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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사회·역사적 변화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나

등록 2022.06.25 09:00:00수정 2022.06.25 10: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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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제국주의와 전염병 (사진=황소자리 제공) 2022.06.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노예무역이 한창이던 18세기 말, 아프리카 서부해안에서 강제로 노예선에 실린 한 남자가 죽기로 작정했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모든 것을 거부한 채 기구한 운명에 맞서던 남자는 어쩌다 손에 넣은 칼로 자기 목을 수차례 그었다. 배에 실린 지 열흘 만에 세상을 뜬 남자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1839년 영국 내과의사 로버트 톰슨은 이 이야기를 의학 잡지 '랜싯'에 실었다. 톰슨은 이 사람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 배에 탔던 의사 트로터가 1790년대 영국 의회 청문회에 나가 증언한 내용 중 일부를 인용했을 뿐이다.

톰슨은 이 남자의 죽음을 인간이 먹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썼다. ‘단곡(斷穀) 상태’에서 인간이 얼마나 생존하는지 연구하던 톰슨에게는 노예로 팔려가던 한 남자가 먹지 않고 열흘이나 버텼다는 증거만이 중요했다.

18~19세기 의학은 발전했다. 제국주의 관료체계 덕에 전 세계로 파견된 의사들은 시시각각 닥치는 의학적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로 변모했다. 사례연구와 통계분석에 근거해 질병을 파악하고 예고하는 역학(疫學) 역시 이 시기에 탄생했다.

당대 의학 혁명을 이끈 학자나 이론이 의학사의 중요 페이지를 차지하는 것과 달리, 사례연구 현장에 관한 이야기는 사라졌다.

책 '제국주의와 전염병'(황소자리)은 의학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 기록이나 기억에서 삭제되어 버린 이들의 목소리를 발굴해 냈다.

권력 그늘에서 억압받았던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는 미국 역사학자 짐 다운스는 이 책에서 18~19세기 제국주의 시대 흑인과 혼혈인, 노예와 식민지 피지배인, 죄수와 군인들이 전염병 연구 및 역할 발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예속된 사람들의 강요된 희생과 가슴 아픈 삶이 근현대사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보여준다.

크림전쟁을 누비며 현대 역학의 기초를 다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부터 남북전쟁에서 인종차별적 분류체계를 강화해 질병을 인종 단위로 파악하는 악습을 만든 북부 의사들의 모순적 활동, 19세기 중반 콜레라 대유행까지, 의학이 사회·역사적 변화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탐색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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