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is

  •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경마]1만경기 출전 '전설' 지용철 조교사 등 5명 은퇴

등록 2022.07.02 13:42:00수정 2022.07.02 14:02:28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기사내용 요약

한국마사회는 지난달 25일 서울경마공원 야외 시상대에서 김점오, 박대흥, 서정하, 임봉춘, 지용철 조교사의 은퇴식을 시행했다


associate_pic

조교사 5인(제공=한국마사회)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우은식 기자 = 뚝섬 경마장 시절부터 활동하며 한국 경마를 빛낸 조교사 5명의 은퇴식이 열렸다.

한국마사회는 지난달 25일 서울경마공원 야외 시상대에서 김점오, 박대흥, 서정하, 임봉춘, 지용철 조교사의 은퇴식을 시행했다.

올해는 특별히 한국경마 100년이 되는 해로서, 지난 100년의 역사에 기여해온 베테랑 조교사들이 다음 100년의 역사를 써나갈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뜻깊은 자리였다고 마사회측은 설명했다.

특히 지용철, 김점오 조교사는 각각 1986년, 1987년에 데뷔해 뚝섬 경마장(1954~1989) 시절부터 조교사 경력을 쌓아온 경마현장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회 코리안더비 우승의 위엄!’ 김점오 조교사 (데뷔 1987.07.10, 8691전 792승, `98년도 코리안더비 등 대상경주 13회 우승, 2015년 올해의 공정대상 수상)

김점오 조교사, 그는 4번의 도전 끝에 기수 양성소에 입소해 기수 후보생 5기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기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1987년 7월에 조교사로 데뷔해 경마장 생활만 올해로 만 49년째다. 그는 ‘코리안더비’ 1회 대회에서 ‘우승예감’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는데 첫 번째, 1회 우승했다는 자부심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조교사로서 우승이라는 것에 대해 그는 기수와 상의한 작전이 잘 맞아떨어져서 우승이란 큰 선물을 받았을 때의 쾌감이라는 것은 ‘이것만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느낄 정도의 환희를 맛보았던 그런 순간들이었다고 답했다. 또한 한 평생을 여기서 살아오면서 뒤를 돌아봤을 때 자신은 다시 태어나도 기수, 조교사를 할 거 같다고도 이야기했다.

제일 고마운 사람으로 그는 지용철 조교사를 꼽았다. 50년 경마장 생활하면서 많이 힘들고 어려웠을 때 친구이면서 키다리 아저씨처럼 항상 뒤에서 있었던 친구가 바로 지용철 조교사였다. “친구야 네가 있어서 나는 항상 행복했다”며 영상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던 김 조교사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경마 팬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로 “고객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더라면 과연 조교사로서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이걸 그만두고 나더라도 나를 좋아했던 모든 팬들에게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라며 마지막으로 “경마장, 잘 살다갑니다. 멋있게 잘 살다갑니다.”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

▲‘한국경마의 마에스트로’ 박대흥 조교사 (데뷔 1997.05.28, 7124전 1016승, `19년도 코리안더비 등 대상경주 18회 우승, 최우수 조교사 3회(`05년도, 08년도, `18년도), 통산 세 번째 1000승 달성)

올해 1월 한국경마 역대 세 번째로 1000승을 일구며 전설로 남게 된 박대흥 조교사, 그와 경마공원의 인연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고 한다. 1년 만에 퇴사를 했다가 정지은 조교사와의 인연으로 다시 경마장 생활을 시작해 어느덧 40년 넘게 보낸 곳이 되었다.

associate_pic

서울경마공원 마방의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박 조교사가 개업을 할 때 18조 마방은 빈 마방이었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두려움, 남들의 시선 등 여러 부분에 있어 부침이 있었지만 남승현 마주와 함께했던 ‘즐거운파티’가 2000년 그랑프리 우승을 따내며 본격적으로 마방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이룬 1000승에 대한 소감은 무엇이었을까. 1000승에 대한 기대를 여러 사람들이 해줬고 응원을 해줬는데 그게 잘 안되다가 1000승을 이루니 울컥했던 심정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1000승이 주는 의미 또한 지금까지 생활했던 경마장에서의 마지막 훈장으로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명문가문’이다. 2007년, 2008년 대통령배 2연패를 이룬 말로 굉장히 기억에도 남고 조교사 자신에게도 여러 가지 교훈을 줬던 말이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박대흥 조교사는 “경마장은 정말 저한테는 고마운 곳"이라며 "늘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갈 것"이라고 따스한 인사를 전했다.


