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인터뷰]피아니스트 포고렐리치 "한국 관객의 음악 존경 감탄"

등록 2020.01.07 15:28:45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스무살 연상 아내 사망후 활동 중단

2002년 복귀, 세계 순회하며 독주회

15년 만에 내한..2월 롯데콘서트홀서 리사이틀

[서울=뉴시스] 이보 포고렐리치. (사진 = Bernard Martinez·빈체로 제공) 2020.01.07.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이보 포고렐리치. (사진 = Bernard Martinez·빈체로 제공) 2020.01.0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크로아티아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62)는 1996년 자신의 스승이자 스무살 연상의 아내인 조지아 출신 피아니스트 알리자 케제랏제(1937~1996)가 사망한 뒤 급격하게 우울해진다. 우울함이 깊어지더니 결국 2001년 활동을 중단하기까지 한다.

휴식, 심리치료 등을 거쳐 1년여 만에 복귀에 성공한다. 이후 세계 곳곳을 돌며 성공적으로 독주회 등을 열어오고 있다. 그런데 연주에는 케제랏제에 대한 애정, 그리움이 여전히 묻어날 때가 많다.

포고렐리치는 클래식 기획사 빈체로를 통한 e-메일 인터뷰에서 "전 알리사 케제랏제보다 더 나은 피아니스트를 들은 적도, 알게 된 적도 없다"고 단언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저를 천재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몇몇의 스태프들의 과장 섞인 저에 대한 칭찬은 저를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케제랏제와 저는 함께 키울 아이가 있었던 가족이었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죠."

한 때 이런 점들로 인해 부담이 컸지만 끝내 포고렐리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음악적으로 승화된다는 증명한다. "케제랏제, 그리고 그녀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은 제가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어요. 저의 음악에서 복잡한 감정이 묻어나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요?"

포고렐리치가 15년 만인 2월19일 오후 8시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그는 "한국은 언제나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나라"라고 돌아봤다. 1996년 첫 내한공연한 포고렐리치는 2005년 다시 한국을 찾은 적이 있다.

"관객들이 음악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쏟는 존경과 헌신에도 감탄이 나옵니다. 공연장에 들어가보시면 바로 느끼실 수 있지 않나요. 하하. 이번에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어요."

포고렐리치는 이번에 바흐 영국 모음곡 3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1번, 쇼팽 뱃노래 & 전주곡 c#단조, 라벨 밤의 가스파르 등을 연주한다.

청년 시절에 연주한 곡들도 포함됐다. "저의 과거와 현재를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과거의 제 모습에 익숙한 분들은 세월과 함께 진화한 부분들을 찾아낼 것이고, 제 이름과 연주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젊은 관객들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제 음악 세계만이 갖고있는 다양한 매력을 만나 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24년 만에 음반 녹음 활동을 재개한 포고렐리치는 작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소니와 새로 전속계약을 맺었고, 8월에 함부르크 엘프 필하모니에서 데뷔함과 동시에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 베토벤 소나타 22번 F장조 Op. 54, 24번 F#장조 Op. 78번이 수록된 음반을 발매했다.

"이 작품들은 제가 오랫동안 매력을 느꼈던 곡들입니다. 몇 곡은 공연에서도 자주 연주하곤 했죠. 예를 들어 라흐마니노프 소나타는 제 인생 절반 이상의 긴 시간동안 연주했거든요. 지난 30여년간 언제든지 녹음을 할 수는 있었지만 이제야 음반으로 만나게 됐네요. 이 아름다운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에 있어서 개인적인 공헌을 남기고 싶었어요."
 
[서울=뉴시스] 이보 포고렐리치. (사진 = Gabriel Hill·빈체로 제공) 2020.01.07.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이보 포고렐리치. (사진 = Gabriel Hill·빈체로 제공) 2020.01.07. [email protected]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은 베토벤의 소나타에 대해서는 "가장 높은 수준의 피아노 레퍼토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심지어 한 곡은 베토벤이 가장 좋아한 피아노 소나타로 기록돼(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4번) 있기도 하죠."

베토벤에 대해서는 "베토벤과 피아노는 정말 특별한 존재들"이라고 여겼다. "저는 베토벤에서 리스트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전통을 누리는 특권을 갖게 됐을 뿐이죠. 베토벤의 음악은 그 누구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깊어요. 그의 모든 작품을 탐험해보시길 바랍니다."

높은 수준의 순수예술에는 한 가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첫 눈에 보기에 쉽고 간단해 보이면 오히려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는 걸요! 그 사실을 담고자 노력했죠."

포고렐리치를 이야기할 때 항상 따라다니는 콩쿠르가 있다. 1980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0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당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명되던 포고렐리치는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지극히 편파적인 결과"라고 강하게 항의한 것도 모자라 바로 심사위원직을 사퇴하기까지 한다. 이후 포고렐리치는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클라우디오 아바도 같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파격의 아이콘으로 성장한다.

꼭 세계적인 콩쿠르를 통하지 아니더라도 좋은 연주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포고렐리치는 보여줬다. 앞날을 두려워하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해줄 조언을 부탁하자 "열심히 연습하라고 하는 건 당연한 말이겠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음악가들에게 먼저 다가가세요"라고 건넸다.

어느덧 예순살이 넘으다. 젊은 시절과 달리 삶과 피아노를 대할 때 달라진 점이 있을까. 포고렐리치는 "크게 변한 점은 없다고 생각하고 또 믿는다"고 답했다. "제게 음악은 항상 똑같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음악이란 각자가 바라보는대로 끝임없이 새로 발견되고 또 변화해요. 어떤 조각들은 변하지 않기도 하죠. 제가 그 조각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할 때가 있고 때론 그대로 있기도 하지만, 흐르는 시간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피아노는 자신의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제게 표현의 자유를 안겨주죠. 글로 표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자유로움이에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