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잡나" 尹질책 다음날 "수도권大 증원"…과속 추진 우려
尹 "휴먼 캐피털 중요", "교육부는 경제부처"
"과학기술 인재 공급 않으면 개혁 대상" 경고
교육계 탄식…"수도권大 문과도 부실해질 것"
보수 성향 교총도 "윽박지르듯 하는 것 문제"
[서울=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반도체 포토마스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2.06.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분야 인재 양성을 주문하자마자 교육부가 수도권 대학 정원을 늘려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서면서 교육계 파장이 만만찮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교육부의 과제는 산업 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이다", "교육부가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면 대대적 개혁을 통해 과학 기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8일 교육부는 이 같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직후 분주하게 움직였다. 당장 장상윤 차관이 출입기자들을 찾아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과 정원 규제와 관련 "파격적 대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장 차관은 특히 수도권 대학 학부 정원 총량규제와 관련해 "규제 안에서 할 것아냐, 예외로 해서 특별한 룸(여지)를 만들어 줄 것이냐, 그리고 학생들을 길러내는 교원 등 인력을 확보하는 데 규제가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진행 중이며 확정된 방안은 아니지만, 그동안 수도권 인구 집중을 막기 위해 존재하던 수도권 정원 대학 총량규제를 완화하는 특례를 주겠다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윤석열 정권 출범 초기 교육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 단계부터 교육계 인사가 위원에서 배제되는 일로 인해 폐지설에 시달려 왔다. 일각에서 교육부가 대학을 옥죈다는 지적에 부를 폐지하고 대학에 대한 지원 기능은 다른 곳으로 넘기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여전히 7월 국가교육위원회 출범, 대학 규제 완화와 맞물려 부처 개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장 윤 대통령이 전날 반도체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규제에 얽매이지 말라는 취지로 질책하면서 "교육부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장 차관은 "기능의 이관이나 부처 해체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경제 부처가 돼야 한다는 전날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수요와 흐름에 맞춰 제도를 바꾸고, 인력양성이라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얼마나 필요한지, 어느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 살피라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교육계에서는 개혁 대상이라는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다지만 그동안 교육부가 해 왔던 정책과 엇박자를 내는 정책을 내놓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말이 나온다.
당장 대학가에서는 수도권 대학 위주로 정원 규제 특례를 주면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학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반도체 인력 수급난은 고등교육 정책의 일부에 불과하다"며 "당장 2024년까지 학령인구가 줄어든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시급한 정책이 없고 수도권 분야, 특정 분야에 집중된 정책을 내놓은 철학 없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서울 주요 대학은 학과만 70~80여개가 되기 때문에 수도권 대학도 질 관리가 필요하다"며 "학과 구조조정이 자체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입학정원 총량을 늘려준다면 지방대학만 또 다시 희생양이 되라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김병국 대학노조 정책실장은 "학령인구 감소 문제에 맞춰 대학 정원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라며 "지방대학 위기 문제와 연계해 고등교육 재정을 어떻게 늘릴 것인지 대안을 함께 내놓아야 하는데 이번 대책은 전체적 정책의 골격을 왜곡시키거나 흔들어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시업계에서는 이미 문·이과 통합형 수능으로 점수 따기 유리한 이공계열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반도체 학과 육성에만 몰두하면 인문계열 학과에서 신입생 모집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도 나온다.
종로학원의 분석에 따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인문계열 대부분 학과에서 전년도 입시와 비교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합격선이 하락했다. 백분위 점수가 300점 만점에 31점 떨어진 학과도 나왔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주요 상위 15개 대학은 지금도 문과 선발 정원이 더 많다"며 "정부는 문·이과 통합형 수능으로 정책을 시행하면서 반도체 학과 정원을 증원하면 극단적인 경우 서울 수도권 대학에서까지 부실 학과가 속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보수 교육계에서도 신중한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도체 인재 양성이라는 취지는 이해하더라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재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정책본부장은 "과학 창의 융합 교육, 특히 국가적 산업 역량의 집중이 필요한 분야 등 적재적소에 인재 유입을 위한 고등교육 분야의 혁신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면서도 "관련 부처와 산업계 등의 상시적 소통을 통해 하나하나 대응해나가는 혜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차관은 제도와 시스템을 검토해서 충돌이 없는지 이야기해야 하는데 단박에 이렇게 가야한다고 윽박지르듯이 하는 것도 문제"라며 "기존 법률과 충돌, 과정상 흠결이 적어야 그 취지도 공감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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