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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정 학예연구사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이 작품은 꼭 보세요"

등록 2022.08.13 07:07:00수정 2022.08.13 10: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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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서 특별전 2탄...90점 전시
담당 학예사가 꼽은 TOP 7...세 사람~정릉풍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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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이 개막한 12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을 찾은 관람객들이 이중섭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전시는 12일부터 2023년 4월 23일까지. 2022.08.12.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2탄, '이중섭 전시'가 또 화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12일 개막한 전시는 벌써부터 관람객이 몰려들고 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1488점 중 이중섭 작품만을 모은 전시다. 이회장이 소장했던 80점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10점을 뽑아 총 90점을 선보였다.

손바닥만 한 그림들이 가득찬 전시장은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생전 풀지 못한 그리움이 뭉쳐있다. 화사한 색감의 그림부터 이중섭을 대표하는 은지화, 가족에 편지 그림을 쓴 엽서화 등에 그의 가족이 이어져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오로지 소장품으로만 한국 미술사의 주요 작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전 국립현대미술관엔 이중섭 작품이 11점밖에 없었지만 이건희컬렉션 기증으로 115점으로 늘었다. 이건희 컬렉션에서도 이중섭 작품은 국내외 작가를 통틀어 유영국, 피카소에 이어 가장 많다. 그래서 '이건희가 사랑한 이중섭'으로 불리는 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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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 우현정 학예연구사가 서울 종로구 서울관에서 열린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언론 공개행사에 참석하여 이중섭 작가의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08.10. pak7130@newsis.com


"그간 ‘이중섭’ 하면 ‘황소’만 아셨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가족’을 그린 인간 이중섭의 또 다른 면모를 만나볼 수 있다. 엽서화 위에 작게 쓰여진 “내, 태현군” 이란 글귀에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았을 이중섭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손바닥만한 엽서와 은지화에 담긴 이중섭의 가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코로나19와 폭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준다. 전시는 내년 4월 23일까지 개최되니 천천히 오셔서 감상하시면 좋겠다."

작은 그림들이 많아 자세히 봐야 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우현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이중섭의 이 작품은 꼭 봐야 하는 작품 7점'을 꼽았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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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세 사람〉, 1942-1945, 종이에 연필, 18.3×27.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 '세 사람':'해방기념미술전람회'에 출품하려고 했는데...

이중섭은 1950년 12월 한국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피란 오며 그간 그렸던 작품들을 고향에 두고 왔다. 어머니에게 ‘나 대신 보시라’고 남겼다는 그림은 현재 확인할 길이 없지만, 1940년대 이중섭이 남긴 몇 점의 연필화를 통해 그 시기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세 사람'은 이중섭이 1945년 10월에 열린 '해방기념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원산에서 가져왔으나 시일이 늦어 출품하지 못했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엎드리고, 쪼그리고, 드러누운 자세의 세 인물이 화면의 사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제작 시기는 1942년에서 1945년 사이로 추정하며, 일제 강점 말기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 듯 두꺼운 종이에 무수히 겹쳐 그린 연필 자국이 삶의 피로, 무력감, 허무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청년들은 꿈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처지를 묘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화면의 앞으로 가로 누운 소년의 왼손과 오른 발이 짙은 선으로 강조되어 있는데, 현실에 맞서는 강한 의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의 소장가였던 정기용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본래 이번 전시에서 함께 출품된 '소년'과 한 작품이었던 것을 분리 표구하며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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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상상의 동물과 사람들〉, 1940, 종이에 먹지그림, 채색, 9×14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2.상상의 동물과 사람들: 엽서화 중 가장 빠른 1940년대 그림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은 이중섭 엽서화 중 가장 빠른 1940년 12월 25일자에 보내진 것으로 작가는 먹지를 사용해 선을 베껴 낸 뒤 채색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중섭의 학창시절 작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지금 1940년대 이중섭의 작품 경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이중섭의 주소나 발신지 소인이 찍혀 있어 이중섭의 거처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엽서화는 이중섭이 훗날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무언의 연애편지다. 이중섭은 1940년부터 1943년까지 연인이었던 마사코에서 9x14cm의 관제엽서 한 면에 그림으로 가득 채운 엽서를 보냈다. 이중섭의 조카 이영진의 증언에 의하면 이중섭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올 때까지 엽서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현재 남겨진 엽서화는 총 88점이며, 이를 연도별로 구분하면, 1940년에 1점, 1941년에 75점, 1942년 9점, 1943년에 보낸 것이 3점이다. 이 그림들은 1979년 4월 이중섭의 미공개 작품 2백여 점으로 꾸몄던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의 전시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는데, 이중 이건희컬렉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엽서화는 40건(41점)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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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펜, 유채, 32.8×20.3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3.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서귀포 시절 회상...큰 아들 태현에 보낸 편지에 동봉

