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아킬레스건' 김학의·버닝썬 사건…文, "철저 수사" 배경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권력기관 개혁 의지 담긴 듯
靑 "좌고우면 하지 않고 원칙 따른다는 의지 표현"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 관련 업무 보고를 받고 있다. 2019.03.18. (사진=청와대 제공) [email protected]
문 대통령은 18일 청와대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을 불러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했다.
이 사건들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 수사기관들의 고의적 부실수사 혹은 적극적 은폐 정황이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과거에 벌어진 사건이라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잘못 처리하면 우리 정부의 책임으로 귀착된다"며 "검·경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김학의·버닝썬 사건은 검경 양측의 치부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평가다. 김 전 차관의 성접대 의혹의 경우 2차례 수사에도 불구하고 무혐의 처분을 했다는 점에서 검찰의 '약한 고리'로, 버닝썬 사건은 업주와 경찰의 유착관계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경찰에게 부담이다. 장자연 사건은 검경 모두 봐주기 부실수사 의혹을 받고 있다.
게다가 관련 사건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대부분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등 높은 여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버닝썬 클럽 관련 경찰 유착의혹 수사 요청 청원은 31만 명이 동의했고, 김학의 사건의 수사촉구 청원에도 6일 만에 12만 명 이상이 동참하는 등 참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장자연 사건 재조사 청원은 60만 명 이상이 동의하는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문 대통령이 전날 법무부·행안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긴급 지시를 내린 것도 이러한 들끓는 국민 여론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은 진실규명 요구와 함께 과거 수사과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강한 의혹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귀국 후 세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향후 대응 방안을 집중 논의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직접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귀국 후 참모들로부터 세 사건에 대한 보도량과 함께 여론의 변화 등을 보고받은 이후 법무부·행안부 장관의 대면 보고를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조국 민정수석의 오전 별도 보고 후, 오후에 장관들이 보고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그 외 공식일정은 모두 취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이토록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는 것은 세 사건 모두 정부가 추진 중인 권력기관 개혁과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증언과 대검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통해 권력형 스캔들 의혹으로 확산되자 확실한 메시지를 주려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전날 "검찰과 경찰이 권력형 사건 앞에서 무력했던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서 과거에 있었던 고의적인 부실·비호·은폐 수사 의혹에 대해 주머니 속을 뒤집어 보이듯이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지 못한다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검찰과 경찰 모두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는 명분을 앞세워 모멘텀(추진력)을 잃은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등 권력기관 개혁에 속도를 낼 시점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검경 개혁 추진에 문 대통령의 '그립'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상기·김부겸 장관의 보고 전에 조 수석이 별도로 대면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향후 대응 전략 등을 언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 수석은 지난 9일 공개된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등 권력기관 개혁 작업을 소개하며 국회 통과를 촉구한 바 있다.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 관련 업무 지시를 하고 있다. 2019.03.18. (사진=청와대 제공) [email protected]
다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관련 개연성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는 '검·경의 명운을 걸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과 수사권 조정 사이의 연관성 질문에 "검경 수사권이나 공수처 등과 관련해서 오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야당은 문 대통령의 지시가 '적폐청산 프레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세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자체가 야당 대표를 겨냥한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또 다시 과거와의 전쟁에 칼날을 뽑았다"며 "동남아 순방을 다녀온 후 첫 일성이 야당 대표 죽이기로 가는 검경 수사에 대한 지시라니 국민이 아연할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임명 일주일 만에 터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당시 법무부 장관이 현재 황교안 한국당 대표였고,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곽상도 의원이었다는 점을 들어 권력 차원에서 관련 사건을 덮으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에도 야당 대표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한 것은 검경 개혁 구상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검찰 개혁과 관련해서는 본인이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등을 지낸 노무현 정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펴낸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검찰 개혁과 관련해서 지방분권 강화 전에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검찰에 너무 많이 집중된 권한을 법으로 조정하는 것"이라며 "집중된 권한 때문에 무소불위의 검찰이 됐고, 권력의 눈치를 보는 정치검찰이 등장했다.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 조정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개혁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적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한 것은 그만큼 권력기관 개혁 부분에 있어 '좌고우면' 하지 않고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평소 의지가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본인의 공약이 세 사건들로 인해 훼손되는 것을 지켜만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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