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조력존엄사' 논의 시작…치료 중심 의료계, 할일 태산

등록 2022.06.19 06:30:00수정 2022.06.21 11:28:55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오남용 방지하고 법안취지 살리려면

'사전돌봄계획' 의료제도로 정착돼야

촘촘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이뤄져야

의료진 교육·충분한 상담시간도 필요

통증조절 등 담은 '웰다잉 지침' 필요

【고양=뉴시스】최동준 기자 = 4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병동 모습. 2017.08.04. photocdj@newsis.com

【고양=뉴시스】최동준 기자 = 4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병동 모습. 2017.08.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말기 환자가 원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 존엄사(의사조력자살)' 법안이 지난 15일 발의된 가운데 법안의 취지를 살리는 키를 쥔 의료계는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법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잘 작동하려면 오남용을 방지할 의료서비스 체계 구축, 환자를 곁에서 돌보는 의료진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없을 상황을 대비해 희망하는 의료행위(치료방식) 등을 미리 확인하는 '사전돌봄계획'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력 존엄사법은 환자의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 하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등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 환자의 의사를 알 수 없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와 가족이 의료진과 상의해 결정할 수 있도록 전문가가 전문 지식과 환자의 가치관, 주변 상황을 고려해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사전돌봄계획을 제공하는 것이 의료 제도로 정비돼 있고 문화로 정착돼 있다면 환자의 선택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면서 "의료기관의 사전돌봄계획 제공에 대한 급여화(건강보험 적용)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가 삶의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경제적·정신적 부담 등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부작용을 막으려면 환자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촘촘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견해도 많다. 호스피스·완화의료란 전문의료기관이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에게 증상 완화와 심리적·사회적·영적 돌봄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국립연명의료기관과 중앙호스피스센터에 따르면 암 사망자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 이용률은 2019년 기준 24.3%에 그치고 있다. 호스피스 대상 질환도 암·후천성면역결핍증·만성폐쇄성호흡기 질환·만성 호흡부전·만성 간경화 등 5개 질환에 불과하다.

환자와의 소통이 중요한 의사 역시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조력 존엄사법을 살펴보면 의사는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다. 환자의 신체적·정신적·사회경제적·영적 고통에 대한 진단과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의 상태와 치료 반응에 대한 의학적 판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 앞서 의사조력자살을 시행한 국가들은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장치 중 하나로 의료진과 환자 간 충분한 상담 등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1994년 12월 존엄사법(의사조력자살)을 입법한 미국 오리건 주는 주치의가 환자의 시한부 질병, 자의적 의사 등을 확인하고 환자의 상태, 치료법, 처방할 극약의 효과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등의 책임을 지도록 했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의사조력자살이 합법화된 네덜란드도 의사는 환자의 요구가 자발적이며 충분히 고려한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전문적인 상담을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서울=뉴시스】사진가 성남훈의 다큐멘터리 100일의 기록, 호스피스 '누구도 홀로이지 않게' 사진전(주최:보건복지부, 주관:국립암센터).2017.10.09. (사진=류가헌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사진가 성남훈의 다큐멘터리 100일의 기록, 호스피스 '누구도 홀로이지 않게' 사진전(주최:보건복지부, 주관:국립암센터).2017.10.09. (사진=류가헌 제공)  [email protected]

하지만 국내 의료체계에서 의사는 환자 한 명당 충분한 진료시간을 확보하기 힘들다. 긴 대기시간에 비해 짧은 진료시간을 일컫는 '3분 진료'의 벽을 넘기 쉽지 않다. 낮은 진료 수가 체계, 수도권 상급병원으로 몰리는 환자, 돈이 안 되면 치료를 꺼리는 병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의대 교육과정부터 질환의 진단과 환자 치료에 집중하다 보니 죽음에 대해 배울 기회도 부족하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전문의는 "말기 환자들의 임종 과정을 돌보는 것에 대해 의대 시절 배운 적이 없고 병원 수련 과정에도 없었다"면서 "질병 치료가 우선이다 보니 4년째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의 내용조차 잘 모르는 의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발의된 조력 존엄사법 정의에 포함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의료진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입법 과정에서 구체적인 기준 마련과 함께 병원에서 의료진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어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윤 교수는 "보통 의학적 판단이 환자의 치료 결정에 중요하긴 하지만 치료 결과의 불확실성과 예측 오류의 가능성 때문에 진료 지침으로 절차를 명시해 지키도록 권고하고 있다"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는 통증 조절 뿐 아니라 치료중단과 삶의 마무리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웰다잉'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