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차길진 "문선명, 5백년후 세계역사에 이름남긴다"

등록 2012.09.13 13:20:43수정 2016.12.28 01:14:58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전 세계에 300만 신도를 거느린 통일교의 창시자 문선명 총재가 지난 3일 향년 92세의 나이로 성화(聖和; 통일교에서 '서거 또는 타계'를 이르는 표현)했다.   "나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적 인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내 이름자 앞에 수많은 별명을 덧붙이고 거부하고 돌을 던졌습니다"라고 자서전 서문에서 자신의 생애를 회고했던 '문제적 인물' 문선명 총재.  한 시대를 풍미한 거인의 마지막 발자취를 지켜보고자 했던 작은 소망은, 10일 후암미래연구소 차길진 회장의 특별 조문에 동행함으로써 우연치 않게 성사됐다.  이날 경기도 가평 통일교 청평성지 빈소까지의 안내는 류팔규 통일교 아프리카 모리셔스 국가회장이 맡았다. 속칭 통일교 창립 1.5세대인 류팔규 회장은 통일교의 교세가 성세를 크게 구가했던 80년대 초중반 통일재단의 재무부장으로서 재단 내실화에 힘써 노력했던 통일교의 중진 원로.  차길진 회장과 류팔규 회장을 태운 승용차는 서울춘천고속국도를 쏜살같이 달려 정오 무렵 통일교 '청평 성지'로 불리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일대로 들어섰다.  설악 IC 입구에서 부터 '문선명 천지인참부모 천주 성화식'이라 쓰인 현수막이 도로와 건물 곳곳에 걸려 경건한 추모 분위기를 물씬 풍겨 내고 있었다.  잠시 더 달린 일행은 곧장 문선명 총재의 빈소가 마련된 청심평화월드센터(실내 체육관)에 도착했다. 별도로 마련된 주차공간을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9일 하루에만도 2만여명의 참배객을 맞은 청심평화월드센터는 VIP대기실로 향하는 복도 곳곳이 입추의 여지 없는 추모 인파로 가득 찼다.  선 채로 두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리고 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복도 여기 저기 마련된 추모의 벽에는 많은 추모객들이 성화한 문 총재를 기리는 각종 글귀를 적어 넣고 있었다.  류팔규 회장이 우리 일행을 VIP대기실에 마련된 원탁 테이블로 안내하자 곧 도착한 문선명 총재의 사촌 아우인 문용현 고문이 차길진 회장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어서 문선명 총재의 맏사돈과 다섯째 아들의 사돈 부부 등이 일행에 합류하면서 차 회장의 조문 일행은 필자를 포함해 모두 8명이 됐다.  문용현 고문은 통일교단에 현존한 문선명 총재의 유일한 형제 항렬로, 문 총재의 선교 활동 당시 고향 정주에서 문선명 총재의 부친을 친부 이상으로 극진히 봉양한 공이 있어 문선명 총재가 생전에 친형제 이상으로 각별히 아꼈던 통일교단의 핵심인물이다. 현재는 통일재단의 고문으로 이번 문선명 총재의 성화위원회에서도 28인으로 구성된 국내 고문단의 중추를 맡았으며, 지난 6일 진행된 첫 공식 참배에서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 내외, 석준호 통일교 한국회장 내외에 이어 교단 내의 맨 앞 순위에서 조문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문용현 고문은 이날 차길진 회장과 사돈 일행의 조문 안내를 위해 일부러 나와서 맞이한 것인데, 이후 문 고문은 조문절차 내내 우리 일행을 인도하며 차길진 회장과 계속 함께 동행했다.  문용현 고문은 함께 한 일행들을 둘러보며 "여기 계신 차 회장님은 참아버님께서 성화하시는 날짜와 시간까지 거의 정확하게 예견하신 분이다. 예전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도 예언하셨는데 참으로 대단한 영능력을 지니셨다"고 소개했다. 문 고문은 이어서 "이제 참아버님께서 성화하고 안 계시니, 이 자리에 계신 차길진 회장님이 현존한 세계 최고의 영능력자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필자는 문 고문의 말속에 담겨진 의미를 헤아리며 오늘 동행한 자리가 단순한 조문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 행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들기 시작했다.   VIP대기실에서부터 동행하게 된 일행들은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뷔페식으로 차려진 점심 식사를 간단히 함께 했다. 우리 일행과 특히 차 회장을 알아 본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 와 인사를 건네고 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회장님, 평소에 그렇게 만나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만나보기가 힘드나' '어렵게 만난 자리인데 덕담 한마디 해달라' '지금 진행되는 일의 향배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등 평소 궁금했던 점이나 만나기 어려운 답답함들을 풀어놓고 있었다.  일행은 잠시 후 문용현 고문의 안내를 받아 청심평화월드센터 내에 마련된 빈소로 향했다. 동행한 일행들과 특히 차 회장의 당일 일정을 감안해 빈소 입구 옆에 있는 별도의 통로를 거쳐 빈소가 마련된 1층 강당으로 바로 입장했다.  꽃으로 장식된 터널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니 문 총재의 영정이 놓인 조문을 위한 강단 앞에서 헌화를 하는 선객들이 보였다. 