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뒤통수에 총알을 날려주마"...327명 중 뽑힌 9명, 감동 사연
국립극단, 일반 관객 모집해 연기영상 촬영
[서울=뉴시스]관객이 연기하는 국립극단 작품 아홉 편 영상. (사진=국립극단 유튜브 영상 캡처) 2022.07.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마케팅 회사 대표인 50대 신혜숙씨는 대학교 1학년 시절 학교 소극장에 연극을 처음 올렸던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그가 지난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라 강렬한 눈빛으로 외쳤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신씨는 "'햄릿 대표'라는 별명이 새로 생겼다"고 웃으며 "제 이름이 붙어있는 대본과 자리, 의상과 분장까지 완벽하게 진짜 배우가 돼 무대에 오르는 경험을 해 너무 행복했다"고 떠올렸다.
"햄릿을 맡았지만 50대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 자신의 내면에 몰입하려 했어요. 나답게 하자고 했죠. 오랫동안 바쁘게 일하고 달려오며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었어요. 살면서 언젠가 다시 한번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한 게 정말 이뤄진 거죠. 대학 시절 무대의 첫 기억을 되살려주면서 나중에라도 또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주변에서도 멋있다고 말해줘서 뿌듯했죠."
"무대 위 내 모습을 꿈꿔본 적 있나요?" 이 물음에 용기 있게 손을 든 관객 9명이 국립극단 무대에 섰다. 고등학생부터 중년까지 나이, 직업은 모두 다르지만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며 한 번쯤 그곳에 서 있는 자신을 꿈꿔본 이들이다.
국립극단이 지난 15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영상이 눈길을 끌고 있다. 관객 9명이 단 하루, 무대 위 배우가 되어 국립극단 작품 9편을 각각 연기하는 영상으로, 이들의 진심 어린 도전에 응원과 박수를 보내는 댓글이 이어졌다.
[서울=뉴시스]관객이 연기하는 국립극단 작품 아홉 편 영상. (사진=국립극단 유튜브 영상 캡처) 2022.07.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누군가에겐 스스로를 위로하는 자리였고, 누군가에겐 꿈을 향해 한 발 내딛는 기회였다. 영상에서 선천적으로 지체장애를 갖고 있다고 밝힌 김수린씨는 연기를 통해 장애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 지원했다고 밝혔다. 남들과 달라 보이지 않으려 늘 애썼던 과거의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씨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무대가 주는 에너지가 생각보다 컸고 와닿았다. 사실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낯설기도 하면서 설렜던 기억이 남아있다"고 돌아봤다.
"이번 기회를 통해 좀 더 당당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저 스스로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고 지레 겁먹고 위축돼있던 게 있었는데 연기를 통해 저를 표현하고 드러내면서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자고 생각했죠." 그는 연극 커뮤니티 스튜디오를 통해 수업을 들으며 연기를 꾸준히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연극 배우의 꿈을 꾸고 있는 19살 고등학생 허인혁군도 "한발짝 더 다가선 느낌"이라고 했다. "꿈을 향한 길이 탁 열린 느낌을 받았다"며 "본래 국립극단 연극을 좋아해서 항상 보고 난 후엔 몇십년이 걸려도 꼭 저기에 서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꿈의 무대였고, 실감이 안 났다. 이를 계기로 저에 대한 확신도 생겼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생기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관객이 연기하는 국립극단 작품 아홉 편 영상. (사진=국립극단 유튜브 영상 캡처) 2022.07.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들은 국립극단이 공연했던 '햄릿',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소년이 그랬다', '한여름 밤의 꿈', '스카팽', '파우스트 엔딩', '시련',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페스트' 중 일부 장면을 각각 연기했다. 15초 내 분량으로, 작품은 국립극단 측이 배정했다. 촬영 전까지 별도의 만남을 갖지 않았고, 각자 연습을 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한 조영채 국립극단 온라인마케팅 담당자는 "이 하루만큼은 배우로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서 사전모임을 하지 않았다. 명동예술극장 출연자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모두 배우로 호칭했고, 연기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 모든 첫 순간을 담아내고 싶었다. 아홉분에게 추억이 되는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연기 경험이 없는 분들이라 걱정도 했지만, 다들 현장에서 연기도 너무 잘하고 열심히 연습하며 재미있게 진행했다. 오히려 저희가 감동을 받았다"며 "SNS를 통해 일주일 정도 모집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셔서 매우 놀랐다. 많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하다. 현재 2편 제작을 계획하고 있진 않지만 문은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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