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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뛰어든 여성과 아동…광복절에 기억해야 할 이름들

등록 2023.08.15 08:00:00수정 2023.08.15 08: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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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감옥 수감된 10대 112명…14.8%에 달해

女, 독립운동·민족교육 헌신·군자금 모금 등 기여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오후 대구 중구 동산동 청라언덕에 설치된 태극기 아래로 한 시민이 걷고 있다. 2023.08.14. lmy@newsis.com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오후 대구 중구 동산동 청라언덕에 설치된 태극기 아래로 한 시민이 걷고 있다. 2023.08.1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권지원 기자 =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의 적극적인 주체였던 여성들과 아동들에 대해 관심이 모인다.  이들은 항일 운동 전개 과정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고 광복군으로 제3지대에서 직접 활동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했다.

15일 아동권리보장원이 발행한 책 '어린이날이 100살이라고?'에 따르면 3·1 운동으로 서대문 감옥에 수감된 사람의 연령대 중 10대는 112명(14.8%)으로 20대와 30대를 이어 3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아동은 독립 운동을 이끄는 주축으로 활동했다. 서대문 형무소에 보존돼 있는 3·1운동 참여자 및 독립운동 수감자 765명 가운데 가장 어린 아동은 만 15세로 무려 6명에 달한다.

김상득 독립운동가는 밀양초등학교 전신인 밀양공립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11년 일왕 히로히토 생일인 '천장절'에 반대해 화장실에 일장기를 버렸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이후 그는 1919년 3월 밀양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을 이끌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독립운동가 한봉삼 역시 밀양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1919년 3월 학생 만세운동을 하다 퇴학 처분을 받은 뒤 밀양지역에서 학생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숭의여학교, 정신·숙명·이화·배화·진명의 학생뿐만 아니라 관립학교인 경성여자고등학교 보통학교 학생들도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백운호 애국지사는 8살이었던 1939년 친구들과 비밀 항일단체인 '독수리소년단'을 결성했다. 이들은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벽보를 붙이고 항일격문을 작성해 전국 각지 우편물을 발송하는 등 독립운동을 벌였다.

청소년들은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기도 했다. 한국남녀소년단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독립청원서인 '한국아동읍혈진정서'를 제출하며 정의와 인도의 실현을 위해 지원해줄 것을 호소했다.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여성들 또한 많았다. 여성 의병운동 참여, 국채보상운동 지원,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조직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로 유명한 조마리아 여사는 본인 스스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조마리아 여사는 임시 정부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창립하고 후원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는 여성 독립운동 단체 중 가장 규모가 컸던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해 항일 여성단체를 이끌었다. 이후 1919년 재일 유학생이 주도한 2·8 독립선언에 참여했다. 대한적십자회 대한지부를 결성하며 임시정부를 위한 군자금을 모금했다.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의 아내인 독립운동가 박차정은 의열단 활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의열단이 난징에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를 설립한 후 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사관 생도의 교육을 맡았다. 또한 민족혁명단의 '남경조선부인회'를 조직해 일본 침략 전쟁 규탄 방송과 기고로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독립운동가 권기옥은 1919년 숭의여학교 재학 당시, 비밀조직인 '송죽회' 가입으로 독립운동에 본격 뛰어들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채를 판매하는 등 군자금을 모금에도 나섰으며 평양청년회 여자전도대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공작을 펼쳤다. 이후 운남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해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복무했다.

독립운동가 안경신은 1920년 8월 3일 배 속에 아이를 품은 채 평양 평남도청에서 폭탄을 투척하는 등 무력투쟁에 앞장섰다. 임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비밀결사 '대한애국부인회' 결성을 주도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조신성은 이화학당 교사로 재직하던 도중 평양 진명여학교 교장으로 취임해 이후 민족 교육에 헌신했다. 또한 대한독립청년단 결성, 여성실업장려회 조직, 조선교육학교 설립에도 기여했다.

독립운동가 오광심은 광복군 제3지대장인 남편 김학규와 함께 제3지대 간부로 활동하면서 광복군 소속으로 항일 활동을 전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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