수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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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야권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 총장이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열사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2021.07.17. hgryu77@newsis.com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행사를 마친 후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서 처음 참배하는 열사들의 묘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8일 5·18 단체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정부기념식을 마친 뒤 유족들과 함께 열사들의 묘소를 참배한다.

이날 윤 대통령은 '5월의 꽃' 박금희 열사와 '택시운전사' 김복만 열사, '5월의 막둥이' 고 전재수 군의 묘소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열사는 계엄군의 발포로 부상당한 시민들을 위해 헌혈 운동에 동참한 뒤 집으로 돌아가던 중 계엄군의 흉탄에 목숨을 잃었다.

1980년 당시 춘태여고(현 전남여자상업고) 3학년에 재학중이던 박 열사는 5월 21일 오후 '부상자들을 위한 혈액이 모자라다'는 소식을 듣고 택시를 타고 기독병원으로 향했다.

택시운전사가 "어른들이 헌혈을 하고 있으니 학생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려도 기어이 기독병원으로 향해 헌혈에 동참했다.

헌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박 열사는 양림다리 인근에서 계엄군이 쏜 총탄에 머리를 맞고 1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박 열사의 묘소는 1묘역 1-26번에 조성됐다.

택시운전사였던 김 열사는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 끝에 부상당한 시민들을 병원으로 옮기다가 총탄에 희생됐다.

18일부터 직접 택시를 몰며 피투성이가 된 광주 시민들을 손수 옮기던 그는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부상자들을 돌보는데 헌신했다.

간간히 가족들과 주고받던 소식이 끊긴 것은 21일 오후부터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박 열사가 숨진 이날에도 그는 어김없이 부상자들을 나르다 계엄군의 표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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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정부 기념식 하루를 앞둔 17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다. 2022.05.17. leeyj2578@newsis.com

24일에서야 김 열사의 친구들이 가족들을 찾아 그의 부고 소식을 전했다. 김 열사는 싸늘한 주검이 된 채 적십자병원에 마련된 관 안에 누워있었다. 아내와 세살배기 아들, 젖먹이 막내를 남기고 숨진 그의 나이는 28세였다. 김 열사는 1묘역 1-14번에 안장돼있다.

전 군은 5월 24일 오후 광주 남구 효덕동 집 근처에서 친구들과 놀던 중 계엄군을 보고 달아나다 총탄에 맞았다.

벗겨진 고무신을 다시 주우러 방향을 틀던 사이 어디선가 M16 총탄 6발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당시 계엄군은 자신들끼리의 오인사격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시민군에 보복하려 인근 마을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불과 12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전 군은 네살배기 행방불명자를 제외한다면 공식적인 5월의 최연소 희생자다.

'얼굴없는 희생자'로도 알려졌던 전 군의 묘비는 생전 사진 한 장을 찾지 못해 무궁화꽃이 40년동안 영정을 대신했었다.

지난 해에 이르러서야 가족 사진을 발견하면서 41년 만에 비로소 얼굴을 되찾게 됐다. 전 군은 1묘역 2-22번 묘에 안치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leeyj257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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