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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대통령 말 한마디에 흔들…참을 수 없는 대입정책의 가벼움

등록 2019.09.02 18: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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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세종=뉴시스】이연희 기자 =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뀐다는 지적이 있다…교육과 관련해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치적 논리가 아닌 미래지향적 교육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중략)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를 통해 교육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 7월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10년 이상 중장기적 교육정책을 논의할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법 통과를 요구하며 이 같이 말했다.

그러나 유 부총리의 소신은 대통령 말 한마디에 무너졌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대입특혜 논란이 터진 지난달부터 줄곧 "2022년까지 기다려 달라"며 묵묵부답 하던 교육부는 지난 1일 "대학 입시 제도를 재검토하라"는 문재인 대통령 한 마디에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리고선 대통령의 '진의'가 정시 확대인지,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공정성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에 나섰다. 널뛴 대형 사교육 업체의 주가와 함께 말이다.

이미 지난 박근혜 정부 때부터 국정농단 최순실씨의 자녀 정유라씨 이화여대 부정입학, 숙명여고 교무부장의 시험지 유출, 올해 'SKY캐슬' 드라마와 최근 조 후보자 자녀 논란까지 일면서 수시 축소 및 정시 확대 요구는 계속 커져왔다. 그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이상론에 치우치지 말고 현실에 기초해서 실행 가능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발언은 기름을 붙인 격이 됐다.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교육정책을 언급할 수는 있다.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존중하는 대신 결국 당장 여론을 의식해 '립(lip) 서비스'한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대입은 누구도 만족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시장 억제, 대학 자율성, 계층 사다리 역할까지 다양한 가치가 혼합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2022학년도 대입개편 공론화 과정에서 찬반 갈등이 극심했던 점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1년여 간 진통을 거쳐 대국민 설문조사와 전문가 등 의견을 수렴해 겨우 마련한 대입정책이기에 현장에서는 모두 만족할 수는 없더라도 당분간 이 제도가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대입 개편이 흔들린다면 그 혼란은 고스란히 현재 대입을 준비하는 중·고등학생과 학부모의 몫이 된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중·장기적 교육정책을 중립적인 독립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다른 공약과도 정면 충돌한다. 한 입으로는 정치적 입김에 좌우되지 않는 교육정책을 만들겠다면서 다른 입으로는 정권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교육정책 변경을 지시한 셈이다.

이런 식이라면 정부·여당은 그동안 왜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려고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법안이 국회에서 6개월째 표류하고 있는 것도 정부·여당의 의지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정시 확대든, 대입 평준화든 차기 대입제도 개편은 국가교육위원회 1호 안건으로 논의하는 것이 온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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