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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남수 대표 "3·1운동, 100년을 보내고 새 100년 준비한다"

등록 2019.12.31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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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수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 대표 인터뷰

"3·1운동 3대 정신…일원화·대중화·비폭력 되새겨야"

"2016년 광화문 촛불시위, 우리 사회 3·1정신의 재현"

"공동자료집·기념비 건립 성과…북한 배제는 아쉬워"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박남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31. dadazon@newsis.com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박남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3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조인우 기자 = 3·1운동 100주년으로 기억될 2019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젠더·세대·정파 간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졌던 한해의 마무리를 앞두고 다가올 3·1운동 200주년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 지난 10여년 간 올해를 기다리며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에 앞장선 박남수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전 천도교 교령)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6일 뉴시스와 만난 박 전 상임대표는 "3·1운동 독립선언서에 반만년 간 내려온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신이 다 담겨 있다"며 "지금이 바로 그 3·1 독립선언서를 다시 읽을 때"라고 강조했다.

-2010년부터 3·1운동 100주년을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구체화됐나.

"100이라는 숫자 자체가 중요하다고 봤다. 누가 하더라도 100주년인 2019년에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준비를 시작한 건 2005년께다. 친일인명사전이 나왔던 해다. 이것(친일 인명사전 발표)이 3·1운동 100주년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부터 종교계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동력 마련에 나섰다. 밥 때가 돼서야 부엌에 밥을 지으러 갈 순 없는 것 아닌가. 일찍 준비를 시작한 것부터 100주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준비하는 기간이 길었다. 어려운 일도, 좋았던 일도 있었을 것 같은데.

"우리 선열들이 3·1운동을 통해 준 메시지의 핵심은 일원화, 대중화, 비폭력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대한민국에 3·1운동의 정신이 얼마나 알려져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계속 갈등하고 분열하고 있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3·1운동의 3대 정신을 재현할 수 있겠다는 것을 새삼 인식한 때는 광화문 촛불시위가 이어지던 2016년 말이다. 남녀노소, 종파, 보수·진보를 초월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하나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원화고 대중화다. 국제사회는 우리나라의 촛불시위를 평화와 비폭력의 상징으로 평가했다. 내재했던 100년 전 3·1운동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박남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31. dadazon@newsis.com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박남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31. [email protected]

-핵심은 그 정신을 어떤 방식으로 계승할지였을 것이다.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데 가장 주안점을 둔 지점이 있다면.

"일본이 식민통치 당시 문화통치로 전략을 바꾼 데에는 3·1운동이 계기가 됐다. 천도교, 불교, 기독교 종파가 함께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영토와 주권을 빼앗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만은 빼앗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민족말살과 분열을 시도한 것이다. 100주년 운동에도 종교인들이 화합해 중심이 되고, 정부가 나서지 않고 남녀노소 시민이 중심이 되고, 전국 뿐 아니라 만세를 부른 해외까지 모두 함께하는 것이 3·1운동의 정신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준비를 했다."

-100주년을 맞은 올해가 활동의 정점이었을 것 같다. 의미있는 활동을 꼽는다면.

"천도교, 기독교, 불교 간 3·1운동 공동자료집을 완성했다.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각 종파에서 '우리가 다 했다'는 식으로 각각의 자료를 만들면 영원히 '함께'는 되지 않는다. 공동자료집을 만든 것부터가 다함께 정신의 시작이고 100주년의 시작이 됐다. 최근엔 태화빌딩 앞에 작은 기념비를 세웠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태화관이 있던 자리다. 어떤 단체의 지원도 받지 않고 각 종교 교인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성과를 거뒀다. 이 기념비는 3·1운동의 뿌리이자 근원지를 100년만에 다시 찾아왔다는 의미를 갖는다. 지난 23일 기념비 제막식에서 만세 퍼포먼스를 기획한 것도 이같은 이유다. 1919년의 3·1운동이 100년 뒤인 2019년까지 온 것을 확인하고, 앞으로 100년 후인 2119년을 향해 갈 다리를 놨다는 의미다. "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23일 서울 종로구 태화관터에 세워진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2019.12.23. photo1006@newsis.com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23일 서울 종로구 태화관터에 세워진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2019.12.23.  [email protected]

-특히 종교계의 화합이 인상적이다.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는 현대사회에 시사할 메시지가 있다면.

"1919년 3월1일 뿐만 아니라 2019년에 필요한 게 바로 독립선언서와 그 안에 담긴 정신이다. 반만년 간 내려운 우리 국민의 위대한 정신과 인류 평화가 그 안에 모두 담겼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모두 있다. 결국 그 안의 정신을 재발견하고 공유하고, 이를 다시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이같은 생각으로 반크(VANK)와 함께 원문을 현대어로 바꾸고 외국어로 번역해 널리 알리는 일을 하기도 했다."

-아쉬운 점도 있을 것이다. 당초 계획했던 북한과의 공동 3·1운동 기념식이나 공동기념비 건립 등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1919년 3월1일 북한의 7개 도시에서도 만세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의 3·1운동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분단의 아픔이다. 33인 민족대표 가운데 북한에 묘지가 있는 분도 있다. 다함께 정신에 따라 북한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북이 공동으로 하는 퍼포먼스가 먼저가 아니라, 3·1운동에 대한 인식 공유가 먼저다. 비무장지대(DMZ)에 세계 종교평화센터를 세우고 남북 공동 선언, 청소년들의 북한의 만세운동 도시 답사 및 학술대회 등을 제안했는데 성사되지 못했다. 지난해 정부가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대해서는 북한과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좌절하지는 않았다. 작은 일이라도 좋으니 3·1운동 정신을 재발견하는 쪽으로 기념사업의 추진 방향을 바꿨다. 지금도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하는 그 날, 3·1운동을 온전히 기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활동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 이대로 미래 3·1운동 200주년을 준비하는 쪽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조직 구성은 일단 올해 말까지다. 다만 추진위원회는 내년 1분기까지 형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장을 준비할 계획이다. 3·1운동 100주년은 과거 100년의 역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3·1 정신에 따라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 활동에 함께한 젊은이들이 3·1운동을 주제로 꾸준히 모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상생, 평화, 인류 공영을 위해 젊은이들이 앞장서 나간다면 상당한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고 본다. 그때는 남북 공동의 새 판을 짤 수도 있을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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