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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은 입맛대로, 적용은 다음 정부부터…'실효성' 못 챙긴 재정 준칙

등록 2020.10.05 16: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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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 재정 가능하도록 '유연성' 두겠다던 기재부

채무 비율·통합재정수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위기 시 적용 예외키로…경기 둔화 시 기준 완화

고치기 쉬운 시행령에 담고 적용은 '2025년'부터

"기준 쉽게 바꾸고 책임은 다음 정부…의미 없어"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 준칙 도입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0.10.05. ppkjm@newsis.com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 준칙 도입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0.10.05.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 김진욱 위용성 기자 = 정부가 나랏빚 증가의 브레이크 역할을 할 '재정 준칙'의 구체적인 기준을 국회 통과 없이 고칠 수 있는 시행령에 담기로 했다.

재정 준칙 적용 시기는 다음 정권이 집권한 2025년(회계연도 기준)으로 잡았다. 오는 7일부터 시작될 국정 감사에서 실효성 논란을 피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국가 채무 비율은 60%를, 통합재정수지 비율은 마이너스(-) 3%를 기준으로 하는 재정 준칙을 도입한다"면서 "현재는 여력이 있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서 재정 건전성이 나빠지는 속도에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정 준칙은 국가 채무 비율이나 재정 수지 등 재정 관련 지표에 구체적인 기준을 두고, 그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규칙이다. 독일은 재정 준칙을 도입한 뒤 2011~2019년 9년 동안 정부 부채 비율을 20.0%포인트(p) 낮추는 등 성과를 냈다. 세계 92개국이 재정 준칙을 운용하고 있고, 주요국 중에서는 한국과 터키에만 없다는 것이 기재부 설명이다.

문제는 각종 조건이다. 기재부는 각종 조건 적용에 '유연성'을 뒀다.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확장 재정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재정 준칙이 정부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먼저 국가 채무 비율(60% 이하)과 통합재정수지(-3% 이상)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둘 중 하나가 기준치를 넘기더라도, 다른 지표가 기준치 안으로 들어오면 재정 준칙을 충족한 것으로 본다.

코로나19 등 대규모 재해나 경제 위기, 전쟁 등이 발생하면 재정 준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또 위기에 대응하느라 늘어난 국가 채무는 25%씩 쪼개 향후 4년에 걸쳐 나눠 반영한다. 고용이 급감하는 등 경기가 둔화하는 시기에는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3%에서 -4%로 1%p 완화한다. 이는 최대 3년까지 연속해서 적용할 수 있다.


기준은 입맛대로, 적용은 다음 정부부터…'실효성' 못 챙긴 재정 준칙


이 기준은 시행령에 위임한다. 개정하려면 반드시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법령과 달리, 시행령은 소관 부처가 일정 기간 입법 예고한 뒤 국무 회의 의결을 거쳐 발표하면 된다. 모든 개정 절차를 부처(기재부)-국무총리(국무 회의 부의장)-대통령(국무 회의 의장) 등 행정부 안에서 마칠 수 있다.

이런 재정 준칙의 적용은 2025년(회계연도 기준)부터 한다.

다만 실효성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60%라는 국가 채무 비율 기준은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 등 야당이 발의한 재정건전화법 기준(45%)보다 느슨한 수준이다. 구체적인 기준을 시행령에 담는 점을 두고서도 논란이 많았다. 야당의 견제 없이 쉽게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용 역시 다음 정부부터 한다는 점에서 "책임을 떠넘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양준석 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이런 조건이라면 재정 준칙을 도입하는 데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재정 준칙의 핵심인 국가 채무 비율 등 기준을 정부 내에서 바꿀 수 있고, 다음 정권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라고 했다.

실효성에 의문이 많으므로 코로나19 위기가 완전히 지나간 뒤에 구체적인 기준 등을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 채무 비율 60% 아래, 통합재정수지 -3% 이상이라는 기준에는 마땅한 근거가 없다"면서 "코로나19 위기 이후에는 세계 경제·재정학계에 새 합의가 생길 것으로 보이는데, 약 4년 뒤부터 적용되는 재정 준칙의 기준을 벌써 정할 이유가 있느냐. 코로나19가 종식된 뒤에 다시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기준은 입맛대로, 적용은 다음 정부부터…'실효성' 못 챙긴 재정 준칙


기재부는 재정 준칙의 기준이 느슨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시행령에 담는다고 해도 정부 마음대로 바꿀 수 없고, 문재인 대통령 임기 안에 적용하지 않더라도 재정 건전화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홍 부총리는 "중기 계획상 국가 채무 비율은 2024년에 이미 50%대 후반까지 올라간다.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60%라는 기준은) 결코 느슨하지 않다"면서 "구체적인 기준을 시행령에 담는다고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판단의 문제다. 법령에 규정하면 위기 시에 탄력적으로 (운용) 하는 데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시행령에 담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홍 부총리는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느라 재정 건전성이 상당히 악화해있는 상황이라 내년부터 재정 준칙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위기 시에 재정 준칙을 도입했던 다른 나라도 대부분 유예 기간을 뒀다"면서 "재정 준칙이 적용되기 전인 2022~2023년에도 이런 내용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기재부는 여당과 전체적으로 조율한 뒤에 이런 재정 준칙을 내놨다는 전언이다. 다만 여당 내 일부 이견을 가진 의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는 11월까지 재정 준칙의 근거를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정부 자율적으로 재정 준칙을 따르며 재정을 운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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