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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 이제 증명이 아닌 확증의 시간

등록 2019.11.24 15: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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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유키 구라모토와 친구들' 처음 합류

【서울=뉴시스】 장유진. (사진 = Dario Acosta 제공) 2019.11.24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장유진. (사진 = Dario Acosta 제공) 2019.11.2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바흐 소나타 제3번, 존 코릴리아노 바이올린 소나타, 슈만 소나타 제2번.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29)이 지난 4월 미국 뉴욕 카네기홀 웨일 리사이틀홀(260여석)에 데뷔하면서 연주한 프로그램이다. 훌륭한 곡들이지만 세계적인 공연장 데뷔 팡파르를 울리기에는 덜 화려하다는 걱정이 장유진 지인 사이에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잘 알려진 곡보다 새롭고 심오한 프로그램으로 도전하는 장유진의 소신은 통했다. 울림이 없어 어쿠스틱이 사실적인 카네기홀이라 더 의미가 컸다. 이곳은 연주자의 소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최근 서울에서 만난 장유진은 "데뷔 무대에서 화려한 모습을 선보이기보다 언제 또 있을 지 모르는 기회여서 깊이 있는 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카네기홀은 울림이 없어서 두려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깨끗한 어쿠스틱을 듣는 순간 그런 마음이 없어지더라고요. 소리를 즐길 수 있게 된 거죠"라고 미소지었다.

"테크닉이 까다롭고 대중이 많이 알지 못해 공감 받기 힘든 음악을 연구하고 연주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있어요. 특히 그 곡들의 소리를 복잡하고 세심하게 받아들이는 공연장에서 연주는 묘한 긴장감이 있죠."

연주력은 뛰어나지만 앳된 얼굴 때문에 유망주로 여겨지던 장유진은 어느새 당당한 여유로움을 자연스레 뿜어내는 성숙한 연주자가 돼 있었다. 

이제 장유진에게 증명의 시간은 끝났다. 실력을 확증해나가는 시간만 남았다. '2016 센다이 국제 음악 콩쿠르' 등에서 우승하며 가능성을 인정 받은 장유진은 이제 자타공인 주목해야 할 젊은 연주자 중 한명이 됐다.

【서울=뉴시스】 장유진. (사진 = Dario Acosta 제공) 2019.11.24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장유진. (사진 = Dario Acosta 제공) 2019.11.24 [email protected]

특히 2017년 미국 콘서트 아티스트 길드에서도 우승한 뒤 현지에서 급부상 중이다. 2018~2019 시즌 셔터쿼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협주곡을 협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센다이 콩쿠르 우승 이후 팬들이 부쩍 늘어난 일본 연주 활동은 여전히 활발하다. 그녀가 현지에서 연 독주회 팸플릿을 모아 사인을 받으러 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장유진의 스케줄은 더 늘었지만 그녀는 여유가 더 생겼다. 예전에는 호텔에서 연습만 했다. 이제는 시간이 나면 주변을 돌아다닌다. 최근 사진 촬영에 재미를 붙인 그녀답게 보는 풍경마다 마음 속뿐 아니라 저장 메모리에도 담아낸다. 최근 연주를 위해 방문한 마카오에서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나 5시간을 걸어 다니며 풍경을 찍고, 석양 노을을 바라봤다. 

연주 무대도 자연스레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있다. 다음달 22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24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쳐지는 '2019 크리스마스 콘서트 – 유키 구라모토와 친구들'에 처음으로 참여한다.

한국에서 마니아 층을 구축 중인 일본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가 2009년부터 매해 연말 열어오는 공연으로 매번 매진행렬을 기록하고 있다.

장유진은 베토벤 바이올린 로망스 2번을 협연한다. '웜 어펙션(Warm Affection)', '티어스 포 유 (Tears for You)'등 유키 구라모토가 작곡한 곡도 그와 듀엣한다.

"유키 구라모토 선생님의 곡은 어린 시절 취미로 피아노를 배울 때 많이 연습한 곡들이라 친숙해요. 정말 서정적인 곡들이고 선생님도 좋은 분이라 기대가 됩니다."

【서울=뉴시스】 장유진. (사진 = Studiobob 제공) 2019.11.24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장유진. (사진 = Studiobob 제공) 2019.11.24 [email protected]

장유진은 12월 이 연주회 외에도 일정이 빼곡하다. 미국 시카고에서 연주를 해야 하고, 오사카 심포니와 협연도 예정됐다. 국내 오케스트라와 제야 음악회에서 함께 연주하는 것도 논의하고 있다.

장유진의 주변 사람들은 빠듯한 일정에도 매번 새롭게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그녀를 보고 "힘들게 산다"며 농이 담긴 걱정을 한가득 쏟아내지만 그녀는 "재미있다"며 싱글벙글이다. 음악 그 자체가 좋기 때문이다.

이런 음악에 대한 애정은 그가 쓰고 있는 박사 논문 주제에도 묻어난다. 스트라빈스키와 그의 뮤즈로 알려진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사무엘 뒤시킨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센다이 콩쿠르 결선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리듬, 분위기에 흥미가 생긴 장유진은 음악뿐 아니라 편지 등을 통해 두 사람의 음악과 관계 등을 이해해가고 있는 중이다.

음악은 악보뿐만 아니라 작곡가의 삶, 관계에도 묻어있다. 장유진은 쉽지 않은 세상의 풍파에 긁히고 깨지면서 그걸 깨닫는 연주자가 돼가고 있다. 음악은 오선지 위에만 가만히 놓여 있지 않다.

장유진이 사진과 음악의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그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순간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같죠. 빛이 들어오는 풍경을 사진으로 포착하지 못하면 그 순간은 영원히 사라지잖아요. 연주도 그래요. 그래서 순간순간이 중요하죠." 진정한 연주자는 음악과 함께 삶의 이치를 깨달아 간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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