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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2대왕 인종 태실, 보물된다…"학술·예술적 가치 커"

등록 2022.06.23 10: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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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설치 과정·내력 등 기록 자세히 남아
원형 잘 유지되고 보존 상태도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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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천 인종대왕 태실' 전경.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06.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문화재청이 23일 경북에 위치한 '영천 인종대왕 태실'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태(胎)를 폐기하지 않고 명당이나 길지에 묻고 조성한 시설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자손이 태어날 때 태를 깨끗이 씻어 태항아리에 봉안했다. 그 후 태항아리를 봉안할 장소를 정하고, 궁궐에서 태를 옮긴다는 의미의 태봉출 의례를 행한 후 태항아리를 모신 행렬이 태봉지에 도착하면, 지방관의 지원을 받아 태를 봉안했다.

'영천 인종대왕 태실'은 조선 12대 임금인 인종대왕이 태어난 지 6년이 지난 1521년(중종 16)에 의례에 따라 건립됐다. 태를 봉안한 태실과 1546년(명종 1) 가봉 때 세운 비석 1기로 구성됐다. 인종은 임금으로 즉위한 이후 재위 기간(9개월)이 짧아 곧바로 가봉하지 못했다. 가봉은 자손이 왕위에 오를 때 태실의 위엄을 더하기 위해 격식을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인종대왕 태실은 태실봉 정상부에 비교적 넓게 형성된 편평한 대지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왕실 의궤에 묘사된 격식에 따라 전체 평면은 8각형으로 이뤄져 있으며, 중앙에 태가 안치됐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중동석을 놓았다. 바닥에는 중동석을 중심으로 방사형의 판석이 여러 매 놓여 있다. 태실의 가장자리에는 석조 난간을 둘렀는데, 이러한 형식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태실의 양식이다.

인종대왕 태실은 1680년에 파손된 부분에 대한 수리를 거쳐 1711년에 태실비가 재건되면서 태실로서의 격식을 되찾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태항아리와 태지석 등이 고양 서삼릉으로 옮겨졌다. 이후 태실은 방치됐다가 1960~70년대 매몰된 석재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1999년 발굴조사를 통해 2007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원형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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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천 인종대왕 태실' 원경.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06.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인종대왕 태실은 조선시대 태실 의궤에 따른 격식을 갖추고 있으며, 태실의 규모가 크고 석물의 치석기법이 우수하다. 설치 과정과 내력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전해져 역사·학술·예술적 가치가 높다. 태실은 가봉된 이후 파손된 적도 있었으나, 처음 설치됐던 원 위치에서 비교적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다. 보존 상태도 양호해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됐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영천 인종대왕 태실'에 대해 30일의 예고 기간동안 의견을 수렴한다. 이후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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