▲‘도전의 연속’ 서정하 조교사 (데뷔 2004.09.01 2852전 162승, `10년도 스포츠조선배 등 대상경주 2회 우승)

그가 조교사로 개업하게 된 과정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어릴 때 승마선수로 생활하다가 1985년 한국마사회 승마교관으로 지원해 합격한 그는, 입사 첫해부터 기수후보생 교육을 맡아 일하며 경마 커리어의 발판을 쌓게 되었다. 그 덕분에 조교사 면허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조건이 되었고, 조금은 늦은 나이었지만 2004년에 조교사로 개업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은 2009년 ‘플로리다삭스’라는 말과 첫 대상경주 우승을 했을 때라고 서 조교사는 말했다. 당시 자신뿐만 아니라 김창식 마주, 부민호 기수 모두 다 첫 대상경주 우승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특히 당시 그 경주에서 ‘플로리다삭스’가 큰 마신차로 단독질주를 하면서 우승했던 장면이 기억에 선하다고 했다.

서 조교사는 “시작이 늦어서 정착까지 시간이 남보다 많이 걸렸지만, 남의 큰 발자국 옆에 새끼 발자국이라도 남겨서 만족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동물사랑 전도사’ 임봉춘 조교사 (데뷔 2002.08.22, 5306전 425승, `11년도 코리안더비 등 대상경주 6회 우승)

동물을 너무 좋아해서 조카의 추천으로 오게 된 것이 경마장이었다는 임봉춘 조교사, 동물을 좋아하다보니 말을 돌보는 일에 금방 적응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2002년 조교사로 개업했지만, 첫 3년간은 성적이 좋지 않아 너무나도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이 일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의 마방이 승승장구하게 된 것은 ‘내추럴나인’이라는 말이 들어오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는 이 말이 더비에 출전할 수 있게 2군 경주를 건너뛰고 1군에 과감히 도전하여 우승을 따냈고, 덕분에 더비에 출전에 성공하며 2착까지 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조종원 기자 = ‘경부대로’의 2관 달성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제15회 코리안더비(GI)에서 문세영 기수가 말몰이를 맡았던 서울경마공원의 ‘지금이순간’(서울 소속, 수, 49조 지용철 조교사)의 우승으로 끝났다.  ‘지금이순간’은 20일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제15회 코리안더비(국산 3세,  1800M, GI)에서 폭발적인 막판 뒷심으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사진은 우승한 지금이순간과 지용철 조교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2.05.20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photo@newsis.com

‘내츄럴나인’은 중간에 퇴행성관절염 진단을 받아 경주마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충분한 휴양 후 2008년 스포츠조선배에서 우승하며 재기에 성공했고, 그 후로도 3년이나 더 활동했다.

어릴 때부터 말이 친숙했던 그의 아들도 현재 마방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에 그는 아들이 이 일을 하기엔 신체적 조건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만류했지만, 아들의 말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아울러 임 조교사는 뒤에서 묵묵히 내조하며 그를 격려해준 아내에게 “고맙고, 수고했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성실함의 대명사’ 지용철 조교사 (데뷔 1986.11.20, 1만2509전 933승, `21년도 대통령배 등 대상경주 25회 우승, 최우수 조교사 2회(`04년도, `13년도), 역대최초 1만경기 출전)

역대 최초 1만 번의 출전이라는 기록으로 알 수 있듯이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해 온 지용철 조교사, 그의 경마장과의 첫 인연은 뚝섬 시절이던 197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학교를 그만두고, 먹고 잘 수 있다는 말에 말관리사로 입사했다.

이듬해 기수 양성교육을 받은 그는 1975년 기수로 데뷔했다. 그는 기수생활을 하면서 참 좋은 기억들이 많았다고 떠올렸다. `76년도 ‘오대산’이란 말과 처음 우승했던 기억, 일간스포츠배 1회, 스포츠서울배 1회 등 각종 초대 경주에서에서의 우승, 특히 ‘포경선’이라는 말과 함께 그랑프리 경주에서 독보적인 주력으로 우승했던 기억은 그에게 아주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조교사 경력만 36년인 그의 손을 거쳐 간 말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아마 `13년도 최고의 명마로 뽑힌 ‘지금이순간’일 것이다. 그는 ‘지금이순간’의 어미 ‘솔마루’와 아들 ‘심장의고동’까지 3대를 모두 훈련시켰다. 특히 ‘심장의고동’은 순수 국산마로서 대통령배까지 우승한 아주 자랑스러운 말이다.

지용철 조교사는 경마장은 즐거움과 스트레스의 반복이었지만, 다시 또 조교사를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은퇴하지만 그동안 함께 마방에서 일해 왔던 믿음직스러운 그의 아들이 경마장에서 좋은 성적을 내주길 기대한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항상 최선을 다해준 마방의 관리사들, ‘지금이순간’과 여러 번 호흡을 맞춘 문세영 기수, 그리고 그를 믿어준 마주들께 감사”를 전했고, “경마고객들이 박수쳐주신 덕분에 행복했다”며 경마팬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조교사는 경주마를 훈련시키고 사육·관리를 담당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swoo@newsis.com

많이 본 기사

이 시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