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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린 베레' 모델 핀란드 전사 33년만에 유해 발굴

등록 2022.05.23 12: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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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핀란드 훈장 2개, 나치 친위대 훈장, 미군 훈장 2개
존 웨인 주연 및 감독 영화 '그린 베레'의 실존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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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1968년 개봉한 영화 그린베레 스틸컷 (사진=미리 피엘티 트위터 갈무리) 2022.05.23.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1939년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육군 장교로 복무한 핀란드인이 전공을 세워 2개의 자유훈장을 받았다. 그는 1941년 독일 나치 친위대(SS) 소속 탱크대대에 속해 카렐리아 전투에서 소련 적군과 맞서 싸웠다. 그는 다시 1963년 미국 특수부대원으로 베트남에서 라오스내 호치민로를 수색한 공로로 청동성장( Bronze Star)과 퍼플하트(Purple Heart)를 받았다.

미군 유해발굴단이 베트남 비밀작전에 투입돼 전사한 핀란드 출신 특수부대 장교의 유해를 33년만에 발굴할 예정이라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의 이름은 라우리 퇴르니. 핀란드가 지난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신청한 일은 오랜 비동맹 역사와 단절한 순간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 몇 년 동안 핀란드 국민들의 나토 가입 지지율은 20~25%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금은 76%에 달한다.

핀란드는 과거에도 나토와 협력해왔다. 1996년 핀란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 당시 평화유지군으로 1개 대대를 파견했었다.

퇴르니의 인생 여정은 핀란드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외교 행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세 나라에서 군인으로 복무한 퇴르니의 평생에 걸친 소신은 오늘날 러시아의 침공을 막아야 한다는 핀란드 국민들 생각과 같았다.

퇴르니로선 러시아와 전쟁이 공포를 넘어선 현실이었다. 1938년 9월 군에 자원할 당시는 소련 적군이 핀란드를 침공했을 때다. 그는 물론 핀란드 국민들 모두가 압도적 병력으로 침공한 소련에 크게 겁을 먹었다. 

2007년 미카 카르투넨이 만든 "퇴르니-한 군인의 일생"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퇴르니는 뛰어난 전투 능력에 힘입어 예비군장교학교에 추천됐고 졸업 뒤 스웨덴어를 할 줄 모르지만 스웨덴어 사용 회사의 예비군부대 책임자가 됐다.

그는 전투에서 배운 수신호로 자기 부대를 지휘했다. 퇴르니는 1940년 3월13일 겨울전쟁이 끝나면서 1급과 2급 자유훈장을 받았다. 핀란드는 이 전쟁으로 소련에 영토를 일부 빼앗겼지만 대부분의 영토를 보전하고 주권을 지킬 수 있었다. 그가 전쟁에서 돌와왔을 때 그의 고향 마을 비보르그는 폐허가 됐고 가족도 집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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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1968년 개봉한 영화 그린베레 스틸컷 (사진=탑슨 트위터 갈무리) 2022.05.23.

나치 독일이 독일에 부대를 보내는 것을 조건으로 소련과 전쟁하는 핀란드에 무기와 지원을 제공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돼 술에 절어 지내던 퇴르니가 핀란드가 독일 SS 비킹 사단에 파견된 자원병 대대에 지원했다. 289명의 대대원과 함께 독일행 배에 올랐다.

그는 돌격대 하사관으로 승진했지만 더이상 승진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독일인들과 잘 지내지 못해 핀란드로 송환된 병사들에 포함됐다. 

1941년 6월25일 소련이 핀란드를 다시 공격하자 퇴르니는 독일군 신분으로 기관총소대장이 됐다. 중위로 승진했으며 3급 자유십자가 훈장을 받았다.

그는 퇴르니 분대를 지휘했다. 소련군 후방에서 보급을 훼방하고 소련 군인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독일 철십자훈장을 받았으며 소련은 그에게 300만 마르크의 현상금을 걸었다. 소련군 여성 병사들이 전선에서 확성기로 "퇴르니의 머리를 가져와라. 생포하든 죽이든 300만마르크를 주겠다"고 확성기로 외쳤다.