강단 위에는 문 총재의 대형 초상화를 중심으로 양옆에 조화가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어, 생전 문 총재의 모습과 묘한 오버랩을 일으키며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운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 일행은 장미, 백합을 하나씩 받아 들고 강단 앞으로 나가 영정 앞에 횡대로 서서 헌화를 한 후 반절을 마쳤다.  이어 옆으로 돌아서서 참배객을 맞이하는 유족들과 정동석, 김윤상 장의위원 등 교단 주요 인사들에게 맞절을 한 후 다른 이들의 불편을 덜어드리도록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체육관 정문을 나서자 문 총재의 성체를 모신 천정궁으로 향하는 VIP용 셔틀버스가 이미 도착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셔틀버스에 탑승해 1.5㎞가량 산길을 거슬러 오르니 천정궁이 나타났다. 생전에 문선명 총재가 기거하던 곳으로, 통일교 기념박물관이기도 하다. 교조의 성화 소식을 접하고 마지막으로 성체를 친견하겠다는 열망과 기대감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통일교 성도들의 모습이 셔틀버스 좌우 창으로 경건하게 비쳐졌다.  문 총재의 성체를 친견하고자 천정궁으로 오르는 일반 성도들을 위해 한학자 총재는 9일부터 셔틀버스를 운행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11대가 운영할 수 있는 한계이고 허용가능한 성체 친견 인원도 하루 참배객의 10%에 불과한 2000명으로 제한되고 있다고 한다. 비록 몸이 고단하더라도 친견에 대한 열망이 더욱 고조될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이 불현듯 느껴져 안쓰스럽기도 하고 성스럽게도 비치는 성도들의 행렬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곧 바로 천정궁으로 들어섰다.  천정궁에서는 참배객들의 사진 촬영을 일체 불허하고 있어 엄격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면서 휴대폰 카메라는 종이테이프로 붙이고, 휴대한 카메라는 모두 검색대에 맡기고 들어가야만 했다.  일행은 1층의 VIP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바로 성체가 모셔진 3층 친견실로 올라갔다.  친견실은 본래 매일 아침 5시에 문 총재를 모시고 경전을 훈독하던 장소여서 평소에도 신발을 벗고 들어 갔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모두 신발을 벗고 실내로 들어가 문 총재의 성체 앞에 섰다. 문 총재는 주변이 각종 꽃으로 장식된 유리관 속에 화려한 예복을 입은 채 무심한 듯 누워 있었다.  그 강건하고 카랑카랑한 쇳소리를 울려 내던 시대의 거인이 차가운 성체로 잠자듯 누워있는 모습은 어쩔수 없는 비현실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했다. 문 총재 생전에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김효율 특별보좌관의 인도로 우리 일행은 문 총재의 마지막 가는 길에 모두 큰절을 올렸다.   이어 김부태 총재 경호실장의 인도로 좌측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족들에게 반절로 맞절을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을 맡고 있는 둘째며느리 문훈숙 단장을 비롯한 며느리들과 딸 등 주로 여성 유가족들이 성체 친견실에서 참배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차길진 회장은 유족들에게 "마지막으로 문 총재님 얼굴을 대하니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며 "문선명 총재님은 500년 후 세계인의 역사책에 크게 이름을 남길 두 분의 한국인 위인 중 한 분"이라며 유가족과 교단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천정궁을 나온 일행은 청심평화월드센터에 마련된 VIP대기실로 돌아와 고인의 영상을 함께 보며 생전의 행적에 대한 덕담을 나눴고, 마침 대기실을 방문한 한국문화재단 박보희 총재를 만나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일행 중 누군가가 차길진 회장에게 '무척 힘들어 보인다'고 염려의 말을 건넸다. 평소 차 회장은 며칠 밤을 새도 아무렇지도 않아 할 정도의 강건한 체력을 자랑한다고 한다. 한데, 문 총재의 빈소와 영체를 접하고 VIP대기실로 돌아온 차 회장은 눈에 띄게 안색이 창백하고 지쳐 보였다. 다른 일행이 '차 회장 같은 분은 이런 특별한 자리에서 특히 영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며 동의를 구하듯 차 회장을 바라봤다. 차 회장은 아무런 대답 없이 가볍게 미소만 지었다. 문 고문이 처음 안내를 맡으며 말했던 '현존 세계 최고의 영능력자'라는 말이 귓가에 울림처럼 계속 맴돌았다.  차길진 회장은 교조의 성화를 맞아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동행하며 편의를 살펴 준 문용현 재단 고문과 류팔규 회장에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이날의 조문 일정을 모두 마무리 했다.  한편, 차길진 회장은 최근 칼럼 '차길진의 나를 찾아서'에서 '변하지 않으면 변해야 한다. 변하려면 죽어야 한다. 내 안의 내가 죽어야 새싹이 돋는다'는 귀절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삶의 무기력을 깨뜨리는 죽음의 새로운 해석을 전한 바 있다.  후아이엠 https://www.whoim.kr   

