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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불신만 키운 정부의 '北해킹' 해명

등록 2018.11.24 1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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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2014년 소니 영화사 해킹 사건, 2017년 랜섬웨어 '워너크라이' 공격 사건에서 빠지지 않는 존재는 '북한'이다. 미 행정부는 북한 국적 해커 박진혁을 기소했으나, 아무도 이 사건을 개인의 소행으로 여기지 않는다. 국가정보원 또한 북한이 외화벌이와 정보 획득을 위해 여전히 해킹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22일 북한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정부 부처 등을 대상으로 해킹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언론을 통해 제기됐다. 청와대는 곧바로 대변인을 통해 "평양 정상회담을 전후로 해서 북을 포함한 어떤 사이버 위협의 변화도 없었다. 국가 사이버 유의 경보는 올해 3월20일 18시 이후에 정상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구체적인 내용은 국방부에서 설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방부가 이어받았다. 국방부 대변인은 같은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으로 추정되는 공격은 4월 이전에 4건이 식별됐지만, 4월 이후에는 식별되지 않고 있다"고 확인했다. 통일부도 힘을 보탰다. 통일부 당국자는 2014년부터 올해 8월까지 집계된 자료라고 밝히며 사이버 공격을 시도한 47개국 중에 북한은 없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의 해킹 시도가 가장 많았으며, 중국과 미국에서의 해킹 시도가 뒤를 이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관련성이 파악된 거는 없다"고 덧붙였다.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한 사이버 공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에도 해킹이 시도된 지역만을 언급하며 '북한'의 존재감을 약화시켜준 셈이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북한의 존재감은 다시 부각됐다. 서훈 국정원장은 같은날 오후 비공개로 열린 국회 정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은) 우리나라를 상대로 하든, 국제적으로 하든 하고 있다"고 확인했다고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이 전했다. 앞서 오전에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부처가 해킹 의혹 보도의 파장을 줄이기 위해 했던 노력은 무색해졌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남북·북미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완화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교착을 거듭하고 있고, 남북 간 협력 사업 계획표는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모든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긴 하다. 그렇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나아질 건 없다.

한반도 정세를 다루는 정부 부처의 관계자들은 가끔 "아직은 북한 인권문제까지 다룰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비핵화 협상도 진전이 쉽지 않은데 굳이 북한이 반감을 품은 인권 문제까지 다루다가 판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권 문제를 당장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게 '아킬레스건'이라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언젠가는 다룰 수 있을 거라고 말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북한이 해킹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감춘다고 남북 관계가 더 긴밀해지고 비핵화 협상이 더 속도를 내게 될까. 국제무대에서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지 않는다고 민족의 정을 더 크게 느끼게 될까.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워 또 다른 남남갈등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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