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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호이랑, 발레대중화 기여하는 동화같은 작품"

등록 2019.05.18 13: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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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서재형·강효형

여수 예울마루 대극장서 초연

강수진 단장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 ⓒ국립발레단

【여수=뉴시스】이재훈 기자 = "(기술적인) 스텝만으로 이뤄진 것이 발레가 아니에요. 서 있기만 해도 어떤 이야기가 전달이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술은 없죠."

17, 18일 전남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대극장에서 국립발레단 신작 드라마 발레 '호이 랑'이 베잇을 벗었다.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겸 안무가 강효형(31)의 '허난설헌-수월경화'에 이은 두 번째 전막 발레이자, 한아름(42) 작가·서재형(49) 연출 부부 콤비가 함께 하는 이 작품은 진취적인 여성의 성장 드라마다. 무엇보다 대중적인 '드라마 발레의 정경'이 무엇인지를 부담 없이 보여준다.

공연 전 여수에서 만난 강수진(52)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동화책의 첫 페이지를 넘긴 뒤 '또르르' 보게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의 발레"라면서 "대중화에 기여하는 측면에서,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 탄생했다"고 봤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으로 알려진 중국 여전사 화목란 같은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작가가 조선시대 홀아비와 살던 효녀로, 늙은 아버지를 대신해 군역을 맡는 '부랑'의 이야기를 발레 작품으로 옮겨냈다.

한국적인 이야기지만 굳이 외형적으로 한국적인 것을 적극 내세우지 않는다. 의상은 아시아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브람스, 홀스트, 차이콥스키 등 과감히 클래식 음악을 사용한 것이 보기다. 강효형이 직접 골랐다. 강 단장은 그녀의 선택이 "용감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번 여수 초연에서는 무대를 확장, 80인으로 구성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무대 앞 전진 배치해 음악이 입체적으로 들렸던 것도 특기할 만했다. 이런 점들은 세계에서도 통할 '한국적 발레'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강효형은 "클래식 음악을 선곡함으로써 한국적인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우리의 특유의 호흡을 접목시키려고 노력을 했다"면서 "무브먼트가 동양적인 것에 치우치면 스토리가 사라질 수 있어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강 단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발레단의 사명은 좋은 작품으로 한국 안에서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을 하는 것"이라면서 "이제는 글로벌 시대인데 한국은 어떤 분야에서든 '퍼스트 클래스'에요. 발레에서도 그런 발전 과정을 보여드리고 싶어요"라고 했다.

강효형 안무가, 강수진 단장, 서재형 연출. ⓒ국립발레단

강효형 안무가, 강수진 단장, 서재형 연출. ⓒ국립발레단

그러면서 '한국적 발레'가 '한복을 입고 하는 발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계적인 명문인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활약한 강 단장은 "발레 자체는 서양의 것이죠. 하지만 '호이랑'처럼 한국적인 미와 소재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가 한국적 발레가 될 수 있어요"라고 했다. "여성이 여리면서도 강인한데, 이것은 굉장히 한국 '여성의 미'에요. 효심을 다룬 측면도 한국의 특별함이죠."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같은 클래식 발레도 당연히 잊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것을 기본으로 '호이랑' 같은 '스토리 발레'를 더하면 작품이 풍성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립발레단이기에 여러 작품을 보여 드리면서 다양한 관객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해야죠.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재미있는 작품이 탄생했으니, 마음껏 즐겨주시기를 바라요."

이번 작품의 또 다른 공로자는 서 연출이다. 연극과 뮤지컬은 물론 오페라·창극 그리고 '고려되지 않은' '브라보 지젤' 같은무용까지 섭렵한 그에 대해 강 단장은 "발레를 잘 알고 이해를 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직전 연출작이 발레가 소재인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뮤지컬) '나빌레라'였던 서 연출은 "발레는 어려운 클래식"이라고 했다. "'나빌레라'를 하면서 발레가 몇개월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았어요. 뮤지컬이라도 최소한 5~10년을 배워야 무대에 설 수 있는 대단히 어려운 장르죠. 그러니 막내라도 숙련도가 최소 20년인 국립발레단하고 작업하면서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매일 연습 전 ‘클래스’를 통해 1~2시간전부터 몸을 푸는 등 준비하는 모습늘 보면서, ‘클래식의 감동’을 느꼈죠."

예전에 강렬한 카리스마를 뽐냈으나 최근 들어 선해진 인상으로 자주 웃는 서 연출은 "발레는 특히 고개를 숙여야 하는 장르"라며 즐거워했다. "20, 30년을 숙련해온 무용수들의 공연은 단지 발레 드라마를 보는것뿐 아니라 인생과 철학이 묻어 전달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호이랑, 발레대중화 기여하는 동화같은 작품"

발레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양으로 대본이 7개가량 나왔는데, 1개도 '1-7' '7-3' 식으로 나눠지는 등 버전이 여러 가지라고 했다. 그 만큼 드라마적으로 고민이 많았다는 얘기다.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이 길었어요. 작년부터 묵혀온 작품인데, 오래 노력한 만큼 편하고 쉽게 보실 수 있죠. 다이어트를 많이 해서 축약 또 축약하기도 했죠."

'호이 랑'이라는 공연 제목에도 많은 고민이 묻어나 있다. 서 연출에 따르면 독일어권에서 '호이(hoi)'는 '안녕'이라는 뜻과 함께 '아자' 등 긍정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했다. 서 연출은 "긍정적인 기운을 전달할 수 있는 압축성을 갖고 있어 지은 제목"이라고 했다.

'호이랑'의 또 다른 특기할 만한 것은 세계화와 동시에 지역을 위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호이랑'은 여수 초연에 이어 31일부터 6월1일까지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을 거쳐 11월에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공연한다.

강 단장은 "발레가 많이 대중화해서 돼서 지역에도 발레를 보고 싶어하는 분이 많다"면서 "이번에 일정이 잘 맞아서 여수에서 초연을 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무엇보다 매년 12월이면 무대에 올라 매진행력을 기록하는 가족 발레 '호두까기 인형'처럼 가정의달인 5월마다 '호이랑'을 공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어느 발레단도 없는 작품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해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작품을 갖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죠. ‘호이랑’은 한순간도, 심심하다는 느낌이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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