【서울=뉴시스】전 세계에 300만 신도를 거느린 통일교의 창시자 문선명 총재가 지난 3일 향년 92세의 나이로 성화(聖和; 통일교에서 '서거 또는 타계'를 이르는 표현)했다.  

 "나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적 인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내 이름자 앞에 수많은 별명을 덧붙이고 거부하고 돌을 던졌습니다"라고 자서전 서문에서 자신의 생애를 회고했던 '문제적 인물' 문선명 총재.  

 한 시대를 풍미한 거인의 마지막 발자취를 지켜보고자 했던 작은 소망은, 10일 후암미래연구소 차길진 회장의 특별 조문에 동행함으로써 우연치 않게 성사됐다.  

 이날 경기도 가평 통일교 청평성지 빈소까지의 안내는 류팔규 통일교 아프리카 모리셔스 국가회장이 맡았다. 속칭 통일교 창립 1.5세대인 류팔규 회장은 통일교의 교세가 성세를 크게 구가했던 80년대 초중반 통일재단의 재무부장으로서 재단 내실화에 힘써 노력했던 통일교의 중진 원로.  

 차길진 회장과 류팔규 회장을 태운 승용차는 서울춘천고속국도를 쏜살같이 달려 정오 무렵 통일교 '청평 성지'로 불리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일대로 들어섰다.  

 설악 IC 입구에서 부터 '문선명 천지인참부모 천주 성화식'이라 쓰인 현수막이 도로와 건물 곳곳에 걸려 경건한 추모 분위기를 물씬 풍겨 내고 있었다.  

