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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문학의 위기, 만화·영화는 멀쩡하건만···

등록 2018.10.18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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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문학의 위기, 만화·영화는 멀쩡하건만···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한국 문학의 위기', 언제부터인가 아주 쉽게 듣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최근 상황만 봐도 그렇다.

주요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10위권에 자리한 한국 소설은 없다. 가볍게 읽기 쉬운 비소설, 유명작가의 외국소설 등에 밀렸다.

문학 시장의 구원투수와도 같던 대형 작가들의 소설도 맥을 못 추고 있다. 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그 틈을 채우면서 한국 문학계의 침체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문학의 위기는 전통적 미디어의 쇠락과 맞닿아 있다. 20세기를 전후해 신문은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였고, 문학은 신문의 좋은 콘텐츠였다. 하지만 뉴미디어의 등장과 동시에 영상문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생존을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글자를 읽어야 하는 독서보다는 편하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영상을 선호하는 남녀가 많아졌다. 순수문학보다는 가벼운 비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불구하고 문학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바뀐 미디어 환경에 최적화한 콘텐츠로 변화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전무했다. 반면, 영화와 만화 시장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합한 변화를 추구, 붕괴되지 않았다. 만화는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인기 있는 스토리텔링 장르로 자리 잡았다. 영화는 '1000만 관객'을 거듭하며 여전한 대중의 사랑을 누리고 있다.

문학이 여느 장르와 뚜렷하게 차별되는 지점도 희미해졌다. 소설만 해도 서사는 에세이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다. 국가나 사회 같은 거창한 담론으로 담아내자는 것은 아니지만 사적인 일, 개인의 독백이 주를 이룬다. '시대의 이야기꾼'이라고 부를 만한 신인 소설가도 없다시피 하다.

'전업' 시인이나 소설가라는 명함을 파는 것은, 과장하자면 판타지다. '등단'이라는 지난한 관문을 뚫어야 하는 탓 혹은 덕이다. 신춘문예나 대형출판사 문예지 등의 루트를 거쳐 '작가' 타이틀을 얻었어도 끝은 아니다. 등단해봤자 작가 포지셔닝은 저 멀리 있으니 복수 등단을 시도하는 케이스가 흔해졌다. 또 다른 공모전을 통해 작가 이력을 업그레이드하려 든다.

등단 연령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대 초중반의 신춘문예 당선자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문학 교육마저 위기다. 10대 학생에게 문학은 감상과 향유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암기 과목일 따름이다. 문학 특기생을 지망하는 수험생도 '스펙' 쌓기에만 몰두한다. 수상 후 대학진학, 이것이 사실상 전부다.

작가가 되련다며 문예창작과로 들어간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학교는 순수문학에 비중을 두고 가르치지 않는다. 방송·영화 등 각급 미디어 콘텐츠 제작에 초점을 맞춘 교육을 받고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문학을 배우고 취업 전쟁을 치르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문학에 애정을 품는다? 기대난망이다.

등단 작가들이 마주한 현실 또한 녹록지 않다. 노후 대책은 사치다. 열악한 환경에서 창작 활동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양질의 작품을 써낸다면 인류의 문학사에 이름을 남기리라.

 소설이나 시가 잘 팔리지 않는다고 위기를 들먹이는 것이 아니다. 작가들의 창작 의욕이 꺾이면서 독자들도 덩달아 문학을 외면하는 것, 문학의 생명력이 다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 희로애락을 언어로 빚어낸 예술로 문학은 다시 돌아가야할 것이다. 등단 작가들이 창작의 희열을 맛 볼 각종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한국 문학은, 이렇게 벼랑 끝으로 몰려있다. 

 문화스포츠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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