퇴르니는 1944년 6월9일 2급 만너하임 십자가 훈장과 5만 마르크의 상금을 받았지만 상금은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데
써버렸다.

핀란드에 혼란이 발생하고 소련의 점령 가능성이 커지면서 퇴르니는 1945년 독일 U보트 잠수함을 타고 작전을 벌였다. 핀란드 북부에서 벌어진 라플란드 전쟁 참전이 불허된 뒤 고국에 도움이 되길 바랬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1944년 모스크바에서 핀란드, 러시아, 영국이 참가한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핀란드는 독일군을 추방했다.

이듬해 퇴르니는 핀란드 경찰에 반역혐의로 체포됐다. 1948년 "핀란드와 소련에 적대하는 무장 세력에 무기를 공급한" 혐의로 기소됐고 투르쿠 지방교도소에 수감됐다가 탈출했다. 스웨덴으로 가려했으나 다시 체포돼 형기가 6개월 늘어났다. 1948년 주호 파시키비 대통령이 그를 사면했다.

퇴르니는 새 삶을 찾아 베네수엘라행 화물선에 올랐고 이어 미국행 노르웨이 선박을 탔다. 밀입국자였던 퇴르니는 배에서 뛰어내려 애틀랜타 모바일까지 헤엄쳐 미국 땅을 밟았다. 1950년 9월20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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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1968년 제작된 영화 "그린 베레"에서 핀란드 출신 특수부대원 손 역할을 맡은 존 웨인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돈도 없고 영어도 할 줄 몰랐지만 퇴르니는 뉴욕까지 진출해 핀란드 이민자 사회에 정착했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그의 군 동료들이 "뒤를 봐줬다"고 한다. 1954년 1월27일 미국 시민권을 받으면서 다시 군인 생활이 시작됐다.

라우리 퇴르니는 래리 앨런 손으로 개명했다. SS 문신을 지우고 풍부한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딕스, 카슨, 베닝, 브랙 기지에서 근무했다. 특수부대 훈련교관으로 임용돼 1963년 베트남전에 처음 참전했다. 캄보디아 국경 지대에 전진 기지를 설치하는 임무였다.

손은 학교와 병원을 짓고 포트 브랙으로 복귀한 뒤 청동성장과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퍼플하트는 부상한 군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민간인 생활을 못견딘 그는 미 정부가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최고비밀부대인 베트남 군사지원사령부(연구 및 관찰 그룹)에 다시 지원해 라오스 국경 넘어 정찰 임무에 투입됐다. 소련이 두번째로 침공한 핀란드 계속 전쟁 당시 후방에서 광범위한 정찰활동을 벌인 그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1965년 10월18일 핀란드 민병대원 겸 독일 하급사관 출신인 그가 특수부대 소령 신분으로 아무런 표식이 없는 헬리콥터를 타고 공산군 보급로인 호치민루트 탐색에 투입됐다. 나쁜 날씨 때문에 헬기가 실종됐다.

50차례 이상 수색작전이 벌어졌지만 손을 포함한 부대원 구조에 실패했다. 그가 라오스에 투입됐다는 공식 기록이 없는 탓이 컸다. 손은 1966년 10월19일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다.

33년이 지나 라오스 국경 미군유해발굴단이 그의 유해를 발굴할 예정이다. 현재 미 앨링턴 국립묘지에 그의 무덤이 있다.

베트남 차우독에 있던 손의 부대주둔지를 방문했던 미국 작가 로빈 무어는 1965년 출간한 소설 "그린 베레"에서 손을 모델로 삼아 주인공 스벤(스티브) 코르니를 창작했다.

1968년 존 웨인이 주연하고 감독해 만든 영화 "그린 베레"에서 퇴르니는 "이상적인 특수부대 장교, 전투, 특히 비정규전에 모든 것을 바친 특수부대가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으로 묘사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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