 잠시 더 달린 일행은 곧장 문선명 총재의 빈소가 마련된 청심평화월드센터(실내 체육관)에 도착했다. 별도로 마련된 주차공간을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9일 하루에만도 2만여명의 참배객을 맞은 청심평화월드센터는 VIP대기실로 향하는 복도 곳곳이 입추의 여지 없는 추모 인파로 가득 찼다.  

 선 채로 두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리고 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복도 여기 저기 마련된 추모의 벽에는 많은 추모객들이 성화한 문 총재를 기리는 각종 글귀를 적어 넣고 있었다.  

 류팔규 회장이 우리 일행을 VIP대기실에 마련된 원탁 테이블로 안내하자 곧 도착한 문선명 총재의 사촌 아우인 문용현 고문이 차길진 회장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어서 문선명 총재의 맏사돈과 다섯째 아들의 사돈 부부 등이 일행에 합류하면서 차 회장의 조문 일행은 필자를 포함해 모두 8명이 됐다.  

 문용현 고문은 통일교단에 현존한 문선명 총재의 유일한 형제 항렬로, 문 총재의 선교 활동 당시 고향 정주에서 문선명 총재의 부친을 친부 이상으로 극진히 봉양한 공이 있어 문선명 총재가 생전에 친형제 이상으로 각별히 아꼈던 통일교단의 핵심인물이다. 현재는 통일재단의 고문으로 이번 문선명 총재의 성화위원회에서도 28인으로 구성된 국내 고문단의 중추를 맡았으며, 지난 6일 진행된 첫 공식 참배에서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 내외, 석준호 통일교 한국회장 내외에 이어 교단 내의 맨 앞 순위에서 조문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문용현 고문은 이날 차길진 회장과 사돈 일행의 조문 안내를 위해 일부러 나와서 맞이한 것인데, 이후 문 고문은 조문절차 내내 우리 일행을 인도하며 차길진 회장과 계속 함께 동행했다.  

 문용현 고문은 함께 한 일행들을 둘러보며 "여기 계신 차 회장님은 참아버님께서 성화하시는 날짜와 시간까지 거의 정확하게 예견하신 분이다. 예전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도 예언하셨는데 참으로 대단한 영능력을 지니셨다"고 소개했다. 문 고문은 이어서 "이제 참아버님께서 성화하고 안 계시니, 이 자리에 계신 차길진 회장님이 현존한 세계 최고의 영능력자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필자는 문 고문의 말속에 담겨진 의미를 헤아리며 오늘 동행한 자리가 단순한 조문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 행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들기 시작했다.  

 VIP대기실에서부터 동행하게 된 일행들은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뷔페식으로 차려진 점심 식사를 간단히 함께 했다. 우리 일행과 특히 차 회장을 알아 본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 와 인사를 건네고 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회장님, 평소에 그렇게 만나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만나보기가 힘드나' '어렵게 만난 자리인데 덕담 한마디 해달라' '지금 진행되는 일의 향배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등 평소 궁금했던 점이나 만나기 어려운 답답함들을 풀어놓고 있었다.  

 일행은 잠시 후 문용현 고문의 안내를 받아 청심평화월드센터 내에 마련된 빈소로 향했다. 동행한 일행들과 특히 차 회장의 당일 일정을 감안해 빈소 입구 옆에 있는 별도의 통로를 거쳐 빈소가 마련된 1층 강당으로 바로 입장했다.  

 꽃으로 장식된 터널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니 문 총재의 영정이 놓인 조문을 위한 강단 앞에서 헌화를 하는 선객들이 보였다. 강단 위에는 문 총재의 대형 초상화를 중심으로 양옆에 조화가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어, 생전 문 총재의 모습과 묘한 오버랩을 일으키며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운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 일행은 장미, 백합을 하나씩 받아 들고 강단 앞으로 나가 영정 앞에 횡대로 서서 헌화를 한 후 반절을 마쳤다.  

