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의무휴업 폐지에 전통시장 한숨…"뭐 먹고 살라고"
정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추진
영업 제한시간 중 온라인 배송도 허용 방침
"주말에 오던 고객들, 마트로 갈까 봐 걱정"
"계란으로 바위치기…정부가 막아줘야지"
주 고객층 달라 큰 변화 없을 거란 상인들도
"대형마트 살리기가 재래시장 죽이기 안되길"
[서울=뉴시스] 박광온 기자 = 24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2024.01.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광온 기자 = "그나마 주말에 오던 고객들마저 대형마트로 가게 되면 결국 바위에 계란만 깨지는 것 아니겠나.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은 어떻게 먹고살라는 건지…그건 정부에서 막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지난 24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뉴시스가 만난 닭고기 정육점 주인 60대 김모씨는 한숨을 쉬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경동시장에서 30년째 닭고기 등 가금류 정육을 팔고 있다.
김씨는 "여기 사람들 봐라. 죄다 나이 드신 분들이다. 이 근처에 대형마트 2곳이 있는데, 주말에 영업을 안 할 때 그나마 젊은 층인 40~50대 부부와 그 아이들이 여기로 장 보러 온다"며 "그런데 마트가 주말에도 연다고 하면 아무래도 그쪽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나마 마트가 쉬니까 여기에 오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마저 가져가 버리면 우리같은 소상공인들은 어떻게 하겠나. 바위에 계란 깨질까 봐 걱정만 된다"고 전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2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대형마트에 적용하는 공휴일 의무 휴업 규제를 폐지하고, 영업 제한 시간의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자정부터 10시까지 영업을 할 수 없고 월 2회 의무 휴업을 실시하되 공휴일 휴무가 원칙이다. 아울러 해당 시간엔 온라인 배송도 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공휴일에서 평일로 전환하고, 영업 제한 시간 중 온라인 배송도 가능하도록 유통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경동시장에서 어패류를 판매하고 있는 한 상인은 "주말에도 대형마트가 배송이 되면, 사람들이 마트에 가서 편히 장을 보지 굳이 재래시장까지 오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대형마트를 살리겠다고 한 정책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소상공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은 것 아니냐"며 "우리같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줄 수 있도록 우리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동시장을 찾은 시민들도 대형마트 휴일이 평일로 옮겨지게 되면 배송이 가능한 마트를 더 이용할 것 같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이정화(48)씨는 "주말에 대형마트가 문을 안 열면 가족들끼리 경동시장을 자주 찾는 편이다. 그런데 사실 주말에도 마트에서 배송이 되면 마트로 발길이 더 가지 않을까 싶다"며 "그런데 그게 상권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 같은 시민으로서 우려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부 김현숙(47)씨도 "재래시장은 배송이 어려워 차를 끌고 가거나 많이 못 사는 경우가 있는데, 휴일에도 대형마트에서 배송이 되면 마트에 사람들이 더 몰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재래시장과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주 고객층이 달라 제도가 비뀌어도 큰 변화는 없을 거라는 반응들도 있었다.
[서울=뉴시스] 박광온 기자 = 24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2024.01.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경동시장에서 미역 등 해조류 판매하는 한 상인은 "여기엔 나이 많으신 분들이 대부분 오기 때문에, 그분들이 갑자기 대형마트로 가지는 않을 거라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며 "또 어떤 것을 파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특히 우리처럼 해조류는 재래시장이 강점이라고 많이들 생각하니까 큰 타격은 없을 거 같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경동시장으로 장을 보러 온 장은숙(52)씨도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자주 오는 곳에 오지, 마트가 주말에 연다고 해서 여기에 안 오고 그런 건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처럼 견해가 갈리는 사안에 대해 정부가 충분한 사전 논의나 합의 없이 밀어붙여도 되냐는 비판도 나왔다.
경동시장에서 약 20년간 돼지고기 등 육류를 판매해 왔다는 박모씨는 "시장도 시장 나름이고 제도 변화의 영향이 갈 수 있는 품목과 아닌 품목이 있는 건데, 그 부분에 대해 충분히 소통을 하고 지원책을 내놓았어야 한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재래시장을 살리는 길이 뭔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부족했던 거 같아서 좀 아쉽다"며 "대형마트 살리기가 곧 재래시장 죽이기가 되지 않게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경제인협회가 시장조사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유통규제 관련 소비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4%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세부적으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 폐지' 32.2%, '평일 의무휴업 실시 등 규제완화' 33.0%, '의무휴업일 및 심야 영업금지 시간에 온라인 거래 허용' 11.2% 등이다. 현행 의무휴업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23.6% 수준이었다.
이 같은 자료들을 근거로 정부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를 폐지한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이후 전통시장과 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 매출 감소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3일 "700만 소상공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성급한 결정"이라며 소상공인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이 방침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번 조치로 대형마트들이 연간 약 7000억~1조원의 매출 증대 효과가 발생한다는 분석을 예로 들면서 "대기업에 연간 최대 1조원의 매출 상승은 결국 전통시장과 소상공인들의 1조원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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