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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찬탈 위해 5·18 무력 진압·공작 펼친 전두환 행적 규명해야"

등록 2018.09.27 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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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록관, 군 기록물·수사·재판 기록 분석해 진상 규명 방향 제시

"정권찬탈 위해 5·18 무력 진압·공작 펼친 전두환 행적 규명해야"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그의 보안사가 정권 찬탈용으로 시국 수습 방안을 기획·설계해 공작을 펼치고 광주시민을 무력 진압한 정황·행적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5·18 기록관은 각종 군 기록물과 12·12 및 5·18 검찰 수사·재판 기록 등을 분석해 펴낸 '전두환과 그의 보안사의 5·18 연관 행적'이라는 보도자료를 27일 공개하고 이 같이 밝혔다.

 5·18 기록관은 보안사 정보처장 권정달 대령이 검찰 수사 과정에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전두환은 1980년 5월 초 '정권 찬탈 실행 계획(5·17쿠데타 실행강령)'인 '시국 수습 방안'을 수립하라고 보안사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두환은 이 방안을 실행하는 과정에 예상되는 국민 시위를 평정하기 위해 강경 진압 계획 또한 사전에 세웠고, 이는 무고한 시민이 학살당하는 한 원인이 됐다"며 "'과감히 타격하라, 끝까지 추적 검거하라, 분할 점령하라'는 진압 계획에 따라 5·18 3~4일 전에 공수부대가 투입돼 과잉 진압이 펼쳐진 점으로 미뤄 5·17 쿠테타와 5·18은 불가분리의 관계"라고 설명했다.

 5·18 기록관은 전두환 지시로 1982년 5월 발간된 '5공화국 前史(약칭 5공 전사)' 내용에 시국 수습 방안 내용이 기록돼 있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5공 전사'는 정권 찬탈을 미화하기 위한 왜곡·조작 기록물이라고 짚었다.

 실제 '5공 전사'에는 1980년 5월17일 시국 수습 방안에 대한 승낙을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이들 가운데 전두환이 빠져 있고,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 전두환을 대신해 700보안부대 백재구 대령이 참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1997년 엮은 '12·12, 5·18실록' 23쪽에는 '5월17일 오후 5시10분 전두환·주영복·이희성 등이 함께 청와대로 들어갔다'고 적혀 있다.

"정권찬탈 위해 5·18 무력 진압·공작 펼친 전두환 행적 규명해야"


 또 5·18 기록관은 '5공 전사' 기록과 육군 제2군사령부의 '광주권 충정작전 간 군 지시 및 조치 사항'에 '전(全) 각하(閣下) : 초병에 대해 난동 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명시돼 있는 점 등으로 미뤄 사실상 전두환이 자위권 발동 명목으로 발포 지시를 내린 것으로 분석했다. 

 '5공 전사'에는 '1980년 5월21일 국방부장관실에서 열린 열린 자위권 발동 결정 국방부회의에 전두환이 참석했다'고 나와 있는데, 이는 그가 5·18을 총지휘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지휘체계 이원화를 입증해주는 기록이란 설명이다.

 다만, 5·18 당시 광주역(5월20일 오후 11시)·전남도청(5월21일 오후 1~4시)에서 자행된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 시점과 달리 5공 전사에 '자위권 발동 건의 시각'이 기록돼 있지 않은 점, 5월21일 오후 7시30분 자위권 보유 천명 담화문을 발표했다는 검찰 수사 기록 등으로 미뤄 군이 발포 책임을 호도하기 위해 회의 개최 시각을 누락한 것으로 추정했다.

 5·18 기록관은 전두환이 1980년 5월25일 광주 재진압 작전 최종 결정 회의에 참여한 기록, 재진압 작전 때 편의대(교란 임무 비정규군 부대)가 사용할 가발을 지원하고 감청 활동을 강화한 기록, 참모들을 광주에 보내 505보안대 내에 '보안사 광주분실'을 설치하고 거짓 정보를 흘린 기록, 작전 하루 전 계엄군에 '잔치판'을 열어주고 격려금 전달을 지시한 기록 등으로 미뤄 "전두환이 광주항쟁 학살의 총 책임자"라고 분석했다.

 공작의 실체 또한 철저히 밝혀야 할 대목이라고 5·18 기록관은 설명했다. 미국 기밀문서에서 전두환 신군부가 무력 진압과 정권 찬탈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지속적으로 흘려왔고, 미국이 이를 알고도 묵인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전두환은 1980년 6월4일 미 상공회의소 관계자들에게 시신 22명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들 모두 북한 간첩(침투 요원)이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등 신군부의 공작은 5·18과 무관한 북한의 남침설, 간첩 침투설, 인민재판 시행·처형설,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설 등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나의갑 5·18 기록관장은 "전두환과 그의 보안사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5·18은 공작으로 시작해 공작으로 끝이 난다"며 "정권 찬탈이란 '못된 꿈'을 광주에 적용한 전두환을 '5·18 총사령관'으로 규정하고, 그의 보안사를 '공작 부대'로 설정해 '5·18 연관 행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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