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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복지]'신과 함께' 허춘삼이 손자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은?

등록 2020.01.04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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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속 고물상 허춘삼

재개발 철거를 앞둔 할아버지와 손자 모습

15.3만가구…'한부모 지원사업' 등 찾아봐야

소득에 따라 생계급여·기초연금 수급 가능

[서울=뉴시스]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2018.08.11.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뉴시스]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2018.08.11.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세종=뉴시스] 임재희 기자 = "허춘삼, 허춘삼, 허…"

저승차사들이 망자를 저승으로 데려가려면 그 사람의 이름을 3번 불러야 한다. 한데 '허춘삼'이란 이름을 말하는 데는 애를 먹는다. 염라대왕(이정재) 말마따나 "저승의 명부기한을 넘긴 사람"인 허춘삼(남일우)을 데리러 수많은 저승차사들이 이승에 내려갔지만 돌아온 저승차사는 없었다.

저승차사들을 가로막은 건 집을 지켜주는 성주신(마동석)이다. 심지어 허춘삼의 집에 깃든 성주신은 마동석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 고물이나 폐지 줍는 일을 돕고 있다.

2018년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의 주인공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 이덕춘(김향기)에게도 성주신은 버거운 존재다. 1000년 전 이승에서 '하얀 삵'이라고도 불리며 여진족들을 벌벌 떨게 했던 해원맥조차 첫 만남에서 성주신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성주신이 허춘삼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건 그 옆에 있는 7살짜리 손자 허현동(정지훈) 때문이다. "애 엄마는 현동이를 낳고 얼마 안 돼 죽었고 아비는 도박 빚에 필리핀으로 잠적한 지 오래된" 현동이는 할아버지 허춘삼이 떠나면 세상에 홀로 남게 된다.

무엇보다 성주신의 발목을 잡은 건 집을 팔고 받은 보상금이다. 1억원이나 됐던 보상금은 성주신이 "이머징 마켓 펀드랑 주식"에 넣는 바람에 70% 손실을 보고 말았다.

결국 허춘삼 가족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도 아니며 허춘삼 부재 시 허현동이 먹고 살길도 막막한 상황이다. 성주신은 그런 허현동을 지키기 위해 저승차사들로부터 허춘삼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주신은 집을 지키는 신이다. 쇠파이프 등을 들고 들이닥치는 재개발 용역들로부터 허춘삼 가족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위기에 처한 허춘삼 가족과 성주신 앞에 저승차사 이덕춘이 나타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할아버님 저승 모신 다음에도 어린 현동이가 혼자 잘 살 수 있는 방법까지 성심성의껏 일대일 맞춤서비스를 제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때부터 저승차사들은 이승에서 허춘삼과 허현동에게 필요한 복지제도를 찾아 나선다.

가장 먼저 보육원을 떠올리지만 필리핀으로 도망간 아버지가 주민등록상 부양자로 남아 있어 보육원에서 맡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대신 "할아버지가 몸이 불편하시면 구청에서 생계지원비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보육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해원맥은 허춘삼에게 "오른쪽 귀는 아예 안 들리고 왼쪽은 가끔 들리는 것으로 가자"며 몸이 불편한 척 연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연기는 금세 들통나고 만다. 구청 직원(성동일)은 "불편한 데가 많으면 보조금을 더 받아낼 수 있다"며 "일전에 대못에 찔린 데는 괜찮으시냐"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한 걸 허춘삼이 알아듣고 "주사도 맞고 약도 먹었다"고 말하면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저승차사들과 성주신을 불러 세운 공무원은 그들에게 허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낼 것을 권한다.
[서울=뉴시스]영화 '신과함께-죄와 벌'. 2018.07.25.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뉴시스]영화 '신과함께-죄와 벌'. 2018.07.25.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런 허춘삼과 허현동 같은 가구를 '조손가정'이라고 부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15만3000가구 수준이었던 조손가정은 급속한 고령화와 가족 해체 등으로 2035년 32만1000가구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삶이 녹록지 않은 건 현실의 허춘삼과 허현동 가정들도 마찬가지다. 2016년 조손가정의 연평균 가구소득은 2175만원으로 전체가구 평균소득(4883만원)의 45%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해외 입양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다. 조손가정을 위한 여러가지 복지제도의 문을 두드려 볼 수 있다.

여성가족부의 '한부모·조손가족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중위소득 52% 이하 한부모가족을 대상으로 한 사업으로 ▲만 18세 미만 자녀 1인당 월 20만원 아동양육비 ▲만 5세 이하 자녀 1인당 월 5만원 추가 아동양육비 ▲중·고교생 자녀 1인당 연 5만4100원 학용품비 ▲한부모가족복지시설 입소시 가구당 월 5만원 생활보조금 등이 지급된다.

지역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의 '가족역량강화지원 사업'을 통해 조손가족의 손자녀 학습·정서지원과 긴급일시돌봄 등 일상생활도움지원 서비스도 제공받을 수 있다.

또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하면 올해 2인가구 기준으로 최대 89만7594원까지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다.

월소득이 148만원을 넘지 않는다면 현실 속 허춘삼은 기초연금도 받을 수 있다. 기초연금 확대 지급 대상을 골자로 한 법을 국회가 제때 통과만 해준다면 소득 수준이 하위 40% 이하에만 해당해도 수령액은 월 최대 30만원이다.

이외에도 노인돌봄종합서비스와 가사·간병 방문 지원 사업 등을 통해 돌봄 서비스가 제공된다.

아동양육비 등은 사는 곳 근처 읍·면·동 주민센터를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신청할 수 있으며 복지로(online.bokjiro.go.kr)에서 온라인 신청도 가능하다. 기초연금의 경우 가까운 국민연금공단지사를 방문하거나 거동이 불편할 경우 국민연금공단 콜센터(1355)를 통해 '찾아뵙는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다.
[서울=뉴시스]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2018.08.11.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뉴시스]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2018.08.11.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에서 저승차사들은 끝내 허춘삼의 이름을 3번 부르지 못한다. 강림도령이 허춘삼에게 허현동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6년간 유예기간을 주기로 한 덕분이다.

그런데 허춘삼과 허현동이 그 6년간 우리와 함께 산다면 영화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여가부와 복지부 등에서 운영중인 제도들을 통해 허춘삼 가족이 한 달에 받을 수 있는 금액은 기초연금을 30만원까지 받아도 120만원이 채 안 된다. 어린 현동이가 계속 성장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월 120만원 이하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시민단체 등은 이렇듯 낮은 기초생활보장 수준을 높이기 위해 생계급여의 기준이 되는 기준 중위소득 결정 시 금액이 더 많은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초연금과 생계급여 중복 수급을 막는 현행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에 못지 않게 우리가 서둘러야 할 일이 또 있다. 조손가정 실태조사다. 2010년 여가부 실태조사 이후 정부 차원의 공식 조사가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 현실 속에서 얼마나 많은 허춘삼과 허현동이 존재하는지 모를 일이다. 2020년, 그들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 건 저승의 차사들이 아니라 이승의 우리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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