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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반값아파트' 기대감속 재건축조합의 한숨

등록 2019.08.20 17: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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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반값아파트' 기대감속 재건축조합의 한숨

【서울=뉴시스】김가윤 기자 = "수십년 기다린 조합원 몫을 수분양자에게 나눠주겠다는건데 그 사람들이 현금부자라면 무슨 소용입니까."

10년 넘게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는 한 조합원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자 재건축단지 조합은 들끓었다.

혹자는 조합 반발을 '무한 이기주의'로 치부하지만 현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정책효과로 청약예정자들의 꿈인 '반값 아파트'가 설령 실현되더라도 조합은 정부의 주장에 불만이 가득하다.

정부는 최근 강남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서울 집값이 들썩이자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도입'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출규제 강화, 공시가격 현실화, 양도세·종합부동산세 인상 등 총력전을 펼쳤지만 다시 달아오른 시장을 잡기 위해 강수를 둔 것이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는 지난 2007년 참여정부시절 도입됐지만 요건이 까다로워 사실상 폐지됐다가 적용기준을 개선해 실제 작동에 들어가게 됐다.

공공택지와 달리 민간택지는 재건축단지 조합의 '재산권'이 걸려있어 분양가상한제 시행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하다. 참여정부하에서도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는 마지막 보루였다.

정부는 조합 반발이 예상되자 "예상 분양가격·사업가치는 법률상 보호되는 확정된 재산권이 아닌 기대이익에 불과하다"며 "국민의 주거 안정이라는 공익이 조합원 기대이익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조합 반발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다. 분양가상한제를 통해 기대되는 '싼값 아파트 공급'이 과연 공익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될 경우 '로또 분양'에 대한 우려가 큰게 사실이다. 분양가가 저렴해지는 만큼 수분양자는 저렴한 분양가를 통해 향후 큰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즉 지금껏 건설사나 조합원이 취한 이득이 수분양자에게 일부 돌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아파트를 싸게 분양한다해도 서울 청약시장엔 실수요자가 쉽게 진입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분양평가 애플리케이션 리얼하우스에 따르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강화된 고분양가 심사기준에 따라 잠실진주아파트가 올해 분양된다면 3.3㎡당 2995만원선에 적정 분양가가 책정될 전망이다.

인근에 위치한 잠실리센츠에 비해선 반값이지만 중소형인 전용면적 85㎡만해도 7억5000만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비슷한 선에서 가격 책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치솟은 서울 집값은 반으로 나눠도 서민들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다.

9.13 대책으로 강화된 대출규제가 겹치면 서울, 특히 강남에 진입할 수 있는 실수요자들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결국 조합원에게 돌아가던 몫을 현금이 풍부한 수요자에게 나누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조합원들은 하나같이 이번 정부 조치를 두고 '재산권 침해'라고 입을 모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해달라는 조합원의 청원이 쇄도하고 있다.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분양가가 아무리 싸다고 해도 서울 청약시장에는 어느 정도 돈 있는 사람들이 진입할 것"이라며 "우리는 10년 넘게 여기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은 시세차익을 바라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이니 우리가 더 억울한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물론 정부는 최대 10년까지 전매를 제한해 투기수요 진입을 제한할 계획이다. 정부가 기대하는 바는 오랜기간 분양가를 통제함으로써 주변 집값까지 조정해 향후 기대될 시세차익을 줄이자는 취지다.

그러나 분양가 통제가 집값을 끌어내릴지는 확실치 않다는 함정이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공급 부족으로 인해 전매제한이 풀리는 동시에 집값이 치솟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분양자가 얻을 시세차익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수도권 30만호 공급 계획'이 성공해 공급이 늘어난다면 서울 집값이 합리적인 수준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반값 아파트'라는 단어는 실수요자들의 이목을 끌기에도 충분하다. 그러나 조합원 재산권 침해, 향후 집값 상승 가능성 등을 외면하고 추진하기엔 위험 부담이 없지 않다.

이미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은 예고된 상황이지만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0월전까지 세부 사항을 가다듬을 시간이 있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하게 살펴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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