【서울=뉴시스】진현철 기자 = “국호와 태극기 등으로만 보면 대한민국이 대한제국을 계승한 것 같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 어디에도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 차길진(63) 대표가 지난달 25일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찾는 구명시식 ‘아듀 대한제국’을 출범했다.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 의식은 고종황제, 명성황후, 순종황제, 의친왕, 의친왕비, 덕혜옹주, 순정효황후, 의민황태자, 의민황태자비, 이우공, 이우공 비, 박승환, 이준, 최익현, 민영환, 허위, 이강년, 신돌석 등 18인을 위한 구명시식이다.  구명시식은 불교식 초혼의례다. 망자의 혼과 소통하는 ‘생명 컨설턴트’, ‘영혼 전도사’로 유명한 인물이 차 대표다. 이번 구명시식은 지난해 7월 고조선 단군, 고구려 주몽 등 국조 13인의 국혼을 위해 100일간 올린 구명시식의 속편 격이다.  그에게 ‘아듀 대한제국’은 간도 되찾기 운동의 하나다. “대한제국이라는 과거를 수용한다는 것이 영토 분쟁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작년 구명시식 기간 동안 간도협약 무효 소송과 관련한 서류를 준비하면서 우리가 대한제국의 계승자라는 사실이 헌법 어디에도 명시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소송이 본격화 된다면 법적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간도협약 관련 주체는 대한제국인데, 대한민국 헌법은 그 정통성을 명시하지 않는 등 대한제국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암미래연구소는 지난해 네덜란드의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간도협약 무효 소송서류를 냈으나 소는 진행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제국의 정통성 기록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차 대표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고종과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간 악연 탓이라고 짚는다. 실제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체류하다 8·15 광복 후 귀국하려던 고종의 일곱째 아들 영친왕을 이승만이 배척했고, 이전에 이승만은 1898년 정부 전복을 획책했다는 혐의로 독립협회 간부들과 함께 투옥돼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고초를 겪었다.  차 대표는 “대한제국 황실 사람들도 시대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황실 재산을 새로운 해방정부에게 약탈당하다시피 했다. 이제 과거와 해원(解冤) 할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훗날 남북통일이 이뤄졌을 때 우리나라에게 중요한 권리가 될 것이 바로 해원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청나라는 19세기 말부터 간도를 자국 영토라 주장하며 조선과 다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제가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뒤 남만주 철도부설권과 푸순 탄광채굴권 등을 얻는 대가로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도록 한 것이 간도협약이다.  차 대표는 “구명시식을 하다보면 많은 독립투사들이 대한제국의 회복을 위해 싸웠다고 호소한다”면서 “당시 독립지사들은 대한민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제국을 위한 독립운동을 했다”고 전했다. 대한제국 구명시식 18인에 이강년, 신돌석 등 항일 의병장과 독립운동을 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처음으로 순국한 의병 허위가 포함된 이유다.  그가 서울 대학로 스타시티에서 집전 중인 ‘아듀 대한제국’은 3·1 운동 무렵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용 접이식 태극기, 고종황제·영천왕 등의 미공개 사진들도 선보이고 있다./agacul@newsis.com 사진=김종현 기자 kim-jh@newsis.com

 이어 옆으로 돌아서서 참배객을 맞이하는 유족들과 정동석, 김윤상 장의위원 등 교단 주요 인사들에게 맞절을 한 후 다른 이들의 불편을 덜어드리도록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체육관 정문을 나서자 문 총재의 성체를 모신 천정궁으로 향하는 VIP용 셔틀버스가 이미 도착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셔틀버스에 탑승해 1.5㎞가량 산길을 거슬러 오르니 천정궁이 나타났다. 생전에 문선명 총재가 기거하던 곳으로, 통일교 기념박물관이기도 하다. 교조의 성화 소식을 접하고 마지막으로 성체를 친견하겠다는 열망과 기대감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통일교 성도들의 모습이 셔틀버스 좌우 창으로 경건하게 비쳐졌다.  

