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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영화 '기생충'보다 참혹했던 대한민국 반지하의 민낯

등록 2022.08.12 15:25:06수정 2022.08.12 16: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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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준호 기자 =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박 사장의 저택을 빠져나온 기택의 가족은 자신들의 반지하 주택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미 집 안은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찼고, 여기저기 가재도구들이 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간신히 필요한 물건만 챙겨 집을 나온 기택의 가족은 수재민 대피소로 향한다. 반면, 박 사장의 가족은 미세먼지가 사라져 마당에서 파티를 열 수 있게 됐다며 기뻐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의 쾌거를 이룬 기생충은 양극화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줬다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외신은 영화 속 배경이자 가난의 소재로 활용된 반지하를 'banjiha'로 앞다퉈 조명했다.

현실 속 반지하는 더 참혹하고 잔인했다.

기록적인 폭우가 수도권을 강타한 지난 8일 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는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일가족 3명이 침수피해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날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기초생활수급자로 알려진 50대 여성이 들이차는 빗물에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모두 'banjiha'에 살고 있었다.

반지하 거주자들을 덮친 비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취약한 주거 환경은 매년 폭우가 내릴 때마다 언급됐고, 영화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졌지만 안타까운 죽음과 슬픔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향후 지하·반지하를 주거용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기존 지하·반지하 주택은 10~20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차례로 없애 나가기로 한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반지하 주택은 안전·주거환경 등 모든 측면에서 주거취약 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유형으로,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지하는 열악한 주거환경이며 무엇보다 재난 위험에 취약하다.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사라져야 할 주거 형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반지하에 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전국 지하·반지하 주택에는 32만7329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서울에만 절반 이상인 20만849가구가 있다.

반지하에 살고 싶어서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서민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선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누군가에게는 거주할 수 있는 마지막 거처다. 이를 급격히 줄일 경우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성이 흔들릴 우려가 큰 셈이다.

결국 반지하 개선 작업은 대규모 공급 계획이 수반돼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 대규모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고, 임대료 격차도 감당하기 쉽지 않다. 결국 반지하 개선 역시 시장원리를 고려한 중장기적 과제로 가져가야 한다.

당장의 비극을 막기 위해 지하·반지하 취약계층에 대한 정교한 실태조사도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토대로 침수 취약지역에 빗물 방지턱, 물막이 시설 등을 설치해 거주자의 주거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Juno2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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