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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서러운 임금피크제, 법원이 막았다

등록 2022.05.26 14:13:17수정 2022.05.26 14:5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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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연령차별 임금피크제는 무효" 첫 판단

이유 없는 차별 금지하는 고령자고용법 근거

임금피크제 효력 판단하는 기준 구체적 제시

"도입 타당성과 근로자 불이익 정도 비교해야"

시행 후 업무량, 삭감재원 사용처도 고려대상

피고 회사, 55세 이상 직원이 실적 달성 더 좋아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2019년 10월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총파업 예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0.14. bjko@newsis.com *기사와 관련 없음.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2019년 10월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총파업 예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0.14. [email protected] *기사와 관련 없음.

[서울=뉴시스] 김재환 기자 = 정년에 가까워졌다는 이유만으로 급여를 줄이는 '임금피크제'는 앞으로 효력을 잃게 될 전망이다. 합리적 이유나 보완 조치 없는 임금피크제는 특정 연령을 차별하는 것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대법원은 이번 판단을 통해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판가름하기 위한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근로자가 불이익을 감수할 만큼 정당한 목적이 인정되거나 업무량을 줄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에서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곳이 적지 않은 가운데, 이번 대법원 확정 판결로 줄어든 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이날 A씨가 옛 전자부품연구원(현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연구원은 A씨 등을 비롯한 만 55세 이상 근로자들에게 성과에 따라 급여를 차등지급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문제가 된 것은 해당 임금피크제의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위반 여부였다.

고령자고용법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근로자를 나이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한다. 일의 성격상 특정 연령기준이 요구되거나, 법에서 차등지급의 조건 등을 명시하고 있는 경우만 차별의 예외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제도 고령자고용법에서 금지하는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근로자의 나이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지급할 필요성이 있거나, 처우가 다르더라도 합리적인 범위 내에 있는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 나이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연령차별로 봐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게다가 고령자고용법은 사용자에게 강제성을 갖는 '강행규정'으로 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해석이다.

고령자고용법에서 금지한 차별을 당하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당 사용자는 당국으로부터 구제조치·시정명령을 받을 수 있으며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이유에서다.

즉, 대법원은 강행규정인 고령자고용법에서 금지한 연령차별을 하는 임금피크제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 뉴시스DB.

대법원. 뉴시스DB.


대법원이 모든 형태의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에서 금지하는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은 아니다.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 등을 기준으로 통상임금 여부를 판단하는 것처럼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인정하기 위한 구체적 기준이 처음으로 제시됐다.

일단 사용자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목적의 타당성이 인정돼야 한다. 단순히 인건비를 줄이고 영업이득을 늘리려는 목적만으로는 효력을 인정받기 힘들다. 불가피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더라도 임금 삭감에 따른 근로자의 불이익이 더 크다면 타당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한다.

임금 삭감으로 인한 피해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도 중요 요소로 검토된다.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임금을 덜 지급하는 만큼 업무량을 줄여주는 등의 합리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유라곤 '나이' 밖에 없는 임금피크제는 인정받을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 피고인 연구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51세 이상 55세 미만 정규직 직원들의 수주 목표 대비 실적 달성률이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에 비해 떨어지는데, 오히려 55세 이상 직원들의 임금만 감액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밖에 사용자가 임금 삭감으로 절약한 비용을 임금피크제의 도입 목적에 맞게 써야 한다는 기준도 나왔다. 임금피크제의 목적이 근로자의 정년을 유지하는 데 있으므로, 사용자로선 근로자가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처럼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판단하기 위한 구체적 기준을 처음 제시함에 따라, 근로자들로선 각 사업체에서 도입한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따져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구하게 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정년이 있는 300인 이상의 사업체 중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54.1%에 달한다. 업종별로는 금융·보험업, 도소매업, 제조업 순으로 많았다.

소송이 시작되면 법원은 ▲사용자가 임금피크제를 왜 도입하려 하고 당장 필요한지 ▲근로자의 소득 수준에 비춰봤을 때 임금 삭감의 폭이 어땠는지 ▲임금피크제의 시행을 전후로 근로자의 업무량에 변화가 있었는지 ▲절약한 인건비가 임금피크제의 도입 목적에 맞게 쓰였는지 등을 기준으로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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