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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관대 풍경'도 바꿨네… 'X의 비극' 오픈 채팅방

등록 2020.05.13 08: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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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낭독회로 올해 시즌 출발

[서울=뉴시스] 희곡우체통 'X의 비극' 낭독회의 '관객과의 대화'를 위한 오픈채팅방. 2020.05.1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희곡우체통 'X의 비극' 낭독회의 '관객과의 대화'를 위한 오픈채팅방. 2020.05.1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공연계 '관객과의 대화'(관대) 풍경도 바꾸고 있다.

국립극단이 지난 11일 오후 7시30분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선보인 연극 낭독회 'X의 비극'이 끝나고 관객들은 스마트폰 메신저 '오픈 채팅방'을 통해 이유진 작가와 배우들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본래 일반적인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객석에 마이크를 돌려 가며 관객의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이날은 코로나19로 인해 여전히 조심스런 상황이 조심스러워지면서 '오픈채팅방'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초반에 관객들은 오픈채팅방이 익숙하지 않은 듯, 방에 입장만 할 뿐 질문을 남기지 않았다. 국립극단 관계자가 "궁금하신 점을 물어보시거나 혹은 자유롭게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글을 오픈채팅방에 남긴 이후에도 한동안 깜깜 무소식이었다. 이날 사회를 본 희곡우체통 '우체국장'이자 극작가 김명화가 이 작가와 배우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X의 비극'은 '탈진한 X세대'의 이야기다. 40대에 접어든 가장 '강현서'는 어느 날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고 방 안에 누워있기만 한다. 그는 태어난 것이 잘못이라며 내내 무기력하다. 싱그러울 나이의 20대 초중반의 윤애리는 현서 아들 명수의 수학 과외 선생. 하지만 그녀는 공포와 죽음에만 관심이 있다. 

본인도 X세대인 이 작가는 "예전부터 X세대가 느끼는 비극을 그리고 싶었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데, 한때 빠릿빠릿했던 나는 갈수록 느릿느릿 늙어만 가고, 이런 세상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위기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희곡우체통 'X의 비극' 낭독회 중 이유진 작가. 2020.05.11. (사진=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희곡우체통 'X의 비극' 낭독회 중 이유진 작가. 2020.05.11. (사진=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그런데 작품은 X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가는 "모든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피로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X는 미지수 'X'를 의미하기도 한다. 모든 세대가 공감할 만한 삶의 부담감에 대해 썼다"고 전했다.

김 우체국장이 뜸을 들인 뒤 오픈 채팅방에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극이 끝나고 나서 현서가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하다" "배역에 이름을 정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작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 등이었다. 오픈 채팅방에는 국립극단 관계자 포함 30명가량이 들어왔고, 관객과의 대화는 예정보다 10분가량 더 길어졌다.
 
작년에 '카톡 소통'을 표방한 일부 연극과 개그맨 겸 방송작가 유병재가 묵언 팬미팅을 진행하면서 '오픈 채팅방'을 활용한 적은 있다. 그런데 공연계 관객과의 대화에서 '오픈 채팅방'이 등장한 것은 드문 일이다. 

김 우체국장은 "코로나19 때문에 (관객들의 손을 타는) 마이크 없는 풍경을 만들고자 했다"면서 "잠잠해지다가 (코로나19 재확산의 근원인) 이태원 클럽 문제도 신경이 쓰였고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선착순 무료 예약제로 진행된 이날 낭독회 관람은 '거리두기 좌석제'로 운영됐다.

[서울=뉴시스] 희곡우체통 'X의 비극' 낭독회. 2020.05.11. (사진=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희곡우체통 'X의 비극' 낭독회. 2020.05.11. (사진=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이날 선보인 'X의 비극'은 고려장 등 신랄한 요소가 눈길을 끌었다. 낭독극이었음에도 배우들의 몰입도도 대단했다. 특유의 어조가 있는 안병식은 강현서의 연극적인 요소를 능청스럽게 소화했다. 박희정은 윤애리에 깃든 그로테스크함을 단단하게 선보였다.

'희곡우체통'은 2018년에 신설된 국립극단의 창작희곡 온라인 상시투고 제도다. 극작가 누구나 희곡을 통해 국립극단과 만날 수 있는 연중 소통 창구다. 익명 투고를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공정성이 보장된다.

이 작가는 10년 전 김 작가에게 배운 그녀의 제자이기도 한데, 서로 대면을 해서 제대로 인사를 나누기까지 김 작가는 그 사실을 몰랐다. 김 작가는 "이 작가의 재기발랄한 글을 보면서 세월의 찬란함을 느꼈다"고 했다.

이날 낭독회는 코로나19로 인한 휴관이 끝난 후 국립극단이 첫 작품으로 선보인 것이다. '국립예술단체의 기획공연 취소 또는 연기' 기간이 해제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국립극단은 배삼식 작가에게 의뢰한 신작 '화전가', 조광화가 연출할 예정이던 '파우스트', 벨기에 리에주극장과 공동제작할 예정이던 한강 작가 동명 소설이 원작인 '채식주의자', 70주년 기념 레퍼토리 연극 '만선' 등을 코로나19 여파로 취소했다.

이성열 예술감독은 "코로나19 이후 금년 첫 공연이라 뜻깊고 감회가 새롭다"면서 "X세대를 다룬 TV 드라마는 많지만 40대 이야기를 다룬 연극은 드물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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