이중섭이 아이들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46년 원산의 한 고아원에서 미술 교사 일을 잠시 했을 때, 그리고 같은 해 그의 첫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디프테리아로 사망한 이후라고 알려져 있다. 이중섭은 아들이 혼자 묻히면 쓸쓸해 할까봐 외롭지 말라며 장난을 치는 어린 아이들을 그려서 넣어주었다고 한다. 그해 8월 평양에서 열린 '제1회 해방기념종합전람회'(평양)에 출품한 〈하얀 별을 안고 하늘을 날으는 어린이〉도 첫 아들을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이중섭이 서귀포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것이다. 그림 속 아이들은 긴 줄로 연결되어 있고 줄의 양 끝에 물고기가 매달려 있으며 화면 가운데에는 커다란 꽃게가 앞발로 줄을 당기고 있다. 1954년 일본에 있던 큰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되었기에 자세히 보면 종이의 접힌 흔적이 남아있다. 이와 유사한 작품이 3점 더 현존하며 그 중 하나는 둘째 아들 태성에게 보낸 것인데, 이중섭은 두 아들이 싸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같은 그림을 두 번 그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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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가족을 그리는 화가〉, 1950년대 전반, 은지에 새김, 유채, 15.2×8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 4. 가족을 그리는 화가:은지화...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은지화는 광택 있는 알루미늄 속지에 철필 또는 못을 사용해 윤곽선을 눌러 그리고 그 위에 물감, 먹물 등을 문질러 완성한 작품들을 일컫는다. 이중섭은 담배갑 속 은박지를 다방이나 술집 심지어는 길바닥과 쓰레기통에서 주워 사용했다고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은지화들은 처음부터 접히고, 꾸겨지고 찢어진 상태를 그대로 두고 그림으로써 화면의 우연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중섭이 1952년 6월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그리기 시작한 수많은 은지화에는 주로 가족과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이중섭은 그 가운데 70여 점을 1953년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대작으로 완성하려고 그려본 스케치이니,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중섭만의 독특한 재료와 기법으로 인해 그의 작품은 1956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기도 했다. 〈가족을 그리는 화가〉는 가족이 모두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가 자신이 그려져 있다. 화면 주변부로 물고기와 게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952년 가족들과 헤어진 이후 서귀포 시절을 추억하며 그린 은지화 중 하나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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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현해탄〉,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펜, 유채, 크레용, 13.7×21.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5. 현해탄: 그리움...화면 우측 하단 작은배에 올라탄 이중섭

이중섭은 1953년 7월 가족을 만나러 일본을 가지만 1주일 만에 돌아오고 만다. 생전의 마지막 짧은 만남이었다. '현해탄'은 헤어진 가족을 만나러 가는 이중섭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화면 우측 하단의 작은 배에 올라탄 남성이 이중섭이다. 고개를 들어 그가 바라보는 곳에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데,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네 명의 가족이 웃고 있는 듯하다. 이중섭은 이별의 아픔을 온 가족이 한 데 모여 있는 이상적인 풍경으로 표현해내는데, '현해탄'도 그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따뜻하고 해학적으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림 가장자리에 테두리를 쳐 화면을 두 개로 분할하는 방식은 '투계'나 '아버지와 두 아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이중섭만의 특이성이기도 하다. 같은 제목의 세로형 작품도 현존하는데 이 작품은 이중섭미술관에 기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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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부인에게 보낸 편지〉, 1954, 종이에 잉크, 색연필, 26.5×2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6. 부인에게 보낸 편지:1952년 가족과 생이별...'아고리'는 이중섭 별명

이중섭은 1952년 가족과 생이별 한 후 아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 편지는 1954년 11월 경 1955년 1월에 있을 미도파백화점 화랑 개인전 준비에 한창일 때 쓴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 제작된 작품은 편지의 내용대로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상태인 것을 알 수 있으며 이중섭의 많은 대표작들이 이 편지를 쓰던 즈음 제작되었다. 편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당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 이 아고리는 머리가 점점 더 맑아지고 눈은 더욱더 밝아져서, 너무도 자신감이 넘치고 또 흘러 넘쳐 번득이는 머리와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리고 또 그리고 표현하고 또 표현하고 있어요.
끝없이 훌륭하고......
끝없이 다정하고......
나만의 아름답고 상냥한 천사여......더욱더 힘을 내서 더욱더 건강하게 지내줘요.
화공 이중섭은 반드시 가장 사랑하는 현처 남덕씨를 행복한 천사로 하여 드높고 아름답고 끝없이 넓게 이 세상에 돋을 새김해 보이겠어요.
자신만만 자신만만
나는 우리 가족과 선량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진실로
새로운 표현을, 위대한 표현을 계속할 것이라오.
내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

편지 가장자리에 그려진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는 이중섭의 모습, 네 가족이 얼굴을 맞대고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에서 가족을 그리고 재회를 희망하는 작가의 간절함과 기대감을 확인할 수 있다. 편지는 부인에게 보내는 사적인 메시지였던 만큼 아고리, 천사, 발가락 등 애정 어린 말들이 종종 등장한다. 아고리는 이중섭의 별명으로 문화학원 재학 당시 이시이 하쿠데이 교수가 그에게 붙여준 것이다. 문화학원에 이씨 성을 가진 유학생이 3명이라 이들을 구분하고자 했는데, 이중섭은 턱이 길다는 뜻의 아고리로 불렸다. 발가락은 야마모토 마사코를 지칭하는 말로 연애 시절 마사코가 발가락을 다쳤을 때 이중섭이 간호했던 때의 기억으로 부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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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정릉 풍경〉, 1956, 종이에 연필, 유채, 크레용, 43.5×29.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7. 정릉 풍경:거식증으로 여양실조 간염 앓아 쓸쓸한 풍경

이중섭의 말년작에 속하는 '정릉 풍경'은 그림 앞쪽에 키가 큰 소나무가 세로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고 아래로는 전형적인 돌담과 기와집이 자리하고 있다. 거친 연필 선 위에 크레용으로 색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유채를 살짝 덧칠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중섭은 1940년대 초반 제작한 엽서화에서 크레용을 사용해 강줄기나 산의 능선을 유려하게 처리하고 과일이나 꽃을 강조한 바 있다. 이중섭이 심신이 쇠약해진 생의 말년에도 기법적인 실험을 이어나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제작할 무렵 이중섭은 거식증으로 인한 영양실조와 간염 등을 앓으며 정릉에서 화가 박고석, 한묵, 소설가 박연희, 시인 조영암 등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정릉 풍경'은 따뜻한 대기 속 쓸쓸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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