 문 총재의 성체를 친견하고자 천정궁으로 오르는 일반 성도들을 위해 한학자 총재는 9일부터 셔틀버스를 운행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11대가 운영할 수 있는 한계이고 허용가능한 성체 친견 인원도 하루 참배객의 10%에 불과한 2000명으로 제한되고 있다고 한다. 비록 몸이 고단하더라도 친견에 대한 열망이 더욱 고조될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이 불현듯 느껴져 안쓰스럽기도 하고 성스럽게도 비치는 성도들의 행렬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곧 바로 천정궁으로 들어섰다.  

 천정궁에서는 참배객들의 사진 촬영을 일체 불허하고 있어 엄격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면서 휴대폰 카메라는 종이테이프로 붙이고, 휴대한 카메라는 모두 검색대에 맡기고 들어가야만 했다.  

 일행은 1층의 VIP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바로 성체가 모셔진 3층 친견실로 올라갔다.  

 친견실은 본래 매일 아침 5시에 문 총재를 모시고 경전을 훈독하던 장소여서 평소에도 신발을 벗고 들어 갔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모두 신발을 벗고 실내로 들어가 문 총재의 성체 앞에 섰다. 문 총재는 주변이 각종 꽃으로 장식된 유리관 속에 화려한 예복을 입은 채 무심한 듯 누워 있었다.  

 그 강건하고 카랑카랑한 쇳소리를 울려 내던 시대의 거인이 차가운 성체로 잠자듯 누워있는 모습은 어쩔수 없는 비현실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했다. 문 총재 생전에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김효율 특별보좌관의 인도로 우리 일행은 문 총재의 마지막 가는 길에 모두 큰절을 올렸다.  

 이어 김부태 총재 경호실장의 인도로 좌측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족들에게 반절로 맞절을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을 맡고 있는 둘째며느리 문훈숙 단장을 비롯한 며느리들과 딸 등 주로 여성 유가족들이 성체 친견실에서 참배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차길진 회장은 유족들에게 "마지막으로 문 총재님 얼굴을 대하니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며 "문선명 총재님은 500년 후 세계인의 역사책에 크게 이름을 남길 두 분의 한국인 위인 중 한 분"이라며 유가족과 교단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천정궁을 나온 일행은 청심평화월드센터에 마련된 VIP대기실로 돌아와 고인의 영상을 함께 보며 생전의 행적에 대한 덕담을 나눴고, 마침 대기실을 방문한 한국문화재단 박보희 총재를 만나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일행 중 누군가가 차길진 회장에게 '무척 힘들어 보인다'고 염려의 말을 건넸다. 평소 차 회장은 며칠 밤을 새도 아무렇지도 않아 할 정도의 강건한 체력을 자랑한다고 한다. 한데, 문 총재의 빈소와 영체를 접하고 VIP대기실로 돌아온 차 회장은 눈에 띄게 안색이 창백하고 지쳐 보였다. 다른 일행이 '차 회장 같은 분은 이런 특별한 자리에서 특히 영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며 동의를 구하듯 차 회장을 바라봤다. 차 회장은 아무런 대답 없이 가볍게 미소만 지었다. 문 고문이 처음 안내를 맡으며 말했던 '현존 세계 최고의 영능력자'라는 말이 귓가에 울림처럼 계속 맴돌았다.  

 차길진 회장은 교조의 성화를 맞아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동행하며 편의를 살펴 준 문용현 재단 고문과 류팔규 회장에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이날의 조문 일정을 모두 마무리 했다.  

 한편, 차길진 회장은 최근 칼럼 '차길진의 나를 찾아서'에서 '변하지 않으면 변해야 한다. 변하려면 죽어야 한다. 내 안의 내가 죽어야 새싹이 돋는다'는 귀절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삶의 무기력을 깨뜨리는 죽음의 새로운 해석을 전한 바 있다.  

 후아이엠 www.whoim.kr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